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진도 폐가의 뜯긴 벽지에서 확인된 ‘聞新設開宴四方賢士多歸之(문신설개연사방현사다귀지)’란 제목의 한시. 새로 짓고 잔치 베푼다는 소문 듣고 사방 현사들이 많이 되돌아왔다는 뜻이다.
19세기 초 충청 해안을 지키던 조선 수군의 인적 사항을 적은 군적부(軍籍簿)와 한시 문구 등이 뜯긴 벽지 안에서 무더기로 발견돼 화제를 모았던 충남 태안군 신진도 옛 폐가(<한겨레>6월5일치 18면)에서 당시 시대상을 담은 한시가 잇따라 나왔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는 지난달 신진도 폐가에서 군적부를 발견한 뒤 수거한 벽지를 해체하는 과정에서 180여년 전 섬에 설치된 수군진촌(수군 주둔기지 근처 마을)의 상황과 정취를 드러낸 여러 한시를 추가로 찾아냈다고 23일 밝혔다.
신진도 폐가에서 추가로 발견된 한시의 일부분. ‘黃麥打麥羊 出家家(황맥타양출가가)’란 제목으로 ‘보리를 찧어서 집집을 나서다’는 뜻이다. 민간에서 군포 대신 보리를 거두어 수군진의 운영에 충당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내용을 담고 있다.
18세기 조선 정조시기 태안 안흥진 수군진촌의 지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확인된 한시들 가운데 일부는 신진도 폐가가 섬 건너편 포구의 수군 기지였던 안흥진의 물자 보급 등을 맡은 관리소였음을 짐작하게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새로 짓고 잔치를 연다는 소식에 사방에서 선비들이 모여들다’(聞新設開宴四方賢士多歸之)는 제목의 한시가 대표적이다. 1843년 7월16일 섬에 안흥진 수군의 관가(官家)로 쓸 집을 짓고 이듬해 사방에서 선비 등 손님들이 모여든 가운데 성대한 완공 잔치를 베풀었음을 일러준다. ‘집집마다 찰보리를 타작해 거두어 가다’(黃麥打麥羊 出家家)란 제목의 한시에는 ‘군포를 내라는 조칙에도, 갑자기 지난밤 보리를 보내어 왔구나’(布詔行令曾如此 忽然昨夜麥秋至)라는 문구가 보인다. 폐가가 민간으로부터 군포나 곡식을 거두어 수군을 관리하는 관가 구실을 했음을 일러준다.
물길이 험해 배가 침몰하는 사고가 잦았던 안흥진 앞바다 안흥량을 배경으로 인명의 희생을 안타까워하는 한시 구절도 나왔다. 7~8세기 당나라 시인 왕유의 오언절구 한시 <새가 시냇가에서 울다(鳥鳴澗)>의 형식을 빌려 초서 글씨로 ‘사람이 계수나무꽃 떨어지듯 하여, 밤은 깊은데 춘산도 적막하다’(人間桂花落 夜靜春山空)란 글귀를 적어놓았다. 연구소 쪽은 “수많은 인명이 안흥량 바다에 빠져 희생된 상황을 묘사한 것”이라고 풀이했다. 안흥진 수군의 주요 임무 중 하나가 세곡을 실은 조운선이 안흥량을 통과할 때 호송하는 활동이었다. 이 과정에서 발생한 인명의 희생을 생각하며 시의 소재로 삼았다는 분석이다. 인명 피해 없이 무사 항해를 기원하는 의미로 적은 듯한 ‘無量壽閣’(무량수각: 영원한 생명을 기원하는 건물)’이란 문구도 발견됐다. ‘안흥량을 왕래하는 선박 중 뒤집혀 침몰하는 것이 10척 중 7~8척에 이르고, 1년에 침몰하는 배가 적어도 20척 이하로 내려가지 않고, 바람을 만나 사고를 당한 배가 많으면 40~50척에 이른다’는 <승정원일기>(현종 8년(1667) 윤 4월조)의 기록을 뒷받침하는 사료라 할 수 있다.
최근 조선 수군 군적부와 한시 등이 무더기로 나온 태안군 신진도의 폐가 들머리 모습.
신진도 폐가는 상량문에 청나라 황제 도광제 선종의 연호인 ‘도광(道光) 23년’이라는 명문이 적혀있어 1843년 지어졌음을 알 수 있다. 집에 살았던 후손 최인복 씨의 증언에 따르면 가옥은 대청을 중심으로 ‘ㅁ’자형 건물이었으며. 260평 대지에 방 5칸, 광 6칸, 부엌 3칸, 외양간 1칸, 말
우리 등을 갖추고 있었다고 한다. 실측 결과, 지금은 ‘ㄷ’자형 구조만 남은 것으로 드러났다. 광 6칸이 존재했다는 사실로 미뤄, 안흥진 수군을 관리한 관가 건물로 추정하고 있다.
연구소 쪽은 “폐가 인근 초등학교 주변에도 1970~80년대까지 조선시대 건물로 추정되는 전통 기와집이 다수 남아있었다는 주민들 증언을 확보했다”며 “섬 일대가 수군진 업무를 봤던 관리와 수군의 거주 지역으로 판단되는 만큼 종합 학술조사를 추진하고, 안흥진과 관련한 조선시대 개인 문집 등도 한글로 번역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시 유물들은 24일 오후 1시부터 태안해양유물전시관에서 열리는 12회 태안 안흥진의 역사와 안흥진성’ 학술대회에 공개된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