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블루 아워> 화상 기자간담회 장면. 오드 제공
“심은경의 발전이 한국영화의 발전과 비례할 것이다.”
2011년 영화 <써니> 개봉 당시 강형철 감독이 했던 말이다. <써니>는 740만명의 관객을 모으며 어린 나미를 연기한 심은경의 존재감을 본격적으로 알렸다. 강 감독은 20일 <한겨레>와 한 전화통화에서 “그 말이 현실이 되고 있는 것 같아 기쁘다”고 말했다.
심은경은 지난 3월 <신문기자>로 한국 배우 최초로 일본 아카데미 최우수 여우주연상을 받은 데 이어, <블루 아워>로 다카사키영화제에서 가호와 최우수 여우주연상을 공동 수상했다. 일본에 머물고 있는 심은경은 20일 <블루 아워>(22일 개봉) 언론시사회 뒤 열린 화상 기자간담회에서 “수상은 저도 상상 못 했던 거라 쑥스럽고 부끄럽다”며 “안주하지 않고 지금껏 해온 대로 앞으로도 이어가고 싶다”는 소감을 전했다.
1994년생으로 이제 26살에 불과하지만, 그의 연기 경력은 벌써 18년째다. 9살이던 2003년 <문화방송>(MBC) 드라마 <대장금>에서 단역으로 데뷔했다. 이후 2006년 <한국방송>(KBS) 드라마 <황진이>에서 황진이 아역으로 대중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스크린 첫 주연작은 임필성 감독의 <헨젤과 그레텔>(2007)이었다. 이후 <건축학개론> 이용주 감독의 장편 데뷔작 <불신지옥>(2009)에서 신들린 소녀를 연기해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아역들은 주의가 산만하기 마련인데, 은경이는 좀 달랐어요. 집중력이 뛰어나고, 연기에 대한 의지와 욕심이 대단했어요. 신들린 소녀의 감정을 잡기 위해 촬영 내내 고민과 걱정을 놓지 않았죠.” 이 감독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당시를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강 감독은 <불신지옥>의 심은경을 눈여겨봤다. <써니>의 나미 역을 염두에 두고 만났을 때 “시나리오를 찢고 나온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배우 중에는 기술적으로 숙련된 연기를 잘하는 유형이 있는데, 은경이는 그 반대예요. 기술보다 감정이 먼저죠. 예열시간이 오래 걸리긴 해도 한번 불이 붙으면 활활 타요. 촬영 당시 갓 고등학생이었는데, 이제 연기 경력도 꽤 됐으니 호랑이 등에 날개를 달았을 겁니다.”
2014년 개봉한 <수상한 그녀>는 860만명을 모으며 심은경의 최고 흥행작이 됐다. 칠순 할머니의 영혼이 깃든 스무살 여인을 연기한 심은경은 각종 영화상 여우주연상을 휩쓸었다. 영화를 연출한 황동혁 감독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할머니의 능청스러운 연기와 50대 아들 앞에서 눈물을 쏟는 어머니 연기를 폭넓게 소화할 수 있는 스무살 여배우는 심은경밖에 없다는 생각에 망설임 없이 캐스팅했다”며 “더할 나위 없이 연기를 잘했는데도 스스로 만족하지 않고 늘 더 해보려 했다”고 말했다.
<수상한 그녀>로 성인 연기자로서 성공적인 신고식을 치르고 나자 작품 제의가 쏟아졌다. <널 기다리며>(2016) <걷기왕>(2016) <특별시민>(2017) <조작된 도시>(2017) <염력>(2018) <궁합>(2018) 등 출연작이 급격히 늘었다. 하지만 모든 영화가 잘된 건 아니었다. “당시 은경이가 마음고생 많이 하며 성장통을 겪은 것 같았다”고 황 감독은 전했다.
심은경은 새로운 도약을 꿈꾸며 돌파구를 마련했다. 일본어를 공부하고 2017년 일본 소속사와 계약까지 했다. 심은경은 “전부터 일본 영화를 좋아했다. 한국과는 다른 일본 영화의 색깔을 나에게 입히면 어떤 느낌이 날까 궁금했다”고 일본 진출 이유를 밝혔다. <블루 아워>의 하코타 유코 감독은 화상 간담회에서 “주인공 스나다(가호)와 쌍벽을 이루는 유쾌한 인물 기요우라를 누가 맡으면 좋을까 고민하던 차에 심은경 배우가 일본에서 활동한다는 소문을 듣고 ‘잡아야 한다’는 생각이 섬광처럼 스쳤다”며 “수상 소식을 듣고 ‘예감이 틀리지 않았구나’ 생각했다”고 전했다.
영화 <수상한 그녀> 스틸컷. 씨제이이엔엠 제공
<블루 아워>에서 심은경이 연기한 기요우라는 삶에 지친 스나다와 함께 여행하면서 위로와 활력을 주는 인물이다. 심은경은 “이 영화는 성장통을 겪는 어른들을 위한 우화”라며 자신의 이야기를 덧붙였다. “아역에서 성인 연기자로 넘어갈 즈음 저도 성장통을 겪었어요. 항상 잘해야 하고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감이 도리어 제 발목을 잡았죠. 이젠 나이도 한살 한살 먹어가면서 <블루 아워> 주인공처럼 고민을 스스로 소화하는 법을 익혀가고 있어요.”
황 감독은 “일본에 있는 은경이와 연락하면서 다른 세상을 경험하며 인간으로서 배우로서 성장했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앞으로도 평생 발전하는 배우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