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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여기서 볼 줄이야, 영화와 드라마 ‘완전히 무너지는 경계’

등록 2020-07-17 20:00수정 2020-07-18 02:33

[토요판] 이승한의 술탄 오브 더 티브이
손잡은 스트리밍과 티브이의 모험

스트리밍 ‘웨이브’와 문화방송
공동배급 드라마 ‘SF8’ 공개
상업영화계 모험 힘든 현실 속
감독 개성 진한 신작 8편 모아

드라마는 ‘영화적 스케일’ 확보
영화는 스마트폰 화면 속으로
드라마-영화 구분 무의미해져
스트리밍 플랫폼 ‘웨이브’가 8부작 에스에프(SF) 앤솔러지 드라마 시리즈 <에스에프에잇>(SF8)을 공개했다. <에스에프에잇>은 독립적인 스토리라인을 가진 40분짜리 단막극 여덟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연출한 이들은 모두 현역으로 활동 중인 한국 영화감독들이다. 웨이브 공식 누리집 갈무리
스트리밍 플랫폼 ‘웨이브’가 8부작 에스에프(SF) 앤솔러지 드라마 시리즈 <에스에프에잇>(SF8)을 공개했다. <에스에프에잇>은 독립적인 스토리라인을 가진 40분짜리 단막극 여덟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연출한 이들은 모두 현역으로 활동 중인 한국 영화감독들이다. 웨이브 공식 누리집 갈무리

드라마와 영화 사이의 구분이 갈수록 희미해진다고 실감한 건 작년 가을이었다. 물론 전부터 짐작은 했다. 지난 몇년 사이 티브이 비평을 업으로 삼은 내게 영화 칼럼 의뢰가 들어오는 일이 잦아졌고, 영화 비평이 주 분야였던 업계 내 선후배들이 티브이 비평을 선보이는 일이 늘어났다. 둘 사이에 차이점보다는 공통점이 더 많았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드라마와 영화 모두 영상으로 스토리를 전달하는 대중예술이니까.

안 그래도 멀지 않았던 두 예술 사이의 거리는, 스트리밍 서비스 플랫폼이 등장하며 부쩍 가까워졌다. 드라마와 영화를 모두 스트리밍으로 접할 수 있게 되면서, 두 예술의 물리적 기반인 ‘티브이’와 ‘극장’의 위상이 떨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스마트폰만 있으면 드라마를 보기 위해 구태여 티브이를 켤 필요도,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에 갈 필요도 없어진 시대 아닌가. 나 같은 전통주의자들은 “극장에서만 가능한 집단적 체험이나, 티브이만이 주는 실시간 체험은 스트리밍으로 대체할 수 없다”는 말로 티브이와 극장의 영토를 수호하려 했으나, 모바일 네이티브 세대에게 그런 말은 설득력이 약했다. 두 예술이 제공하는 체험의 차이가 사라지면서, 구분 또한 흐릿해질 것이란 예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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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의 차이가 사라진 자리에

그 예감은 작년 가을 넷플릭스가 세편의 영화를 연달아 선보일 무렵 확신이 되었다. 2010년대의 할리우드 스튜디오는 슈퍼히어로 프랜차이즈를 찍어내는 공장이 되었고, 오리지널 스토리를 내세운 작가주의 영화는 투자 대비 수익률을 예측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설 자리를 잃었다. 그런 와중에 넷플릭스는 3시간이 넘어가는 러닝타임 동안 유장한 세월을 아우르며 시대의 공기가 변해가는 과정을 그린 범죄 누아르물 <아이리시맨>과, 부부가 이혼하는 과정에서 겪는 심리적 갈등을 현미경으로 보듯 세밀하게 들여다보는 소품 <결혼 이야기>, 그리고 교황 베네딕토 16세와 훗날 교황 프란치스코가 되는 베르골리오 추기경이 신학적인 토론을 나누는 내용의 영화 <두 교황>을 선보였다. 가장 역사가 짧은 스튜디오가 역설적으로 가장 전통적인 의미의 ‘시네마’를 선보인 셈이다.

그리고 이 전통적인 의미의 ‘시네마’들을, 사람들은 5인치 남짓한 스마트폰 화면으로 봤다. 드라마는 <왕좌의 게임>이나 <높은 성의 사나이>처럼 점점 스케일을 키워가며 영화의 전유물이었던 웅장함을 확보하는데, 정작 극장에 걸릴 법한 시네마들은 5인치 스마트폰 화면 안으로 들어오는 상황. 나는 드라마와 영화의 경계가 사라지는 건 시간문제가 될 것이란 생각을 굳혔다. 그때 내가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게 딱 하나 있었는데, 그 경계가 완전히 무너지는 광경을 넷플릭스나 아마존 프라임이 아니라 문화방송(MBC)과 웨이브(wavve)에서 보게 될 거라는 사실이었다.

지난 10일, 스트리밍 플랫폼 웨이브는 8부작 에스에프(SF) 앤솔러지 드라마 시리즈 <에스에프에잇>(SF8)을 공개했다. 한국 에스에프 단편소설들을 원작 삼아 제작된 <에스에프에잇>은, 제각기 독립적인 스토리라인을 가지고 있는 40분짜리 단막극 여덟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이 여덟편을 연출한 이들은 모두 현역으로 활동 중인 한국 영화감독들이다. 공개된 형식은 단막극 드라마 시리즈일지 몰라도 문화방송과 한국영화감독조합이 공동 기획하고, 한국영화감독조합과 영화사 수필름이 공동 제작해, 웨이브와 문화방송이 공동 배급하는 과정을 뜯어보면 중편 영화 여덟편을 묶어 티브이로 선보인 작품에 가깝다. 드라마인가 영화인가를 따지는 건 사실상 무의미하다.

이 작품이 가장 반가운 건 아마 독점 콘텐츠가 절실했던 웨이브였으리라. 국내 스트리밍 플랫폼 중 가입자 수가 가장 많은 플랫폼이면서도, 부족한 볼거리와 덜컹거리는 서비스 품질 탓에 언제나 혹평을 듣는 플랫폼이기도 하니까. 게다가 자체 제작해 독점 공개하는 오리지널 콘텐츠도 턱없이 부족했다. 그나마 ‘오리지널 콘텐츠’라고 선보인 <조선로코―녹두전>과 <꼰대인턴>은 웨이브의 작품이라기보단 각각 한국방송(KBS)과 문화방송의 드라마로 인식됐는데, 기존 티브이 드라마와 다르지 않은 퀄리티와 문법, 티브이로 동시 공개되는 배급 전략을 생각해보면 당연한 결과다. 그에 비하면 <에스에프에잇>은 진정한 의미의 오리지널 콘텐츠에 가깝다. 문화방송이 8월14일부터 일주일에 두편씩 4주간 티브이판을 방영할 예정인 걸 고려해도, 그보다 한발 앞서 감독판을 만나볼 수 있는 플랫폼은 웨이브가 유일하다.

그러나 영화감독들과 그들의 신작을 기다려왔던 영화팬들 또한 웨이브 못지않게 이 기획을 반겼을 것이다. 한국 영화계 또한 할리우드가 그렇듯 갈수록 상업적인 계산 때문에 감독의 개성이 살아 있는 영화들은 그 수가 줄어들고, 제작사의 기획이 지배하는 작품들이 늘어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스크린 독과점을 통한 와이드 릴리스 전략이 굳어진 한국 상업영화계에서 모험은 더 이상 용납되지 않는다. 과거엔 첫 상업영화를 선보일 기회를 얻는 게 어려웠다면, 이젠 두번째 상업영화를 선보일 기회를 얻는 게 더 어려운 시대가 된 셈이다. 2019년 한해 <벌새>와 <메기>, <우리집> 등으로 대표되는 독립영화의 약진이 있었지만, 상업영화계가 선보이는 작품들은 점차 개성과 활력을 잃어갔다. 한국 영화 100주년을 마무리하던 작년 말쯤엔 업계 안팎에서 <기생충>의 성취가 한국 영화계의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게 만드는 착시현상을 불러일으킨다는 지적까지 나왔다.

그런 상황에서 감독의 개성이 고스란히 살아 있는 신작들을, 스트리밍 서비스와 티브이라는 가장 대중적인 플랫폼을 통해 만날 수 있다는 건 그 의미가 크다.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안국진 감독이 보여준 블랙코미디의 리듬이 그리웠던 이들은 5년 만의 신작 <일주일 만에 사랑할 순 없다>가 신나는 체험일 것이고, <특종: 량첸살인기>를 통해 사회 전반에 대한 풍자를 속도감 있게 풀어냈던 노덕 감독을 인상적으로 기억했던 관객에게 역시 5년 만의 신작인 <만신>은 퍽 반가울 작품이다. <나를 잊지 말아요>에서 이윤정 감독이 섬세하게 쌓아 올린 멜로의 감정선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6년 만의 신작 <우주인 조안>의 따뜻함도 반가울 테다. 오리지널 콘텐츠가 절실했던 웨이브나 한동안 인상적인 드라마를 선보이지 못해 고전하던 문화방송에 <에스에프에잇>이 ‘손꼽아 기다린 한 방’이라면, 자기 색깔을 내면서 폭넓은 대중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필요했던 감독들과 그 감독의 신작을 손꼽아 기다렸던 영화팬들에게 <에스에프에잇>은 ‘예기치 못한 돌파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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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고정관념 깬 한국 에스에프 문학의 힘

한국 에스에프 문학계에도 <에스에프에잇>은 좋은 기회일 것이다. 기획 총괄을 맡아 프로젝트를 끌고 온 민규동 감독은 여덟편의 제작비를 다 모아도 소규모 상업영화 한편의 제작비가 안 됐다고 말했지만, 그 제한된 예산 안에서도 감독들은 인상적인 비주얼과 설득력 있는 서사를 펼쳐 보인다. 이는 분명 원작이 되어준 한국 에스에프 문학계의 저력 덕분이다. 한국은 오랫동안 에스에프의 불모지로 여겨졌지만, 최근 10여년간 작가층이 꾸준히 증가하며 배명훈, 곽재식, 김초엽, 이산화 등의 걸출한 에스에프 작가들을 배출해왔다. 한국 에스에프 문학이 선보여온 탄탄한 세계관과 치밀한 사고실험들은 고스란히 <에스에프에잇>의 자양분이 되었고, 덕분에 반드시 엄청난 예산을 동원한 컴퓨터 그래픽과 웅장한 비주얼이 뒷받침되어야만 에스에프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고정관념도 깰 수 있었다. 만일 <에스에프에잇>이 성공해 다음 시즌을 기약할 수 있게 된다면, 한국 에스에프 문학계 또한 더 많은 대중을 독자로 포섭할 기회를 얻게 될지 모른다.

물론 <에스에프에잇>이 성공한 작품으로 기록될지 장담하긴 이르다. 여덟편의 완성도가 아주 고른 편은 아니고, 웨이브 공개 직후 온라인상의 화제성도 그리 높은 편은 아니다. 그러나 드라마와 영화 사이의 경계를 허문 <에스에프에잇>의 모험이 더 많은 관객과 만나 좋은 결과를 낳을 수 있다면, 그래서 이런 기회가 더 많이 생긴다면 모두에게 좋은 일이 아닐까? 오리지널 콘텐츠가 절실한 국내 스트리밍 플랫폼과, 독자층의 저변 확장이 필요한 한국 에스에프 문학계, 그리고 시장논리에서 자유로운 기회가 간절한 영화감독과 그 팬들 모두에게.

▶ 티브이 칼럼니스트. 정신 차려 보니 티브이(TV)를 보는 게 생업이 된 동네 흔한 글쟁이. 담당 기자가 처음 ‘술탄 오브 더 티브이’라는 코너명을 제안했을 때 당혹스러웠지만, 지금은 그러려니 한다. 굳이 코너명의 이유를 붙이자면, 엔터테인먼트 산업 안에서 무시되거나 간과되기 쉬운 이들을 한명 한명 술탄처럼 모시겠다는 각오 정도로 읽어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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