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진미의 TV 톡톡]
<굿캐스팅>(에스비에스)은 첩보물의 외피를 쓴 코믹액션물이다. 국가정보원 소속의 세 여성 요원들이 산업스파이를 잡기 위해 잠복 작전을 펼친다는 설정이지만, 서사의 정교함이나 사건의 치밀함 따위는 개나 줘버린 상황이다. 첫 회만 봐도 누가 악당이고 배신자인지 충분히 짐작되며, 서사는 시청자들의 짐작대로 흘러간다. 하지만 전개는 매우 호쾌하다.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고 재밌는 에피소드들을 연속으로 배치하여, 마치 하이라이트 동영상 모음을 보는 듯하다. 드라마는 쾌감과 공감을 얻는 데 성공했는데, 이는 느슨한 코미디와 화려한 여성 액션, 그리고 짠 내 나는 여성 캐릭터에 방점을 찍은 덕이다.
드라마는 상황극을 활용한 코미디를 바탕으로 잔재미를 만들어 나간다. 가령 첫 회에서 백찬미(최강희)의 등장을 보자. 미사포를 쓰고 기도하며 등장한 백찬미가 돌연 리드미컬한 춤사위를 선보이다 대걸레 자루로 모두를 한방에 때려눕히는 시퀀스는 실로 만화 같다. 진짜 만화도 등장한다. 작전을 설명할 때 만화 그래픽이 등장하고, 드라마 타이틀에도 꽤 공들인 그래픽을 활용했다. 또한 과거 달달한 회상 장면을 흑백 무성영화처럼 처리하는가 하면, 매회 영화의 쿠키 영상처럼 에필로그를 배치해 코믹 감성을 더했다.
혹자는 세 여성 요원의 활약을 보고 영화 <미녀 삼총사>를 떠올리기도 한다. ‘옛날 사람’이다. 그보다는 할리우드 영화 <오션스8>, <스파이>, 미국 드라마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의 영향을 제대로 받았다. 또한 영화 <비정규직 특수요원>과 <걸캅스>로 이어지는 나름의 계보를 잇고 있으며, 최근 <에스비에스> 드라마로 <하이에나> <아무도 모른다>에 이어 <굿캐스팅>이 편성된 것도 일정한 흐름을 보여준다. 이는 말할 것도 없이 페미니즘의 부상에 따른 결과다.
드라마에서 단연 돋보이는 점은 여성 액션이다. 과거 여성 액션은 머리끄덩이를 잡고 싸우는 식으로 묘사됐지만 차차 수준이 높아졌다. 그 결과 <악녀> <미옥> <마녀>처럼 여성 액션을 전면에 내세운 영화도 나왔지만, 그보다 흔하게는 <극한직업>처럼 남성 액션이 주를 이룬 가운데 여성들끼리 합을 겨루는 액션이 특설 코너인 양 삽입됐다. <굿캐스팅>의 여성 액션은 분량으로 보나 강도로 보나 다채로움으로 보나 그간의 작품에서 보았던 수준을 훌쩍 뛰어넘는다. 지극히 대중적인 드라마에서 여성 액션을 이 정도로 화려하게 보여주는 것은 상당한 의미가 있다.
역대 멜로 주인공으로 깊은 인상을 남긴 드라마 <시크릿 가든>의 길라임(하지원)은 직업이 액션 배우였다. 강한 몸을 만들기 위해 체력훈련을 하고, 위험한 액션에 몸을 내던지는 길라임의 모습은 청순가련형이나 귀요미 캐릭터에 익숙했던 시청자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줬다. 여성의 몸과 행동이 남자의 사랑이 아닌 자아실현을 위해 쓰이는 것 자체가 생경해 보였기 때문이다. 강한 액션을 펼치는 여성 캐릭터의 대중화는 여성의 몸과 행위에 대한 인식을 개선할 뿐 아니라, ‘여자 배우’의 영역을 멜로물에 한정 짓지 않고 확대하는 효과를 낸다. <굿캐스팅>에서 총도 쏘고, 공중 발차기도 하고, 뭔가를 던져 목표물을 타격하는 멋진 최강희를 보라. 여자 배우의 역할에 한계는 없다.
세 명의 주인공은 현실의 여성들이 처해 있는 상황을 잘 보여준다. 백찬미는 뛰어난 요원이었지만, 3년 전 작전 실패의 책임을 지고 감방에 간다. 남성 연대가 강력하게 작동하는 조직에서 개별 여성들은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조직에서 일정 수준 이상 키워지지 않는다. 남성 상사나 동료에게 성과를 빼앗기기 일쑤이고, 최악의 경우 실패의 책임을 떠안고 가장 먼저 잘리기도 한다. 백찬미는 조직 안에서 재능과 열정을 착취당하는 직장 여성의 애환을 그대로 보여준다.
한편 황미순(김지영)은 과거 훌륭한 요원이었으나 경력이 단절된 중년 여성으로, 우리 사회 곳곳에 존재하지만 안 보이는 존재처럼 취급되는 ‘비가시화된 여성노동자’를 대변한다. 그는 보험설계사, 청소용역직원, 주방보조의 모습으로 잠입하며, 남편과 달리 집 안에서도 끊임없이 가사노동을 한다. 그럼에도 왜 노동은 줄곧 남성들의 전유물인 양 말해지는가.
임예은(유인영)은 생계노동과 돌봄노동을 함께 하는 싱글맘의 처지를 잘 보여준다. 후방 지원 업무만 해왔을 뿐 현장 경험이 전무한 그가 현장에 투입된 것은 생계와 주거의 압박 때문이었다. 회사에 인턴사원으로 잠입한 뒤에도 그는 끊임없이 상사와 거래처(연예인)의 갑질에 시달린다. 사실 그는 최고의 해킹 실력을 지녔지만, 낮은 자신감에 휩싸여 산다. 이는 많은 직장 여성이 놓인 심리적 상황과 다르지 않다.
드라마의 제목은 흡사 자기소개 같다. 엉뚱하고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최강희가 ‘로얄 또라이’ 역할을 맡은 것은 적역이다. 오랜만에 주연을 맡아 “처음 보는 신인인데 연기를 잘한다”는 황당한 댓글을 받은 김지영도 경력단절을 넘어선 황미순의 역할에 딱 맞는다. 또한 주로 ‘얄미운 악녀 캐릭터’로 소비되곤 했던 유인영이 여성 선배들과 뒹굴며 배우로서 역량을 발휘하고 성장하는 모습은 극 중 임예은의 상황과 겹쳐져 묘한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모쪼록 <굿캐스팅>의 성공으로 더 많은 여성 드라마가 만들어져 더 많은 여성 배우들이 ‘굿캐스팅’ 되길 기대한다.
대중문화평론가

드라마 <굿캐스팅>의 한 장면. 에스비에스 제공


드라마 <굿캐스팅>의 한 장면. 에스비에스 제공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