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이현 소설가
저공비행
그를 딱 한번 보았다.
1994년, 봄이었고 안암동에 있는 한 대학의 축제였다. 열 손가락으로 따지지도 못할 만큼 오래 전이다. 그래서일까. 그날 밤의 세부적인 일들이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다. 동행들이 누구였는지, 어쩌다 그 자리까지 가게 된 것인지, 또 무대에 어떤 게스트들이 초대되어 나왔는지 아득하기만 하다. 기억나는 건 단 하나. 그의 목소리뿐이다. 그 목소리를,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김광석 아저씨. 이상하다. 나에게 그는 늘 ‘아저씨’다. 왜 ‘김광석 아저씨’라는 표현이 제일 자연스러운지 모를 일이다. 그날의 이야기를 조금 더 해야겠다. 한껏 흐드러진 봄밤이었다. 축제의 밤에 모인 사람들은 아주 즐거워 보였다. 모두들 땅에서 살짝 발을 떼기라도 한 것처럼 붕붕 거리는 드넓은 캠퍼스 한구석에서, 나는 어깨를 옹송그리고 있었다. 따뜻한 밤이었는데, 지독하게 춥게 느껴졌고 자꾸만 몸을 움츠리게 되었다. 그때, 그를 만났다. 그는 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불렀다.
어제는 하루 종일 비가 내렸어/ 자욱하게 내려앉은 먼지 사이로/ 귓가에 은은하게 울려 퍼지는 그대 음성 빗속으로 사라져버려/ 때론 눈물도 흐르겠지 그리움으로/ 때론 가슴도 저리겠지 외로움으로/ 사랑했지만 그대를 사랑했지만/ 그저 이렇게 멀리서 바라볼 뿐 다가설 수 없어.
내부에서 무엇인가가 움직였다. 미미하고 뭉클하게. 그것은 세상에서 오직 나 혼자만이 알 수 있는 느낌이었다. 정신을 차려 보니 어느새 나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어설픈 풋사랑에 실패한 여자아이에게, 사랑의 끝이란 ‘그렇지만’의 단념을 품고 있는 것이라고 가만가만 일러주던 목소리. 그러니 다 괜찮다고 위로해주던 목소리. 그때 태산처럼 커 보이던 그 사내의 나이는 고작 서른한 살이었다.
며칠 전, 그의 열 번째 기일이었다. 그날 저녁, 오랜 친구들을 만났다. 송년회도 못했는데, 신년회라도 해야 할 거 아니야? 나이 한 살 더 먹은 게 뭐가 좋다고 신년회씩이나. 술 한 잔을 앞에 두고 누군가 불쑥 말했다. 오늘 김광석 십 주기래. 설마, 벌써 그렇게 됐다고? 진짜야, 네이버에서 봤는걸. 십년이나 됐구나, 정말 그렇구나. 근데 그거 아냐? 김광석 죽었을 때 우리보다 어렸던 거. 우리 이제 서른다섯이야.
친구 하나가 허허 웃었다. 헛, 참 쪽팔리네. 그런 말을 중얼거렸던 것도 같다. 뭐가 ‘쪽팔리다’는 건지 아무도 구태여 물으려 하지 않았다. 십년. 대통령이 세 번 바뀌었으며, 서울의 아파트 값은 천정부지로 뛰었고, 사람들은 문자메시지로 새해인사를 하게 되었다. 혹자는 십년이 눈 깜짝할 새 지나갔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단지 눈을 감았다 뜰 뿐인 사소한 움직임을 위하여 여러 개의 근육들이 제자리에서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김광석이 대한민국 제일의 뮤지션이었다고 우기고 싶지는 않다. 어쩌면 그는 그런 순위에서 한 걸음 비켜 선 존재다. 내가 그의 음악을 사랑하는 이유는, 그가 완벽하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그는 듣는 이를 압도하려 들지 않는다. 강요하지도 않는다. 그의 노래에는 틈이 많다. 듣는 이로 하여금 그 여백 속에서 스스로를 반추하게 만든다는 데에 김광석 노래의 진정한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죽음을 택했을 때부터 그는 저잣거리로부터 잊히길 바랐던 건 아닐까, 혼자 공연히 추측해보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그의 죽음이 신화가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지난 십년 동안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 십년도 그가 ‘여기’ 나직한 곳에 함께 있었으면 좋겠다. 그를 딱 한번 보았다. 그저 눈물 흘렸을 뿐, 고맙다는 편지조차 보내지 못했다. 그보다 많아진 나이를 뻔뻔하게 들이밀며 이제 용기 내어 말하련다. 고마워요, 아저씨. 생의 비밀들을 알게 해주어서. 정이현/소설가
어쩌면 죽음을 택했을 때부터 그는 저잣거리로부터 잊히길 바랐던 건 아닐까, 혼자 공연히 추측해보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그의 죽음이 신화가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지난 십년 동안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 십년도 그가 ‘여기’ 나직한 곳에 함께 있었으면 좋겠다. 그를 딱 한번 보았다. 그저 눈물 흘렸을 뿐, 고맙다는 편지조차 보내지 못했다. 그보다 많아진 나이를 뻔뻔하게 들이밀며 이제 용기 내어 말하련다. 고마워요, 아저씨. 생의 비밀들을 알게 해주어서. 정이현/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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