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이 국가 문화재 등록을 추진한다고 밝힌 1960년 4·18 고대생 시위대 피습사건 당시 학생 부상자 명단의 일부분. 문리대 국문과 학생들의 피습 장소와 부상 정도 등이 여러 사람의 필치로 적혀있다.
1960년 학생과 시민이 3·15 부정선거에 맞서 이승만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4·19 혁명’이 올해로 60돌을 맞는다. 문화재청이 이를 기려 민주화운동 문화유산 가운데 최초로 4월 혁명의 기억을 담은 당시 기록유산을 국가문화재로 등록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9일 발표했다.
문화재청은 이날 보도자료를 내어 “지자체와 유관 기관 추천으로 4월 혁명 관련 유산 179건을 발굴했으며, 최근 문화재선정자문회의를 열어 7건을 올해 등록 추진대상으로 뽑았다”고 밝혔다.
선정된 유산은 1960년 4월18일 고려대생 시위대 피습사건 당시 부상자 명단(3종)을 비롯해 연세대 4월 혁명연구반이 수집한 자료인 ‘혁명 참여자 구술 조사서’(9종)와 ‘4‧19 혁명 계엄포고문’(19종), 허종 <부산일보> 기자가 찍은 3·15 마산항쟁 희생자 김주열 열사의 주검 사진, ‘자유당의 부정선거 자료’, 당시 이승만 대통령의 사임서, ‘마산 지역 학생 일기’, 당시 동성고교생 이병태의 일기인 ‘내가 겪은 4·19 데모’다.
청은 이 유산들 가운데 고려대생 부상자 명단과 연세대 4월 혁명연구반 수집자료는 올해 상반기 안에 문화재위원들의 현장 자료 조사를 거쳐 우선 문화재 등록을 추진할 예정이다. 고려대생 피습사건 부상자 명단은 4‧19 혁명 하루 전 고대생들이 서울 태평로 국회의사당 앞에 진출해 정권 퇴진 요구 시위를 벌이고 돌아오는 길에 정치깡패의 습격을 받은 상황과 폭행장소, 부상 정도 등을 상세하게 담은 사료다. 당시 시위에 참여했다가 폭행을 당한 학생 부상자 이름과 학과, 학년, 맞은 정도 등을 여러 작성자 혹은 한 사람이 적은 초안 2종과 이를 정리한 정서본 (1종)으로 이뤄져 있다.
부상 장소가 ‘천일극장 앞’, ‘국회의사당’, ‘종로3가’, ‘동대문경찰서 앞’ 등으로 표기됐고, 맞은 정도는 “곤봉 엇개(어깨) 맞다” “깡패에 다리 부상 7일 치료” “머리 터지다” “깡패의 몽둥이로 후두부를 맞고 失神(실신)” 등 구체적으로 기재된 것이 특징이다.
고려대생 피습 부상자 명단의 일부분. 4월18일 시위를 마치고 돌아오다 을지로에서 눈 부분을 가격당해 아직도 완치되지 않았다는 기록이 눈에 띈다.
연세대 수집자료는 혁명 당시 이 학교 정치외교학과 4학년생 주로도 꾸려진 ‘4월혁명연구반’이 시위 참여자들을 직접 설문해 작성한 구술 기록물이다. 4·19 데모 목격자와 인근 주민의 조사서, 연행자와 사후 수습사항 조사서, 데모사항 조사서, 부상자 실태 조사서 등으로 구성된다. 대상자에게 정치에 대한 관심, 그 당시의 심정 등을 묻고 대답을 기록해 조사 대상별 정치의식, 사회의식 등이 드러나며, 시위 참여 동기‧경과‧시간‧장소‧해산 시까지 충돌 상황 등도 상세히 기록했다는 점에서 역사적 가치가 크다. 서울 외에 대구 2‧28 시위, 마산 3‧15 시위 참여자 등 전국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구술 조사를 담은 4월 혁명 사료로는 유일하다고 평가된다. 혁명 계엄포고문 자료는 1960년 4월 19일 비상계엄령이 발표된 뒤 계엄사령관 명의로 내려진 각종 시책, 명령 등의 내용을 담은 포고문·훈시문·공고문·담화문들을 포괄한다. 혁명기 비상계엄 치하의 사회상과 국민 통제 양상을 엿볼 수 있는 자료다.
문화재청은 “선정된 유산들은 지자체의 신청과 전문가 현장조사,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국가 문화재로 최종 등록하는 과정을 밟게 된다”며 “관련 유산의 복원 정비와 보호시설 설치를 지원하고 동영상 콘텐츠 제작, 현장 답사 프로그램도 운영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청은 이와 함께 17일부터 4월 혁명 사적지인 3‧15 마산항쟁 현장 등을 영상 다큐멘터리로 만들어 한국교육방송(EBS)에서 7차례 방영할 예정이다.
산하 국립문화재연구소와 연세대박물관 공동주최로 민주화 문화유산의 중요성을 알리는 학술대회를 열고 연세대 4월혁명연구반 수집자료들을 처음 공개하는 특별전도 올해 중에 연세대 박물관에서 열기로 했다.
구체적인 일정은 연구소 누리집(nrich.go.kr)과 연세대박물관 누리집(museum.yonsei.ac.kr)에 공지할 계획이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 문화재청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