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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여성스럽다’는 표현을 참지 않는 아나운서가 있다는 것

등록 2020-05-08 19:51수정 2020-05-09 02:02

[토요판] 이승한의 술탄 오브 더 티브이
임현주 아나운서 향한 비난의 허점들

안경 쓰고 ‘노브라’ 방송 임현주
MBC 예능 ‘라디오스타’ 출연
성차별 표현 지적 뒤 댓글 테러

성 대결 조장? 애초 ‘여인천하’ 편
칭찬에 딴죽? 김구라 독설은?
여성이 자기 신체에 대한 주권
주장하는 게 그렇게 거슬렸나
문화방송 <라디오스타>에 임현주 아나운서가 출연한 모습. 문화방송 갈무리
문화방송 <라디오스타>에 임현주 아나운서가 출연한 모습. 문화방송 갈무리

<문화방송>(MBC) 임현주 아나운서가 출연한 <라디오스타>가 방영된 뒤, 문화방송 유튜브 채널과 임현주 아나운서의 개인 소셜미디어, 개인 유튜브 채널에는 임현주 아나운서를 비난하는 댓글이 몰리기 시작했다. 임현주 아나운서가 <라디오스타>에서 ‘여성스럽다’라는 표현에 문제 제기를 한 것이 그날의 분위기를 싸하게 만들었다며, 그를 두고 괜한 분란을 만들어 관심을 끌고 성 대결을 조장하는 사람이라고 비난하는 이들이 와르르 몰린 것이다. 물론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수도 있고, 누구든 자신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발언할 자유가 있다. 그러나 임현주 아나운서에게 몰린 비난이 과연 정당하고 합리적인 것인지 한번 따져볼 필요는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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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신경 쓰이는 말이 있었다”

일단 그날 임현주 아나운서의 발언이 정말 <라디오스타>의 분위기와 맞지 않았는가를 보자. 그날의 <라디오스타> 테마는 ‘여인천하’였고, 배우 박해미, 코미디언 홍윤화, 가수 율희, 임현주 아나운서 등의 게스트들과 함께 여성의 신체, 의상, 육아 등의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로 꾸며졌다. 임현주 아나운서는 소개 멘트에서부터 ‘안경 쓰고 뉴스 진행하고 노브라로 방송 진행하며 틀을 깨는 아나운서’라고 소개되었고, 그가 서지현 법무부 양성평등정책 특별자문관,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 이수정 경기대 교수와 함께 주한유럽연합 대표부가 선정한 ‘대한민국 여성 대표’로 뽑혔다는 사실이 프로그램 초반부터 주요하게 부각되었다. 그러니까 임현주 아나운서는 섭외 단계에서부터 그런 이야기를 하라고 불려온 사람이었던 것이다.

‘여성스럽다’라는 표현에 문제 제기를 한 것이 정말 뜬금없었는지도 한번 짚어보자. 그가 그 발언을 한 건, 마침 그에게 ‘하고 싶은 말을 못할 때 제일 스트레스 받는다고?’라는 질문이 던져졌을 때였다. 임현주 아나운서는 질문에 대한 답을 하는 차원에서 “아까부터 계속 신경 쓰이는 말이 있었다”며 이야기를 꺼낸 것이고, 단답형 질문이 오가는 청문회장이 아닌 바에야 이는 자연스러운 대화의 흐름 안에 있는 답이었다. 그는 <라디오스타>가 의도하고 요구한 방향에 맞춰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냈을 뿐이고, 그의 발언이 스튜디오의 분위기를 싸하게 만들었다는 캡처와 해설은 악의적인 왜곡이다.

일각에선 칭찬의 의미로 여성스럽다는 말을 건넨 김국진이나, 그걸 칭찬으로 받아들인 박해미 모두 한참 선배인데, 그들이 오랫동안 익숙하게 사용해온 일상적인 언어 생활에 딴죽을 걸었다며 선배에게 무례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글쎄, 다른 프로그램이라면 또 몰라도, 그게 <라디오스타>였음을 생각하면 좀 당혹스러운 지적이다. <라디오스타>는 원래부터 게스트와 진행자가 나이 구분 없이 서로 찧고 까불며 날카로운 말들을 주고받는 것이 매력인 B급 감성의 토크쇼였다. 김구라가 경력으로 보나 나이로 보나 자신보다 한참 선배인 김종진이나 이계인, 김흥국의 말에 딴죽을 걸고 문제 제기를 할 때에는 아무 문제 없이 쇼를 즐겨 보던 사람들이, 여성 게스트가 선배들의 말에 이의를 제기하면 갑자기 장유유서를 논하는 건 아무래도 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문화방송 &lt;라디오스타&gt;에 임현주 아나운서가 출연한 모습. 문화방송 갈무리
문화방송 <라디오스타>에 임현주 아나운서가 출연한 모습. 문화방송 갈무리

임현주 아나운서의 발언이 그날 참석한 자리의 의도와도 맞고, 쇼의 문법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이제 임현주 아나운서 개인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한다. 개인의 직무 역량으로 인기를 누리는 것이 아니라, 안경이나 브래지어 착용 여부 같은 사회적 이슈를 이용해 관심을 모으고 그를 통해서 인기를 누리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는 식의 비판이다. 일단 임현주 아나운서가 과연 직무 역량 면에서 비판받을 만큼 아나운서 일을 못하느냐 하는 질문에 대해서는 더 길게 답해야 할 이유를 못 느끼겠다. 그는 문화방송 <뉴스투데이>의 앵커였고, <경제매거진 엠(M)>의 진행자였으며, <생방송 오늘 아침>의 사회자다. 정통 뉴스 프로그램과 경제 뉴스, 모닝 뉴스 쇼를 모두 진행해본 프로페셔널이다. 그가 정말 직무 역량이 떨어지는 사람이라면, 오랜 암흑기를 겪고 돌아와 언론으로서의 신뢰도를 회복하는 일이 시급했던 문화방송이 굳이 그를 중하게 기용했을 이유가 없다.

그보다 더 본질적인 질문은, 과연 사회적 이슈에 대해 발언하는 것이 아나운서의 직무 범위를 벗어난 일인가 하는 것이다. 물론 아나운서는 흔히 뉴스를 중립적인 목소리로 전달하는 전달자로 여겨진다. 그런 탓에 아나운서를 언론인으로 평가하길 꺼리고, 방송사에 소속된 방송인 정도로 바라보는 시선들도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아나운서는 뉴스 스튜디오 안에서 까다로운 인터뷰를 진행하며 상대로부터 대답을 이끌어내기도 하고, 앵커 멘트나 브리핑을 통해 뉴스에 대한 자기 나름대로의 관점과 해석을 적극적으로 제시하기도 하며, 전체 뉴스가 나아가는 방향을 함께 조율하며 뉴스의 톤 앤 매너를 잡아가는 데 기여한다. 결국 뉴스를 진행하는 아나운서는 그 직무의 특성상 언론인의 성격을 지닐 수밖에 없다. 그리고 언론인이라면, 대중의 이목을 모아 자신이 생각한 당대의 주요 어젠다에 대해 발언할 기회로 삼는 건 엄연히 직무의 영역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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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스러워’ 대신 ‘너다워’ ‘매력 있어’

참석한 자리의 의도에도 맞고, 쇼의 문법과도 크게 어긋나지 않으며, 개인적으로도 굳이 비판을 받아야 할 이유가 없는 상황이라면, 이 모든 비판은 그저 그의 발언이 마음에 안 들어서 쏟아지는 것이라고 해석하는 게 가장 합리적일 것이다. 그렇다면 게스트들이 적극적으로 이야기에 참여하지 않으면 성의가 없다고 욕을 먹곤 하는 <라디오스타>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웃고 떠들었던 임현주 아나운서의 발언은 왜 마음에 안 드는 것인가? 결국 여성이 자신의 신체에 대한 주권을 주장한 게 마음에 안 들어서 그런 것이 아닐까? 특정한 덕목과 가치를 ‘여성스럽다’ ‘남성스럽다’는 말로 수식함으로써, 여성·남성이라면 응당 이래야 한다는 성 고정관념을 강요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거슬려서 그런 게 아닐까? 다른 이유들을 모두 소거하고 나니, 애석하게도 끝까지 남는 건 이것뿐이다.

그리고 임현주 아나운서의 말처럼, ‘여성스러움’과 ‘남성스러움’은 대부분 사회가 규정한 것이지 호르몬의 문제는 아니다. 심지어 무엇이 남성적이고 무엇이 여성적인가 하는 것은 시대에 따라 다양하게 변해왔다. 지금은 영락없이 여아들의 색깔이라 여겨지는 분홍색은, 원래 193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남아들의 색깔이었다. 힘과 정열을 상징하는 빨간색이 남성의 색깔이라 간주되었기에, 톤 다운된 분홍색은 ‘어엿한 남자’로 자라나는 과정에 있는 남아들에게 권장되는 색깔이었던 것이다. 한반도의 남성들은 조선시대까지도 치렁치렁한 귀걸이를 하는 게 당연한 일상이었다. 어느 정도였는가 하니, 선조가 남성들의 귀걸이 착용을 금지한 게 1572년인데, 20년이 지난 임진왜란 당시 기록을 보면 왜장들이 자신들이 베어 온 수급이 조선인 머리가 맞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귀를 살폈다고 한다. 귀걸이 구멍이 있으면 조선인이라는 거다. 귀걸이 구멍은 1~2년만 착용을 안 해도 도로 막힌다는 걸 고려하면, 나랏님이 어명으로 금지한 지 20년이나 지났음에도 조선의 사내들은 여전히 귀를 뚫고 다녔단 얘기다. ‘여성적’ ‘남성적’이라는 고정관념에서 자유로워져서 상대의 매력을 있는 그대로 칭찬하자는 이야기가 그렇게까지 거슬릴 일인가?

누구나 자기 의견을 가질 권리가 있고, 그 의견을 표현할 자유도 있다. 임현주 아나운서의 개인 소셜미디어로 몰려가 댓글을 단 이들도 아마 그 표현의 자유를 행사하러 간 것이리라. 그러나 어떤 발언도 그 발언으로 인한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으며, 정당하고 합리적인 범위를 벗어난 비판은 결국 악의적인 비난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악의적인 비난이 한 개인을 향해 집단적으로 가해지는 것을 우리는 보통 린치라고 부른다. 여성의 입을 틀어막고 그의 언어를 지워버리는 악의적인 린치를, 이젠 좀 끝낼 때도 되지 않았나? 심지어 김구라조차 임현주 아나운서의 말을 경청하고 노력하겠다 답하는 올해는 벌써 2020년. 이젠 그만할 때도 됐다. 티브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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