‘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고 위기 경보가 ‘심각’ 단계로 격상되면서 문화계는 그야말로 ‘올스톱’ 상태가 됐다. 공연과 영화는 줄줄이 취소되고, 미술관과 박물관도 잇달아 휴관했다. 오는 3월엔 대한민국 전체가 ‘문화가 없는 달’을 겪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온다. 문화계는 “사태 장기화로 피해 규모가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때보다 갑절 이상은 될 것”이라며 한숨짓고 있다. 이에 문화체육관광부는 예술인 긴급생활자금 지원과 공연단체 피해 보전 등 문화예술계 긴급 지원에 나섰다.
■ 영화계 16년 만에 최저 관객 영화계는 16년 만에 관객 수가 최저치를 기록하는 등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았다. 26일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을 보면, 전날 극장을 찾은 관객은 7만6277명에 그쳤다. 2004년 5월31일의 6만7973명 이후 가장 적었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평일 관객이 20만명을 넘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주말 이틀(22~23일) 관객 수(47만4979명)가 직전 주말(15~16일) 관객 수(120만8858명)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으로 떨어졌다.
일일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은 2만1206명을 모으는 데 그쳤고, 2위 <1917>과 3위 <정직한 후보>는 2만명을 밑돌았다. 4위 <작은 아씨들>부터는 1만명에도 못 미쳤다. 상위 10편의 평균 좌석 판매율은 3.4%다. 상영관 100석 중 3석만 팔렸다는 뜻이다. 이에 따라 <기생충> 흑백판을 시작으로 <사냥의 시간> <온워드: 단 하루의 기적> <후쿠오카> <이장> <밥정> <결백> 등 개봉 예정작들이 줄줄이 개봉을 미뤘다.
지난해 극장 매출은 1조9140억원으로, 전체 영화산업 매출의 76.3%를 차지했다. 관객 수가 급감한 25일 하루 극장 매출은 6억3070만원에 그쳤다. 이는 지난해 하루 평균 매출 52억4천여만원의 12%다. 한 극장업계 관계자는 “이대로라면 한국 영화산업 자체가 크게 위축될 수 있다. <기생충>의 아카데미 수상으로 분위기가 고조된 상황에서 이런 위기를 맞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오는 28일부터 5월17일까지 10돌 기념 공연을 선보일 예정이던 뮤지컬 <마마 돈 크라이>는 2월28일~3월22일 공연을 취소하고, 개막을 이후로 미뤘다. 페이지1, 알앤디웍스 제공
■ 공연계 2월 매출 반토막 그동안 자체방역 작업을 하고 열감지기를 구비하며 사태에 발 빠르게 대응해온 공연계는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속도로 늘면서 조기 폐막과 취소·연기로 방향을 바꾸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국공립 공연기관 5곳을 휴관하고 국립 예술단체 7곳의 공연까지 잠정 중단한 것이 공연 전반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공연계 매출은 지난달에 견줘 반토막 났다. 공연예술통합전산망을 보면 26일 기준으로 2월1~25일 연극·뮤지컬·클래식·오페라·무용·국악 등 전체 공연 매출액은 188억1693만2천원으로, 1월 같은 기간 330억351만4천원의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 공연 건수는 764건으로 전월 같은 기간(683)보다 늘었는데 사람들의 발길이 서서히 끊기면서 매출은 줄어든 것이다. 예매 표수도 85만635건에서 48만1336건으로 현저히 떨어졌다. 공연계는 3월에는 타격이 더 클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클래식과 무용 등 사실상 3월부터 본격적으로 진행되는 장르가 많기 때문이다. 중소 규모 제작사의 피해는 막심할 것으로 보인다. 계약에 따라 대관료를 돌려받지 못할 수도 있고, 배우와 스태프도 일이 줄어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 대중음악 중소 레이블 존폐 위기 대중음악계도 콘서트와 팬미팅 등이 줄줄이 취소되면서 비상이 걸렸다. 최근 트와이스는 다음달 초 서울에서 개최하려던 월드투어 피날레 공연을 취소했다. 태연, (여자)아이들, 효민 등이 해외 콘서트·팬미팅 일정을 연기했고 백예린, 악뮤, 백지영, 이승환 등도 콘서트를 미루거나 입장권 예매 날짜를 연기했다. 미카, 칼리드, 스톰지, 루엘, 케니 지 등의 내한공연도 연기됐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음악 관련 행사가 잇달아 취소되면서 금전적 손해액이 늘어나고 매출도 감소한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음악레이블산업협회가 지난 18일부터 진행 중인 ‘코로나19로 인한 음악산업 피해 사례 실태조사’ 중간 집계 결과를 보면, 조사에 응한 음반·공연 기획사 30곳 중 19곳이 ‘피해를 보았다’고 답했다. 코로나19로 콘서트, 쇼케이스, 행사 등을 취소하면서 대관료, 계약금, 위약금, 수수료 등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이 가운데 6곳은 “5건 이상의 행사가 취소됐다”고 답했다. 이들 회사의 지난해 1·2월 매출 대비 올해 1·2월 매출액은 총 7억2155만원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ㄱ음반기획사 관계자는 “최근 6개월 매출 평균이 9천만원이었는데, 이달은 700만원으로 급감한 상태라 회사가 존폐의 갈림길에 있다”고 토로했다.
지난 19~23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한국화랑협회 주최로 열린 ‘2020화랑미술제’의 마지막날 모습. 폐막 시간 전부터 업주들이 작품 철수작업을 서두르는 등 장터 곳곳에서 어수선한 분위기가 역력했다. 행사기간 전시장을 찾은 관객은 1만3000여명으로 전년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노형석 기자
■ 미술계도 동면 상태 미술계는 국립현대미술관을 비롯한 전국 공사립 미술관, 주요 화랑과 대안공간 등이 대부분 휴관하면서 사실상 동면 상태에 들어갔다.
국내 화랑 10곳이 참여하려던 아시아 최대 국제미술품장터인 아트바젤 홍콩 아트페어가 지난 7일 공식 취소돼 거액의 부스비를 내고 작품 운송을 준비 중이던 참가 화랑이 상당한 손해를 봤다. 뒤이어 지난 19~23일 코엑스에서 열린 화랑미술제도 관객 수(1만3천여명)가 지난해(3만6천여명)보다 절반 이상 줄었고 매출액도 급감했다. 개별 화랑들도 시장 성수기를 앞두고 주력 작가의 신작을 의욕적으로 소개하는 새봄 기획전을 연기하거나 취소하는 일이 잇따라 타격이 크다. 소장 작가들도 창작 활동에 어려움이 가중될 것으로 전망된다. 대안공간들이 상당수 휴관했고, 지방자치단체의 문화재단 전시지원 공모사업도 당분간 진행이 보류됐기 때문이다.
한편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 20일 문화예술계 긴급 지원 방안을 발표했다. 30억원 규모의 예술인 긴급생활자금 융자 지원, 공연단체 피해 보전 지원(총 21억원) 등이 뼈대다. 지난 20일 예술경영지원센터(이하 예경)에는 ‘전담 상담창구’도 개설됐다. 상담창구에는 지금까지 200건 넘는 피해 상담 요청이 들어왔다. 해민여 예경 담당 팀장은 “예정된 공연이 취소돼 생활이 어려워지거나 수익을 내지 못할 경우 지원을 받을 수 있느냐는 문의가 제일 많다. 공연이 취소될 경우 천재지변과 같은 상황이라는 것을 인정받아 대관비를 환불받을 수 있는지 등을 묻는 예술인도 많았다”고 전했다.
문화팀 종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