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미디 빅리그>는 코로나19로 ‘무관객 녹화’를 하게 되자 코미디언들이 직접 객석에 앉아 웃음을 더했다. 티브이엔 제공
직접 만든 국에서 머리카락이 나오자 장도연이 외친다. “국에 빠진 머리카락은 내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모자를 벗는다. 이어질 다음 장면은? 머리카락 없는 민머리? 딩동댕~! 개그프로그램에서 흔히 예상 가능한 설정이다. 그런데 뻔한 장면이 그 순간을 비춘 관객의 반응 때문에 보는 사람을 빵 터지게 만든다. 객석에 앉은 개그맨 이진호가 배꼽을 잡고 과장하며 ‘깔깔’대는 그 모습이 너무 웃겨 스튜디오가 순간 웃음바다로 변한다. 지난 22일 방송한 <코미디 빅리그>(티브이엔) 속 꼭지(코너) ‘야만다’의 한 장면이다.
<코미디 빅리그>는 3월 방송분부터 일반 관객 대신 출연자인 코미디언들이 객석을 채우고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확산하자 안전을 위해 무관객 녹화를 진행하기 때문이다. 이 프로그램을 연출하는 안제민 피디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처음에는 제작진 몇명이 앉아 있으려고 했는데, 스튜디오 전체를 비추면 빈자리가 보이더라. 그래서 녹화가 끝났거나, 차례가 아직 돌아오지 않은 코미디언들이 앉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하나둘 슬슬 모여들어 이제는 모든 이들이 녹화 3시간 동안 객석을 채운다. 관객의 웃음이 없으면 ‘앙꼬 없는 찐빵’과 마찬가지인 개그프로그램에서 무관객 녹화가 웃음을 자아낼 수 있을까 했던 우려를 영리하게 이겨냈다.
무대와 객석의 코미디언들이 끊임없이 주고받는 상황이 재미를 더한다. 티브이엔 제공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 <코미디 빅리그>의 ‘웃기는’ 대처는 전화위복이 됐다. 일반 관객이 앉아 있을 때보다 오히려 화제성이 더 높다. 시청률은 2~3%대로 큰 차이가 없지만, 온라인 블로그 등에서 체감하는 인기는 더 높다. ‘이용진 대 이상준’에서는 박나래와 장도연의 장점을 얘기하면 객석에 앉아 있는 두 사람이 무대로 난입하고, ‘국주의 거짓말’의 관객을 불러내는 설정에서는 양세찬, 김용명, 이상준이 나오는 등 무대 위아래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코미디가 펼쳐지기 때문이다. 특히 중간중간 비추는 객석에 앉은 코미디언들의 리액션은 웃음의 백미다. 이진호는 매주 독특한 분장을 하고 앉는다. 절대 웃지 않는 진지한 표정이 배꼽을 잡게 한다. 안제민 피디는 “개그의 피가 있다 보니 객석에서도 재미를 주고 싶다는 열정에 알아서 분장을 하고 온다”며 “이제는 제작진에게도 귀띔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개그프로그램의 ‘웃기는 대처법’은 개그맨들을 재조명하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무관객으로 녹화하는 <개그콘서트>(한국방송2)는 코미디언들을 모두 무대 위로 올려 입담 대결을 펼친다. 이들은 스튜디오에 모여 매회 다양한 콘셉트로 이야기를 나눈다. 이들이 뽑은 역대 인기 꼭지를 소개하는가 하면, 근황 토크 등도 이어간다. 그동안 보여줄 기회가 없던 코미디언들의 다재다능한 재능을 보여주며 신선한 재미를 주기도 한다. 감독으로서도 재능이 있는 안상태가 촬영한 영화를 방영하고, 크리에이터로 활약하는 코미디언들을 소개하기도 한다. 이 프로그램을 연출하는 박형근 피디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하이라이트 등을 내보낼 수도 있었지만, 이럴 때일수록 우리가 더 큰 웃음으로 힘을 북돋워주자고 생각해 갖가지 특집을 준비했다”고 말했다. 코미디언들도 모두 녹화 전에 손 소독을 하고 열화상 카메라 등으로 상태를 꼼꼼하게 살핀다고 한다. 박형근 피디는 “무대에 올라가기 전까지는 모두 마스크를 쓰고 대기한다”고 말했다.”
<개그콘서트>는 코미디언들을 모두 무대에 올려 매회 다양한 주제로 얘기를 나눈다. 코미디언들의 숨은 재능을 보여주기도 한다. 한국방송 제공
사실 사건·사고 등 국가적 재난이 벌어질 때마다 개그프로그램은 애도의 기간이라는 이유로 중단됐다. 코로나19는 질병 재난이긴 하지만, 상황이 좀 다르다. 여러 번에 걸쳐 방송 중단을 경험했던 코미디언들은 국가적 재난 앞에 우리의 웃음이 힘이 된다는 게 기쁘다고 말했다. 한 코미디언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두 프로그램에 직접 출연하지는 않지만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해줄 수 있다는 게, 우리의 웃음이 시청자들에게 큰 힘이 되고 있다는 생각에 뿌듯했다”고 말했다. 두 프로그램은 당분간 무관객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이 밖에도 예능프로그램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위기를 이겨내고 있다. 방청단 투표로 진행됐던 <불후의 명곡-전설을 노래하다>(한국방송2)는 개그맨, 아나운서 등이 스페셜 판정단으로 제작에 참여하고, <복면가왕>(문화방송)도 기존 시민 방청객을 대신해 연예인 평가단의 수를 늘렸다. 거리를 돌아다니며 찍었던 로드형 프로그램은 야외 대신 스튜디오 녹화로 대신한다. 동네를 누비며 주민들과 대화를 나눴던 <유 퀴즈 온 더 블럭>(티브이엔)은 스튜디오에서 영상으로 대구·경북 지역 의료진과 대화를 해 화제를 모았다.
하지만 대안 마련이 어려운 여행 프로그램은 직접 타격을 입었다. <배틀 트립>(한국방송2)은 3월27일 방송을 끝으로 4년 만에 종영하고, <더 짠내투어>(티브이엔)도 3월16일을 끝으로 중단됐다. <배틀 트립>은 촬영분이 남아 있지만 내보내지 않기로 했다. 티브이엔 쪽은 “방송 재개는 코로나19 상황을 지켜보며 결정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