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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 미황사의 파격…‘귀공자풍 사천왕상’ 5년만에 완성

등록 2020-04-28 17:51수정 2020-04-29 02:36

오영철·심근호 장인 손길 거쳐
험상궂고 거친 얼굴 유려하게
악귀 대신 소·토끼로 발밑 받쳐
학계, 삼국시대 원형 모델로 추정
미황사 사천왕문 안에 들어선 신작 사천왕상들. 왼쪽이 남방 증장천왕이며 오른쪽은 동방 지국천왕. 두 신상의 발치에서 토끼와 용이 각각 상을 이고 있는 모습이다. 험상궂은 얼굴에 공격적인 자세를 취한 기존 사찰의 사천왕상들과는 전혀 다른 용모와 자태를 지녔다.
미황사 사천왕문 안에 들어선 신작 사천왕상들. 왼쪽이 남방 증장천왕이며 오른쪽은 동방 지국천왕. 두 신상의 발치에서 토끼와 용이 각각 상을 이고 있는 모습이다. 험상궂은 얼굴에 공격적인 자세를 취한 기존 사찰의 사천왕상들과는 전혀 다른 용모와 자태를 지녔다.

험상궂은 얼굴과 떡 벌어진 덩치로 악귀를 밟고 사찰 들머리에서 동서남북을 지키는 신이 사천왕이다. ‘사대천왕’으로도 불리는 이 불가의 수호신은 한국 전통 사찰 하면 떠오를 정도로 강렬하고 친숙한 존재다. 최근 남도 옛 절집에 이런 거친 풍모와 전혀 다른, 우아한 귀공자풍 사천왕상이 등장해 눈길을 끈다.

색다른 조각 불사로 입소문이 난 곳은 ‘땅끝마을 아름다운 절’로 알려진 전남 해남 미황사다. 절 쪽은 5년간의 작업 끝에 미소년과 노년 남성의 온화한 얼굴에 악귀 대신 소, 토끼, 원숭이, 용이 발치에 있는 파격적 구도의 사천왕상 네 구를 완성했다. 남도에서 40여년 불상 조각을 해온 오영철 장인과 불화를 채색해 온 심근호 장인의 작품이다. 미황사는 다음달 2일 경내 사천왕문에서 네 신작 상을 절의 수호신으로 맞는 점안식을 연다.

화염봉과 창을 들고 선 미황사 서방광목천왕. 지혜의 큰 눈으로 세상을 살피는 신이다. 미황사 창건 설화에서 절터를 잡아주었다고 전해지는 검은 소가 신상을 받들고 있다.
화염봉과 창을 들고 선 미황사 서방광목천왕. 지혜의 큰 눈으로 세상을 살피는 신이다. 미황사 창건 설화에서 절터를 잡아주었다고 전해지는 검은 소가 신상을 받들고 있다.

적송으로 짠 사천왕상은 21세기에 걸맞은 현대적인 불신의 도상으로 만들었다. 백제 장인들이 건너가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일본 나라현의 고찰 호류지(법륭사) 금당에 있는 동아시아 최고의 사천왕상 도상을 주된 본보기로 삼았다. 호류지 사천왕상은 보관을 쓴 문인풍의 단아한 옷차림을 한 입상이다. 악귀 대신 동물이 발치에 있는 것이 특징이다. 미술사학계에서는 현재 국내에는 없는 삼국시대 사천왕상의 유력한 원형으로 추정하고 있다. 동쪽을 지키는 지국천왕 발아래엔 미황사 창건 설화에 나오는 검은 소, 남쪽을 지키는 증장천왕 발밑에는 서부도전 부도에 조각된 토끼, 광목천왕 발아래엔 대웅전 기둥 위의 용, 다문천왕 발아래엔 동부도전 부도에 새긴 원숭이를 조각했다. 친근한 동물이 사천왕을 받들어 공덕을 짓는 모습이다.

새 사천왕상은 고대 선조들의 사천왕상을 현대적으로 재현해보겠다는 주지 금강 스님의 발원에서 비롯했다. 스님은 “1996년부터 실상사 홍척국사탑 같은 이 땅 각지의 옛 불탑에 새겨진 문양을 탁본 작업한 것이 계기가 됐다”고 했다. 선조들이 인간적 풍모로 새긴 사천왕상을 보면서, 현시대에 맞는 사천왕상을 구현하겠단 소망을 품었다는 것이다.

사천왕들의 수장으로 북방을 지키는 다문천왕의 세부. 준수한 청년 얼굴을 한 신상이 보탑을 들고 있다.
사천왕들의 수장으로 북방을 지키는 다문천왕의 세부. 준수한 청년 얼굴을 한 신상이 보탑을 들고 있다.

2013년 사천왕문은 완공됐지만, 스님은 3년이 흐른 뒤에야 제작에 착수했다. 백제 조각 장인의 혼과 기량이 스민 호류지 금당 사천왕상을 실제로 보고 새 상의 윤곽을 오 장인과 함께 고민했다. 지난해 10월 외형이 완성돼 사천왕문 안으로 들어왔고, 150여일간 사천왕 복식에 고려 불화의 문양과 색감을 석채와 금물로 입히는 과정을 거쳐 완성했다. 금강 스님은 말했다. “기존 사천왕상과 달리 따뜻한 풍모의 사천왕상을 모신 건 조형적 파격을 넘어서는 절실한 이유가 있어요. 코로나 사태 등으로 인한 미래에 대한 공포심과 두려움을 극복할 용기와 힘을 주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았지요.”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 미황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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