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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볼혹맞은 ‘창작과비평’ 새 도약 준비

등록 2006-01-06 20:02

­창간 40년을 맞은 계간 <창작과비평>이 면모를 일신했다. 왼쪽부터 백낙청 <창비> 편집인, 최원식 세교연구소 이사장, 백영서 <창비> 편집주간, 염종선 <창비> 편집장. 사진제공 창작과비평사
­창간 40년을 맞은 계간 <창작과비평>이 면모를 일신했다. 왼쪽부터 백낙청 <창비> 편집인, 최원식 세교연구소 이사장, 백영서 <창비> 편집주간, 염종선 <창비> 편집장. 사진제공 창작과비평사
“변혁적 중도주의로 운동성 회복”
새 편집주간에 백영서 교수등 10년만에 ‘2대 주간’ 탄생

올해로 창간 40년을 맞은 계간 <창작과비평>(이하 <창비>)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새 편집주간을 선임하고 새로운 진보담론 생산을 위한 별도 연구재단을 출범시켰다. <창비> 사람들의 정신적인 지주인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도 때맞춰 ‘변혁적 중도주의’를 새롭게 주창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창비>를 대표하는 사람들의 변화다. 그동안 부주간을 맡았던 백영서(53) 연세대 사학과 교수가 지난 2일부터 새 편집주간의 책임을 맡았다. 편집주간 제도가 도입된 지 10년만에 ‘2대 주간’이 탄생한 것이다. 염종선(40) 팀장이 새로 편집장을 맡았다. 문학평론가 진정석(42), 시인 이장욱(38)씨 등이 상임편집위원으로 새롭게 합류했다. 전체적으로 계간지를 만드는 사람들의 나이가 젊어졌다.

백 신임 주간은 “한국 진보진영의 문제를 짚으면서 어떤 진보가 참다운 진보인지를 따져 묻고, 필요하다면 논쟁도 하면서, 이를 동아시아 차원으로 넒힐 수 있는지를 중점적으로 모색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동아시아 진보 지식인들이 함께 모이는 자리를 마련하고, 일어판·중어판 서비스도 개시할 예정이다.

그동안 편집주간으로 일했던 최원식(57) 인하대 국문과 교수는 세교연구소 이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세교연구소는 <창비>의 변화를 대표한다. 새로운 진보 담론을 모색하는 민간연구소를 지향하고 있다. 6일 오후 3시 서울 서교동에 새 사무실을 마련하고 현판식을 가졌다.

창립취지문에서 “문학인, 학자, 활동가의 자유로운 실천적 토론의 마당을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미 38명의 학자·문인·시민운동가 등이 연구위원 등으로 동참했다.

최 이사장은 “지금까지 진보담론은 눈앞의 요구에 매달렸지만, 이제 근본적인 차원에서 갱신해야 하는 중요한 시기에 와 있다”며 “좀더 더 큰 틀에서 토론을 조직하고 이야기를 시작해야 될 때”라고 말했다. 세교연구소는 계간 <창비>에 여러 담론의 묘목을 제공하는 구실을 할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현장 활동가 등을 추가로 영입해 연구소의 내실을 더한 뒤, 본격적인 토론회 등을 준비할 예정이다.

이 모든 변화가 지향하는 바는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의 신년사에 드러나 있다. 백 교수는 ‘디지털창비(www.changbi.com)’에 실은 신년사에서 “6·15시대의 참 진보는 ‘변혁적 중도주의’”라고 밝혔다. “개혁운동의 자기 개혁을 포함하는 총체적 개혁”도 촉구했다. 앞으로 <창비> 집단의 갈 길을 예고하는 성격이 강하다.

백 교수는 ‘6·15시대의 대한민국’이라는 제목의 신년사에서 “바야흐로 대한민국은 한바탕 자체 정비를 하지않고는 지탱해가기 힘들겠다는 느낌”이라며 “드러난 모든 문제를 바로잡을 전면적인 개혁에 매진할 필요가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백 교수는 △한반도 통일문제를 외면·경시하면서 국내 개혁과제에만 매달리는 세력 △한국의 상대적인 독자성을 무시하면서 온갖 문제를 ‘반통일세력’의 책동으로 간주하는 통일 지상주의 세력 △현실적인 대안제시에 주력한다면서 부분적인 변화·편의적 개혁만 추진하는 온건 개혁세력을 각각 비판한 뒤, “이들 삼자의 결합을 통해 ‘남북의 점진적인 통합과정과 연계한 총체적 개혁’을 성공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변혁적 중도주의라 부름직한 이런 결합이야말로 오늘의 대한민국에 필요한 참된 진보노선”이라고 밝혔다.

결국 백낙청-최원식-백영서로 이어지는 <창비>의 새로운 면모는 변혁적 중도주의를 큰 기치로 내걸고 도전적·실천적으로 ‘운동성’을 회복하려는 구상과 큰 관련이 있다. 1966년 1월15일 창간호를 낸 이래, 분단체제론·민족문학론 등 수많은 진보적인 담론을 선구적으로 생산했던 <창비>가 또한번의 지적·실천적 영감을 한국 사회에 던질 수 있을 지 주목된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문학인-학자-활동가 결합…실척전 담론 모색”

세교연구소 최원식 이사장

세교연구소 공식출범을 하루 앞둔 지난 5일, 최원식 초대 이사장과 인터뷰했다. 최 이사장은 신중하게 단어를 고르며, 낮고 느리지만 힘있는 목소리로 ‘진보의 갱신’을 강조했다.

­ 세교연구소 탄생의 배경은

= 계간 <창작과비평> 편집위원을 중심으로 2003년부터 한달에 두번씩 공부 모임을 열었다. 이 공부모임이 세교연구소의 모태가 됐다. 이제 진보 진영 또는 진보 담론의 갱신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를 위해 그간의 논의를 더 공개적·본격적으로 시작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 현 진보 진영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

= 개혁정권이 계속 되면서 진보·개혁 인사들이 저항의 위치로부터 책임을 나누는 위치로 옮겨갔다. 그러면서 애초에 갖고 있었던 치열성과 운동성 등이 일종의 정체현상을 보이고 있다. 이제는 그동안 경험한 것들을 포함해 좀더 넓은 시각에서 본질적인 문제를 재검토해서 새로운 실천적 담론을 토론해야 한다.

­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을 펼치려 하나

= 문학과 인문사회과학이라는 두 바퀴를 중심으로 다양한 주제의 토론모임을 지속적으로 열고, 그 성과를 대외적으로 확장시킬 계획이다.

­ 재단의 주축은 여전히 ‘<창비> 사람들’인 것 같은데.

= 앞으로 확장할 것이다. 특히 활동가들을 참여시키려 한다. 그동안 학자들과 현장 활동가들 사이에 담이 생겼다. 과거에 비해 더욱 복잡해진 사태를 포괄적으로 설명하려다보니 담론이 어려워졌고, 이와 동시에 담론의 ‘현장성’이 현저히 떨어졌다. 반면 현장 활동가들은 워낙 많은 문제들과 부딪히다 보니 담론들과의 고리가 엷어졌다. 지금 양쪽이 서로를 필요로 하고 있다. 그래서 연구자들과 활동가들이 결합하는 것이 재단 활동의 중요한 축이다.

­ 문학의 영역은 어떻게 되는가.

= 문학인들의 결합도 중요하다. 문학은 군사독재 시절부터 억압의 숨통을 터주는 역할을 했다. 사회적·실천적인 담론도 문학을 통해 제기됐다. 역사적으로 볼 때, 문학은 사회 변화의 첨단에 있다. 변화의 양상에 가장 예민하게 감응한다. 그래서 문학적인 상상력, 과학적인 인식, 실천적인 경험 사이에서 새로운 통로를 뚫어 21세기적인 새로운 담론과 실천의 가능성을 모색하려 한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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