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 반포동에 있는 대한민국 학술원 건물 전경.
“10년 푸대접을 이젠 못 참겠다.”
학자들의 ‘명예의 전당’인 대한민국 학술원에 미술사학계가 불편한 감정을 감추지 않고 있다. 학술원의 각 분야 회원을 뽑는 과정에서 10년 가까이 미술사 분야 연구자의 진입이 가로막히자 한국미술사학회가 반발하며 집단행동에 나선 것이다.
발단은 지난달 29일 학술원이 발표한 신입회원 명단. 한국미술사학회가 추천한 안휘준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명예교수가 배제되고 과학사 연구자인 김영식 서울대 동양사학과 명예교수가 이름을 올린 것이다. 한국미술사학회는 2012년, 2014년, 2018년에 후보를 추천한 데 이어 올해엔 안 교수를 학술원 인문·사회 3분과 후보로 추천했다. 지난 6월 학술원 내부 투표에서 김 교수가 1표 차이로 안 교수를 제친 것으로 전해졌다.
학회 쪽은 지난 18일 ‘학술원 인문·사회 3분과 신임 회원 선출에 대한 입장’이라는 공식 성명을 내어 과학사 전공자를 신입회원으로 선정한 기준과 과정을 공개하고 설명하라고 학술원 쪽에 요구했다. 학회 쪽은 성명에서 “자연과학 성격이 강한 과학사를 정통 역사학 분야로 간주해 신입회원으로 선정한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2015년 학술원상까지 받은 안 교수를 배제한 과정을 공개하고 설명할 것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학회 쪽은 앞서 이달 3일 학술원 사무국 쪽에 공문을 보내 해명을 촉구했지만, 심사정보 공개는 규정상 불가하다는 회신만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학회가 공문을 보내고 항의 성명을 내어 선정 절차에 반발한 것은 학술원 창립 이래 처음이다.
1954년 국가학술지원기관으로 설립된 학술원에서 미술사는 역사학·고고학·민속학·지리학 등과 함께 인문·사회 제3분과에 편제돼 있다. 하지만, 2011년 학술원 회원이던 미술사학자 황수영 전 동국대 총장이 별세한 이래로 미술사 쪽은 지금껏 전공 회원을 1명도 내지 못했다. 신입회원은 규정상 분과 회원 투표로 뽑는데, 3분과 회원 절대다수가 역사학 전공자다. 13명 중 12명이 서울대 출신인데, 이 가운데 7명이 서울대 사학과 동문이고, 서울대 동양사학과 교수 출신이 3명이나 될 정도로 학맥 편중이 심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방병선 한국미술사학회 회장은 “학맥·전공이 편중된 기존 회원이 신입회원을 뽑는 현행 제도에서는 계속 미술사가 소외되는 편향이 일어날 수밖에 없어 서구 학술기관처럼 외부 인사들과 함께 별도 선출 기구를 만드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청와대 게시판 등을 통해 청원운동을 벌일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학술원 관계자는 “선출된 회원의 전공 관련 논란은 몇년째 불거져온 문제라 분과에서도 고민 중인 걸로 안다. 다만 규정상 사무국은 일체 관여할 수 없어 투표권을 가진 회원들이 자체적으로 논의해 풀어야 할 사안이다”라고 해명했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 대한민국 학술원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