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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쏟아지는 영상 ‘무료 콘텐츠’, 누가 만드는지 안다면

등록 2020-05-23 09:16수정 2020-05-24 16:01

[토요판] 이승한의 술탄 오브 더 티브이
코로나 시대의 ‘영상 노동자’

거리두기와 ‘집콕’ 시대
동영상 문화 콘텐츠 폭증
과금 없는 콘텐츠가 대부분
고정 프로나 제작 규모는 축소

동영상 소비 가장 활발한데
비정규직·외주업체 소속 등
노동자 더 위태로워진 ‘역설’
‘청주방송 고 이재학 피디 사망사건 진상규명 대책위원회’가 지난 3월24일 청주방송 사옥 앞에서 회사 쪽과 부당해고 관련 소송을 벌이다 숨진 이재학 프리랜서 피디의 49재 추모 결의대회를 열어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요구했다.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제공
‘청주방송 고 이재학 피디 사망사건 진상규명 대책위원회’가 지난 3월24일 청주방송 사옥 앞에서 회사 쪽과 부당해고 관련 소송을 벌이다 숨진 이재학 프리랜서 피디의 49재 추모 결의대회를 열어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요구했다.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제공

사람들이 동영상을 이렇게 오래 본 적이 전에 또 있었던가. 안 그래도 폭발적으로 성장하던 동영상 콘텐츠 시장은 2020년을 기점으로 압도적인 지위에 올랐다. 공급 측면에서 질적 성장이나 양적 증대가 있었던 건 아니지만, 코로나19라는 외부 요인으로 인해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이다. 전세계가 사회적 거리두기를 시작한 이후, 문화 콘텐츠를 갈구하던 이들은 모두 가장 가깝고 친숙한 매체인 스크린 앞으로 돌아왔다. 티브이, 컴퓨터, 태블릿, 스마트폰 등 집 안에서 영상을 재생할 수 있는 스크린이라면 사이즈는 별 상관이 없었다. 사람들은 넷플릭스나 왓챠플레이를 영화관의 대체재로 삼았고, 일상의 루틴에 치여 티브이를 켤 겨를이 없었던 이들은 일상이 사라지자 미뤄뒀던 드라마 몰아보기에 돌입했다.

한 가지 의미심장한 것은 전파를 통해 ‘방영’되는 콘텐츠의 카테고리가 급속도로 팽창했다는 점이다. 이제 기존의 티브이 드라마, 예능, 교양, 다큐멘터리, 뉴스 등의 콘텐츠만 방영되는 게 아니라, 영상을 통해 담아낼 수 있는 거의 모든 종류의 대중문화예술 장르가 방영되기 시작했다. 콘서트와 연극이 취소된 자리는 온라인에 올라오는 공연 영상으로 메웠다. 에스엠(SM)엔터테인먼트와 네이버는 함께 손을 잡고 유료 온라인 콘서트인 ‘비욘드 라이브’를 선보였고, 도이체 그라모폰은 다니엘 바렌보임이나 조성진과 같은 세계적인 아티스트들을 모아 무관중 온라인 공연 ‘모멘트 뮤지컬’을 론칭했다. 실제 공연장이나 극장이 제공하는 생생한 스펙터클을 따라갈 순 없지만, 코로나19의 시대엔 당연한 수순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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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무료의 맛’ 즐기는 동안

방영되는 콘텐츠가 많아졌다는 건 방송 노동자들이 새로 해야 할 일 또한 많아졌다는 걸 의미한다. 평범한 시민들은 코로나19 전파를 막기 위해 집에 머무를 것을 권장받지만, 방송 노동자들은 시청자들이 집에서 즐길 만한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현장에 나가는 걸 피할 수 없다. 마치 사람들이 외식이나 쇼핑을 하러 나가지 않는 대신에 배달을 자주 시키면서 역설적으로 배달 노동자들은 쉴 수 없는 상황이 온 것처럼, 방송 노동자들 또한 시청자들이 즐길 만한 콘텐츠를 공급해주기 위해 집 밖으로 나서야 하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기존에 제작하던 예능이나 드라마 콘텐츠를 만드는 것에만 그치는 게 아니라, 콘서트를 실감나게 영상으로 담아 전송하기 위해 무대를 꾸미고 카메라를 설치하는 등의 일들이 갈수록 늘어날 것이다.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제공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제공

언뜻 남들 다 일을 쉬어야 하는 상황에 누구는 일감이 생겨서 좋겠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꼼꼼히 따져보면 그렇지 않다. 방송 노동자들이 일하는 환경 중 상당수가 코로나19 방역 대책이 그리 꼼꼼히 준수되지 않는 환경이라는 점을 차치하고라도, 지금의 상황은 결코 안정적인 상황이 아니다. 코로나19 이후 이어지는 온라인 콘서트나 연극 중계 같은 이벤트들은 아직 단발성 이벤트에 가깝고, 설령 사태가 장기화되어 어느 정도 정례화된다고 한들 그게 코로나19 종식 이후에도 유효한 일자리일지 장담할 수는 없다. 초단기 아르바이트의 수요가 신규 창출된다고 볼 수 있지만, 일자리의 질이 어떤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공연의 빈자리를 방영으로 대체하는 이벤트들이 대부분 과금을 하지 않는 무료 콘텐츠이며 참여하는 아티스트들 또한 대부분 ‘재능 기부’ 형식으로 일을 하고 있다는 걸 생각해보면, 그렇게 창출되는 초단기 아르바이트가 제공하는 급여 또한 그 수준이 높지 않을 확률이 높다.

사실 일감이 늘어난다는 가정 또한 정확한 전망은 아니다. 신규 콘텐츠의 수요가 증가하긴 했지만, 코로나19 영향으로 제작이 중단 혹은 무기한 연기되거나 규모가 축소되는 프로그램도 다수 존재하기 때문이다. 당장 스튜디오 촬영으로 대체하기 어려운 야외 촬영 프로그램의 경우, 종사하는 브이제이(VJ)나 현장 스태프들이 고용의 위협을 당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방송 콘텐츠 제작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 중 절대다수가 비정규직이거나 외주업체 소속 노동자라는 사실은 이제 공공연한 사실이다. 심지어 제대로 된 표준근로계약서 작성도 없이 구두 계약으로 일을 하는 경우도 상당수다. 프로그램이 제작 중단이나 무기한 연기 상황이 되면,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사용자 쪽인 제작사나 방송사로부터 동의 없는 무급휴직을 강요받게 된다. 안 그래도 노동환경이 열악하고 고용조건 또한 취약하기로 유명한 방송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코로나19 팬데믹 사태를 기점으로 그나마 확보하고 있던 고용안정성마저 잃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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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생산자’에게 연대를

정리해보자면 이렇다. 코로나19로 인해 방송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지위는 더 흔들린다. 그나마 안정적으로 함께하던 고정 프로그램이 취소되거나 제작 규모가 축소되면서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이 증가한다. 이 중 운이 좋은 이들은 단발성 이벤트로 마련된 공연 중계 콘텐츠 등의 제작 현장에서 일할 기회를 얻는데, 그 현장의 상당수는 코로나19 방역 대책이 충분치 않거나, 급여 수준이 그리 높지 않으며, 단발성 이벤트인 탓에 고용의 지속성 또한 담보되지 않은 현장이다. 그리고 비정규직 노동자인 탓에 고용보험의 혜택을 입을 수도 없고 고용유지지원금 제도에서도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사람들이 가장 열심히 동영상 콘텐츠를 소비하고 있는 이 시기에, 역설적으로 방송 노동자의 절대다수는 가장 위태로운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이다.

티브이 프로그램을 비평하다 보면 종종 업계 종사자들로부터 볼멘소리를 듣게 될 때가 있다. 수많은 스태프가 밤잠을 설쳐가며 힘을 모아 만들어낸 피땀 어린 작품인데, 평론가들은 그저 집에 앉아 편하게 시청한 뒤에 그 결과물을 놓고 너무 쉽게 혹평한다는 말 말이다. 현장이 얼마나 열악한지 영 모르는 바는 아니기에 일견 미안한 마음도 있지만, 그럼에도 의문이 드는 건 사실이다. 현장에서 일하는 방송 노동자들이 제대로 된 근로계약서도 없이 일을 하고, 고강도 초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제대로 된 안전설비도 없는 현장에서 일하다가 사고를 당하는 모든 일들은 사실 방송사와 제작사의 책임이 아닌가. 그에 대한 양심의 가책이 왜 평론가들의 몫으로 돌려지는가 하는 의문은 아직도 변함이 없다.

그러나 방송 관련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그 마음의 빚을 갚고 뭔가 기여할 수 있는 게 있다면, 아마 이런 일들을 알리는 것이리라. 민주노총 공공연대노동조합은 방송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위한 고용보험 전면 적용을 요구하는 국회 청원 서명운동에 돌입했다. 방송 비정규직 동의 없는 무급휴직 중단, 작업환경 내 코로나19 방역 대책의 철저한 시행, 표준근로계약서 작성과 고용보험 전면 적용 등을 골자로 한 이 서명운동은 온·오프라인 모두에서 진행 중이다.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는 코로나19로 인한 방송 노동자들의 피해를 접수하는 온라인 제보 창구를 마련했다. 코로나19를 이유로 일방적으로 무급을 강요당하거나, 안전대책 없이 촬영 강행을 요구당하는 피해 사례가 있다면, 그 창구를 통해 제보할 수 있다.

코로나19 때문에 티브이 앞에, 스마트폰 앞에, 컴퓨터 앞에 앉아서 동영상 콘텐츠를 시청하는 시간이 길어진 건 나 하나가 아닐 것이다. 많은 시민들이 어둡고 답답한 심사를 동영상 콘텐츠가 주는 위안으로 달래며 이겨내고 있을 테니까. 그리고 그에 보답하는 가장 쉽고 빠른 방법은, 그 모든 위안과 즐거움을 가능하게 해준 방송 노동자들이 좀 더 안전한 환경에서 일할 수 있도록 연대해주는 일일 것이다. 비록 스크린 이쪽과 저쪽으로 나뉘어 몸은 떨어져 있더라도, 마음으로 손을 잡아 함께하는 일이 불가능하지 않으리라 믿는다. 티브이 칼럼니스트

민주노총 공공연대노동조합 방송 비정규직 고용보험 서명운동: https://bit.ly/DMC서명운동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방송노동자 코로나19 피해 신고 센터: https://bit.ly/방송노동코로나피해

▶티브이 칼럼니스트. 정신 차려 보니 티브이(TV)를 보는 게 생업이 된 동네 흔한 글쟁이. 담당 기자가 처음 ‘술탄 오브 더 티브이’라는 코너명을 제안했을 때 당혹스러웠지만, 지금은 그러려니 한다. 굳이 코너명의 이유를 붙이자면, 엔터테인먼트 산업 안에서 무시되거나 간과되기 쉬운 이들을 한명 한명 술탄처럼 모시겠다는 각오 정도로 읽어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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