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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재난 속에서 살아남은 아이들의 결심

등록 2020-04-18 09:37수정 2020-04-18 11:27

[토요판] 김선영의 드담드담
일본 드라마 <오나가와 생명의 언덕길>
드라마 &lt;오나가와 생명의 언덕길&gt; 갈무리
드라마 <오나가와 생명의 언덕길> 갈무리

2011년 3월11일, 일본 미야기현의 바닷가 마을 오나가와정 지역 전체에 쓰나미가 덮쳤다. 1만14명이던 마을 인구 가운데 무려 827명이 목숨을 잃고, 주요 건물은 물론 주민들의 집도 대부분 파괴됐다. 당시 졸업식을 앞둔 오나가와 소학교 아이들은 고지대의 중학교로 피한 덕에 무사할 수 있었지만, 대부분이 정든 집과 사랑하는 가족을 잃었다. 그때 살아남은 아이들은 한 가지 결심을 한다. 언젠가 또다시 닥쳐올 재난에 대비해, 쓰나미가 몰려온 지점보다 높은 곳에 대피 기준점을 표시한 비석을 세우기로. 단단한 돌에 새겨 1000년 후의 생명들까지도 살리자는 취지였다. 아이들 스스로 계획을 세우고 홍보와 모금 등 모든 활동을 주도한 ‘오나가와 생명의 비석 프로젝트’는 그렇게 탄생했다.

동일본 대지진 8주년을 맞아 일본 <엔에이치케이>(NHK)에서 방영된 드라마 <오나가와 생명의 언덕길>은 바로 이 오나가와 소학교 출신 학생들의 감동적인 실화를 소재로 한 작품이다. 2013년 가을 첫번째 ‘생명의 비’ 건립을 시작으로 마을의 해일 도달점인 21개 장소 전체에 건립한다는 최종 목표까지, 온전히 아이들이 이끌어온 이 프로젝트는 차츰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퍼져 나갔고 마침내 공영방송 특집극으로까지 만들어지게 됐다. 드라마가 방영된 2019년은 그들이 성년을 맞이한 해다. 그때까지 세워진 생명의 비석은 모두 17개였다.

드라마는 동일본 대지진 당시 엄마를 잃은 소녀 사쿠(다이라 유나)의 시점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2018년 가을, 도쿄에서 새로운 출발을 준비하던 사쿠는 ‘생명의 비’ 제막식에 참석하기 위해 남자친구 쇼타(히라노 기나리)와 고향 오나가와에 돌아온다. 영상 감독을 꿈꾸는 쇼타는 사쿠의 고향 방문기를 드론 촬영으로 담아내기로 한다. 재난 이후 벌써 7년, 마을은 아직도 복구 작업이 진행 중이었다. 주택은 고지대에 다시 세워졌고, 쓰나미가 휩쓸고 간 저지대에는 상가가 들어섰다. 이제는 풀들만 수북이 들어선 옛집터에서 사쿠는 쇼타에게 미처 말하지 못했던 재난의 상처를 이야기한다.

드라마 &lt;오나가와 생명의 언덕길&gt; 갈무리
드라마 <오나가와 생명의 언덕길> 갈무리

재난이 지나간 자리에는 폐허만 남는 것이 아니다. 그곳에 분명히 존재했던 이들의 이야기는 사라지지 않는다. 감당하기 힘든 고통을 외면과 망각으로 견뎌내려 했던 사쿠는 터만 남아 있는 마을 곳곳을 걸으면서 오히려 떠난 이들의 존재감과 그들에 대한 사랑을 더 생생하게 확인하게 된다. 사쿠와 아이들이 세우는 ‘생명의 비’는 피해자들에 대한 애도의 표시인 동시에 다시는 똑같은 상실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의지였다. <오나가와 생명의 언덕길>은 그렇게 한 재난공동체가 함께 아픔을 공유하고 기억함으로써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티브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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