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번이나 벗어나보려고 했지. 빚도 빚이지만 갈 곳이 없잖아. 집엘 가면 받아줘? 사회를 나가면 받아줘? 달러나 얻어 쓰려고들 했지. 우린 여기가 제일 마음 편해.” 1일 끝난 연극 <문밖에서>의 한 장면. 무대 위 운심(김지원)의 말에 객석이 고요해졌다. “모르겠어요. 그 장면에서 괜히 뭉클하더라고요. 무관심이 미안해서였을까요.” 공연을 본 한 40대 남성 관객은 말했다.
연극 <문밖에서>는 경기 평택 안정리 케이(K)-6 캠프험프리스 근처 미군 기지촌에 살았던 ‘미군 위안부’들의 이야기다. 여전히 그곳에서 살아가는, 이제는 ‘독거노인’이 된 그들의 삶을 보여주며 ‘과연 우리는 이들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한다. 이 작품은 원래 할머니들을 돕는 평택 햇살사회복지회의 치유 프로그램에서 출발했다. 이후 2016년 송탄의 한 교회에서 뮤지컬 <그대 있는 곳까지>로, 2017년 서울여성플라자에서 <그대 있는 곳까지―문밖에서>로 무대에 올랐다. 2018년 행정안전부 주최 박람회의 일환으로 서울 세실극장에서 연극 <문밖에서>라는 이름으로 선보인 뒤, 2020년엔 온전한 연극의 형태로 서울 두산아트센터 무대를 밟았다. 대본도 쓴 이양구 연출은 “극 형식과 내용이 완전히 달라져서 이번이 사실상 초연”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70분간 펼쳐지는 극의 모든 내용을 미군 위안부 여성들의 실제 사연을 그대로 옮겨 생생함을 더한 것이 눈길을 끈다. 연극에도 직접 출연하는 김숙자·김경희·권향자씨의 삶이다. 상황만 설정해주고 이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즉석에서 내뱉는다. 셋 다 경기 평택 안정리에서 미군 위안부 생활을 했다. 이후에는 50대까지 웨이트리스로 일했다. 70대가 된 지금도 평택에 산다. 연극 개막을 앞두고 최근 평택의 한 연습실에서 세 사람을 만났다.
연극 <문밖에서>의 한 장면. 극단 해인, 프로젝트 타브 제공
“처음에는 못 한다고 했죠. 우리 이야기를 해서 뭐 해요. 근데 이 나이에 불러주는 게 어디야. 더 나이 먹으면 못 한다. 어디 한번 해보자 싶었죠.” 새파란 상의를 입은 김경희씨가 시원시원한 목소리로 말했다. “난 끝까지 안 한다고 했는데 경희가 사람 경험, 사회 경험 한번 쌓아보자고 꼬드겨서 하게 됐어요. 내 이야기를 하면 되니까 했지, 대본을 외우라면 못 했을 거예요.” 말수 적은 권향자씨가 수줍게 이어받았다. 사실 이번 공연이 데뷔 무대는 아니다. 셋 모두 이전 작품에도 출연했다. “처음엔 가슴이 떨리고 어떻게 해야 하나 싶었는데 이젠 무대에 서는 게 좀 덤덤하다”며 둘 다 대수롭지 않다는 투로 말했다. 이양구 연출은 “지금까지의 공연에서 할머니들은 스스로를 ‘감초 역할’ 정도로 여겼는데, 이제는 ‘증언자’가 아니라 한 명의 ‘배우’로 인식한다”고 전했다.
별것 아닌 척했지만, 자신의 미군 위안부 시절을 대중에 드러내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미군 위안부는 6·25전쟁 이후 주로 주한미군을 상대로 성매매를 했던 여성을 일컫는다. 당시 국가가 “달러벌이 역군” “민간 외교관”으로 치켜세우며 이들의 성매매를 ‘관리’하고 ‘용인’했기에 이들은 그 말과 같은 마음으로 살았다. 1977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친필로 사인한 ‘기지촌 여성 정화대책’ 문건이 2013년 공개되기도 했다. 국가정책의 피해자기도 하지만, 이들을 바라보는 또 다른 시선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누군가는 이들에게 “자발적으로 성매매를 한 사람들인데, 어떻게 ‘위안부’라 할 수 있느냐”며 비난을 퍼붓기도 한다. 이양구 연출은 “그래서 함께 연극을 준비하다가 중간에 그만두신 분도 많다”고 했다. 김경희씨도 아직은 조심스럽다. “사실 가족들이 내가 그런 일을 한 걸 몰라요. 엄마만 알았는데 돌아가셨어. 그런데 지난번 연극을 하면서 방송에 소개되고 하니 올케가 알게 됐지. 올케가 다른 말을 하지 않고 그냥 ‘언니 맛있는 거 많이 사드시고 좋은 구경 많이 하며 사시라’고 얘기하는데, ‘아 알게 됐구나. 근데 날 이해해주는구나’ 싶어 고마웠죠.”
지난 1일 끝난 연극 <문밖에서>에 출연한 김경희(오른쪽 사진 맨 왼쪽), 김숙자(가운데), 권향자씨. 최근 <한겨레>와 만난 이들은 “미군 위안부가 있었다는 걸 알리고 싶어 무대에 섰는데, 우리가 위로를 받았다”고 말했다. 극단 해인, 프로젝트 타브 제공
김숙자씨는 “우리가 있었다는 걸 알기라도 했으면 하는 마음에 출연했다”고 했다. 김숙자씨는 2012년 노지향 연출이 만든 연극 <숙자 이야기>로 김경희·권향자씨보다 먼저 미군 위안부 이야기로 무대에 섰다. “가슴에 이따만한 돌을 갖고 있어 늘 무거웠어요. 그게 늘 나를 짓눌렀어요. 연극을 한다고 했을 때 그 돌이 조금이라도 녹을 수 있다면, 응어리가 사라질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었어요.” 그는 “완전히 녹진 않았지만 연극을 한 후 마음이 많이 편해졌다”고 말했다. <문밖에서>는 우리에게 미군 위안부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게 했지만, 그들에게도 자신의 삶을 객관적으로 돌아보게 하는 기회가 됐다. “12살에 고향 목포집에서 도망쳐 나왔어요. 하도 구박을 하니까. 엄마가 아들 아들 했는데 딸이 태어난 거지. 서울에 와서 옛날 말로 하면 식모살이를 하고 여기저기 헤매다 19살에 기지촌에 들어가서 여태 살았죠.” 60년 가까운 세월 동안 그들이 어떤 일을 겪었는지 속속들이 물을 수는 없었다.
그들이 말하지 않은 여백은 연극에서 읽을 수 있었다. 클럽에서 미군을 상대로 일하며 그들은 국가의 관리 아래 정기적인 성병 검사까지 받았다. 미군한테 옮으면 달러벌이를 할 수 없다는 이유로 철저히 관리를 당했다. 국가에서 관심을 끊을 즈음엔 자치회를 결성해 자신들을 지켰지만, 나이가 들면서는 배밭 등을 다니며 일을 해 돈을 벌어야 했다. 누군가는 낙태를 했고, 누군가는 세월이 흘러서도 미군에 성적인 이용을 당하기도 했다. 무슨 일을 하는 건지조차 모르고 온 이들도 있었다. 무엇보다 가슴 아픈 건 진짜 사랑했던 이들이 떠난 현실이다. 김숙자씨와 그가 ‘영철’이라 불렀던 미군의 사랑 이야기는 연극의 마지막에 흐른다. 권향자씨는 “진짜 사랑이 어딨냐. 다 가짜다”라고 핀잔을 주지만, 김숙자씨는 지금도 영철을 그리워한다. 그가 선물한 귀걸이, 그의 목소리가 담긴 카세트테이프도 간직하고 있다. 이양구 연출은 “이해 못 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이들의 사랑을 누가 뭐라 할 수 있겠냐”고 반문했다.
사회의 냉대와 멸시 속에 살아왔던 이들에게 연극은 자신의 삶이 부끄러운 게 아니라고 위로해줬다. 김숙자씨는 “내 얘기가 의미 있을 거란 생각을 하지 못했는데 사람들이 감동하는 것을 보면서 나도 감동을 받았다. 내게도 이런 세계가 있구나 싶어 행복했다”고 말했다. 평생을 기지촌에서 지내던 그들은 연극을 하면서 처음으로 또 다른 이들과 관계 맺는 법을 배웠다. “연극을 하면서 그런 생각을 했어요. 너무너무 아까운 세월을 이런 기지촌에서 보냈구나. 꽃다운 젊은 시절에 사회생활을 했으면 얼마나 넓어졌을까. 꽃피고 살지 않았을까!” 김숙자씨는 “연극이 위로가 됐다”고 말했다.
연극 <문밖에서>의 한 장면. 극단 해인, 프로젝트 타브 제공
현실은 여전히 힘들고 아프지만, 다행히 조금씩 변화도 생겨난다. 아직 대법원의 최종 판결은 나오지 않았지만, 2018년엔 정부가 성매매를 방조하고 조장한 책임을 처음으로 인정하는 법원의 판결이 나오기도 했다. 서울고법은 당시 기지촌 위안부 117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300만~700만원의 위자료와 이자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지난 4월에는 전국에서 처음으로 ‘경기도 기지촌 여성 지원 등에 관한 조례안’이 제정돼 주한미군 기지촌 여성들에 대한 피해 지원에 관한 법률적 근거도 마련됐다. 이들은 이 대목에 기대를 건다. “기지촌 여성을 있게 한 게 정부잖아. 정부에서 우리를 관리했어요. 늙으면 아파트 지어줄 테니 걱정하지 말라며 자부심을 갖고 열심히 달러를 벌라고 했어요. 지금 우리 생활은 어떤가요.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를 독거노인이 됐어요. 생활비도 지원받고 아프면 병원에 가서 치료도 받고 싶어요. 나라에서 조금이라도 우리를 책임져줬으면 좋겠어요.” 조곤조곤 얘기하던 김숙자씨의 목소리가 심각해지자, 호탕한 김경희씨가 분위기를 전환했다. “야, 우리가 뭘 잘못했냐? 내 인생 잘 살면 되는 거야. 누가 날 먹여 살릴 거야. 자, 즐겁게 놀아보세!”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