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블베이스 독주회 여는 성미경. 봄아트프로젝트 제공 ©심규태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책 <콘트라바스>(더블베이스)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녀석은 늘 저렇게 우두커니 서서 … 두 눈을 똑바로 뜨고 우리를 구경하는 것 같다.” 길이 2m, 무게 20㎏. 몸집에서 풍기는 포스가 범상치 않다. 더블베이스 얘기다. 하지만 큰 몸집도 오케스트라 무대에선 한없이 작아진다. 맨 뒷줄 구석에 자리하는데다 솔로 파트도 없는 녀석에게까지 시선을 주기에는 화려한 악기가 너무도 많다.
그런 더블베이스의 매력을 오롯이 느낄 기회가 찾아온다. 30일 서울 예술의전당 아이비케이(IBK)챔버홀에서 열리는 성미경의 더블베이스 독주회다. 더블베이스는 묵직한 저음이라 솔로 연주가 쉽지 않다. 독주회 자체가 모험이다. 국내에서는 성미경의 오빠인 더블베이시스트 성민제 정도가 꾸준히 시도하고 있다. 최근 <한겨레>와 만난 성미경은 “더블베이스의 매력을 제대로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아티스트로서 성미경이 다시 차곡차곡 쌓아간다는 시작의 의미”도 있다. 성미경은 중국 상하이 심포니 오케스트라 수석 연주자로 활동하다 지난해 6월 한국에 ‘완전히’ 들어왔다.
‘화려한 조명’을 받진 못하지만, 더블베이스는 오케스트라의 뼈대다. “오케스트라에 지휘자는 없어도 되지만 콘트라바스는 없으면 안 된다”(<콘트라바스>)는 말처럼 묵직한 저음이 모든 악기의 기초를 잡아준다. 관통력이 좋아 소리가 멀리 퍼져나가는데 묵직한 소리에 마음이 따뜻해진다. 성미경은 “기회가 없을 뿐이지 한번 들으면 깊은 울림에 빠져 또 찾게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런 더블베이스를 “대중적인 악기로 만들고 싶다”는 소망에 이번 공연에서도 더블베이스를 위해 작곡된 곡이 아닌 슈베르트의 ‘백조의 노래 중 세레나데’와 멘델스존의 ‘첼로 소나타 디(D)장조’, 라흐마니노프의 ‘첼로 소나타 지(G)단조’를 연주한다. “멘델스존과 라흐마니노프의 곡을 더블베이스로 연주하는 건 국내 처음”이다. 러시아 출신 피아니스트 일리야 라시콥스키가 협연자로 나온다.
저음의 악기가 다채로운 곡을 소화할 수 있을까? 유튜브에 공개된 성미경의 연주를 보면 편견이 깨진다. 바이올린 등 다양한 악기를 공부한 덕인지 저음 안에서 소리의 고저를 밀도 있게 표현한다. 그는 자신의 키를 훌쩍 넘긴 더블베이스를 온몸으로 감싸 안는다. “반음 세 개를 짚으려면 손가락을 쫙 펴야 할 정도로 오른팔에 힘이 없으면 평범한 소리도 내기 힘든 악기”(<콘트라바스>)를 그는 공연마다 구부정한 자세로 힘차게 연주한다. “팔, 어깨 등 온몸이 아파요. 그래서 더블베이시스트들은 헬스, 필라테스 등으로 근력을 키워야 해요.” 갖고 다니기도 쉽지 않다. “국외 연주를 갈 때면 엄마와 둘이서 낑낑 메고 가죠. 택시도 쉽게 탈 수 없어 중국 공항에선 3시간 기다린 적도 있어요.” 그래서 ‘남성의 악기’라는 편견도 있다. 실제로 한국엔 여성이 많은 편이지만, 외국 더블베이시스트 중엔 남성이 많다. 그는 “중국에서 활동할 때도 오케스트라 더블베이시스트 중에 여성은 나 혼자였다”며 “유럽 오케스트라 중에는 오디션에 여성은 참가시키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그런 편견을 성미경은 깨고 싶다. “내가 왜 안 돼? 작은 체구의 여성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성미경은 더블베이시스트인 아빠와 오빠의 영향을 받았다. 11살 때인 2004년 한미 콩쿠르 1위를 시작으로 2010년 세계적 권위의 독일 마티아스 슈페르거 더블베이스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이름을 알렸다. 이제는 개인의 영광보다 더블베이스 저변 확대에 관심이 많다. “더블베이스는 학원이 없기 때문에 접하기 힘들죠. 초등학교에 가서 연주를 들려주는 등 아이들이 이 악기를 접할 기회를 많이 만들고 싶어요.” 유튜브에서 일상을 공개하는 등 클래식을 가깝게 만들고 싶은 욕심도 있다. “영화관처럼 지나가다가 즉흥적으로 들어가서 볼 수 있을 정도로 클래식을 친근한 문화로 만들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 티브이, 라디오 출연도 기회가 닿으면 마다치 않을 생각이다.
대중성을 갖기에 아직 제약은 많다. 솔로는 물론 실내악에서 전속으로 참여하는 경우도 드물어 대부분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활동한다.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더블베이스 곡도 많지 않다. 성미경은 “미국에서 공부할 당시 솔로 연주를 시도하는 것 자체를 신기해할 정도로 넘어야 할 산이 많지만, 더블베이스만의 매력을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더블베이스는 주목받지 못해도, 묵묵히 제 역할을 하며 사회를 빛내는 소시민과 닮았다. 성미경의 공연을 놓쳤다면, 더블베이스 세계에서 베토벤 같은 존재인 조반니 보테시니의 대표곡인 ‘엘레지’를 들어보자. 절절한 멜로디에 흠뻑 빠져 다음 공연을 손꼽아 기다리게 될지 모른다.
남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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