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를 한다면>(에스비에스)은 정치 리얼리티쇼로, 4부 중 3부가 방송됐다. 모의 정치 서바이벌 게임으로 정치에 관심이 있는 다양한 계층의 지원자 중 11명의 후보를 뽑아 ‘뽀브리’ 마을에서 2박 3일간 합숙을 하며 선거를 치른다. ‘애정촌’의 짝짓기를 보여줬던 <짝>(에스비에스, 2011)이나, 멤버들끼리의 선거유세를 그럴싸하게 펼쳐 보이던 <무한도전>(문화방송) ‘선택 2014’ 편이 연상되는 기획이지만, 정치의 원형과 한국 정치의 문제점을 고민해보게 만드는 시도였다. 여기에 곁들인 스튜디오 토론도 적절했다. 사회를 맡은 김구라와 김지윤, 표창원, 이재오, 솔비로 구성된 출연진도 고른 안배를 보여줬다.
각 분야에서 뛰어난 능력과 매력, 그리고 나름의 선의를 가진 사람들이 큰 뜻을 품고 정치에 입문하지만, 현실정치의 문턱을 넘지 못하거나 성공하더라도 기존 정치인과 똑같아지는 모습을 많이 보아왔다. 사람이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이 문제이며, 따라서 시스템을 바꾸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시스템을 바꾸려면 어찌해야 할까. 이를 알기 위해서는 시스템을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정치를 한다면>은 시스템이 어떻게 작동하며 어떤 문제를 지니는지 작은 모델을 통해 보여준다.
먼저 11명의 후보가 유권자 앞에서 자기소개를 하고 첫인상 투표가 이루어진다. 강렬한 쇼맨십을 구사하거나 노래를 부르거나 현물 공세를 펴는 것이 효과가 좋다. 반면 자신 없는 모습을 보이는 후보는 한 표도 얻지 못한다. 하지만 이후 그 후보는 꼴찌임을 적극 어필하며, 유권자들과의 일대일 접촉을 통해 역전의 발판을 마련한다. 유권자들은 후보들에게 막일을 시키고 헌신적인 태도에 호감을 느끼거나, 카메라가 없는 곳에서 보이는 태도에서 진정성을 느끼곤 한다.
프로그램은 후보와 유권자의 관계뿐 아니라, 후보들 간의 이합집산을 자세히 보여준다. 거대정당과 군소정당, 그리고 무소속 후보가 받는 지원의 격차를 보여주고, 세를 불리기 위해 어떤 선택을 하는지 드러낸다. 유권자를 향한 정치의 내용보다 후보들 간의 경쟁을 뚫기 위한 정치공학적 판세에 매몰되는 상황도 적나라하게 펼쳐진다. 걸핏하면 신당 창당의 기회가 주어지자, 후보들은 몇 번이나 다른 색으로 점퍼를 갈아입는다. 절박한 승리의 욕망으로 삭발이나 단식이 승부수로 채택되며, 상당한 효과를 발휘한다. 후보들은 자신의 초심과는 다르게 이런 선택에 휩쓸리는 것에 스스로 놀라워한다. ‘게임의 룰’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11명의 후보도 면면을 살펴보면 평범한 사람들은 아니다. 은하선 작가, 장천 변호사 등 대중에게 알려진 사람도 있고, 빈재욱 후보처럼 과거 구의원 선거에 출마했던 사람도 있다. 이들 중 누구라도 출마하거나 비례 후보 명단에 이름을 올리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다. 아니나 다를까. 1·2부에서 ‘꼴찌가 1등 되는 세상’이라는 구호를 멋지게 완성한 정태성 후보(24년차 택시기사·강연가·비전택시대학 총장)가 3부에서 총선 예비후보(종로구·무소속)로 나서는 모습을 보여줬다.
3부는 정치신인이 부딪히는 현실정치의 벽을 여실히 보여줬다. 무소속으로 후보등록을 마치려면 선거구 내에 주민등록이 된 유권자 300명 이상의 추천이 필요하다. 군소정당의 공천을 받아도 1500만원의 기탁금이 필요하다. 선거 비용도 최소 1억원이 든다. 동작구에 출마한 민중당 최서현 후보는 청년주거의 열악한 현실을 알리기 위해 독특한 아이템을 전시하며 분투했지만, 선거 비용이 빚으로 남았다. 반면 거대양당의 공천을 받은 의정부의 오영환 후보(더불어민주당)와 송파구의 김웅 후보(미래통합당)는 당의 체계적인 지원에 힘입어 무난히 국회에 입성했다.
정치 혐오와 냉소에 빠지지 않으려면, 정치의 본질과 생리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정치를 한다면>은 시뮬레이션을 통해 정치의 속성을 보여줬다는 데 의의가 있다. 아쉬운 점도 있다. 짧은 일정, 추운 날씨, 코로나 등으로 주민들과의 접촉이 적었던 점은 못내 아쉽다. 공약과 정책을 개발하고 유세하는 내용보다 후보들끼리의 야합에 더 큰 비중을 둔 편집도 아쉽다. 또한 후보들의 개성이 더 잘 드러나지 못한 것도 아쉽다. 그 결과 대역전극의 맥락이 잘 전달되지 못하고, 기껏 포퓰리즘이나 정치공학을 단순 풍자하는 것처럼 보일 소지도 있었다는 면에서 아쉬움이 크다.
하지만 프로그램의 장점도 명확하다. 몇몇 정치 평론가를 모아 현실정치를 논평하는 정치 예능 쇼의 타성에서 벗어나, 실험적인 기획을 했다는 것 자체가 의미 있다. 또한 현실정치가 처한 가장 큰 맹점을 고발한다는 점에서 예리한 문제의식을 지닌다. 바로 거대양당 중심의 구도로 군소정당이나 무소속은 설 자리가 없는 현실을 정조준하는 것이다. 그동안 거대양당은 지지율에 비해 더 많은 의석을 차지해왔다. 이런 과잉대표의 폐해를 막기 위해 1년간의 진통 끝에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했다. 그러나 거대양당의 파렴치한 꼼수로 다당제의 취지가 무색해지고 헌법적 질서마저 교란됐다. 사회적 약자를 포함한 평범한 시민들의 정치참여를 늘리고, 비례성에 입각해 민의를 제대로 반영하려면 어떤 ‘게임의 룰’을 만들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할 때다. 이제 전선을 새로 그어야 한다.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