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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북한 ‘왕건상’ 애타게 기다렸던 ‘희랑대사상’ 국보 된다

등록 2020-09-02 08:58수정 2020-09-06 00:55

노형석의 시사문화재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초상 조각 ‘희랑대사좌상’ 국보지정 예고
국립중앙박물관의 ‘대고려’ 전에 나온 희랑대사 좌상. 상 안쪽 너머로 북한 개성 출토품인 고려 태조 왕건상을 놓으려 했던 빈 연꽃 좌대가 보인다.
국립중앙박물관의 ‘대고려’ 전에 나온 희랑대사 좌상. 상 안쪽 너머로 북한 개성 출토품인 고려 태조 왕건상을 놓으려 했던 빈 연꽃 좌대가 보인다.
남한의 스승 상은 북한의 제자 상을 간절히 기다렸다. 그러나 만남은 끝내 이뤄지지 않았다.

2018년 12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고려 건국 1100주년 특별전 ‘대고려 그 찬란한 도전’이 열린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기다림의 퍼포먼스가 펼쳐졌다. 독립된 전시장에서 옆자리를 비워두고 북한에 있는 고려 태조 왕건의 상이 오기만을 기다린 주인공이 있었으니, 바로 10세기 활동한 해인사 고승 희랑대사의 건칠 좌상(보물 999호)이었다.

희랑대사는 918년 고려 왕조를 세운 태조 왕건이 누구보다 존경했던 스승이었다. 왕건이 후백제를 물리치고 후삼국을 통일하는 과업을 이룰 때 해인사 지지 세력인 북악파를 이끌며 정신적 기반을 제공했고, 해인사가 훗날 고려 대장경을 봉안하며 법보종찰이 되는 기반을 닦은 국사급의 큰 스님이었다. 스님의 사후 후학과 문도들이 생전 모습대로 만들어 해인사에 대대로 봉안하며 예배해온 좌상을 처음 서울의 박물관으로 가져온 이유는 뭘까. 두가지 명분이 있었다. 대중에 잘 알려지지 않은 한국 전통 조각사의 숨은 걸작을 대고려 전의 첫 부분에 내세워 부각시키려는 것이 박물관 미술부 기획진의 애초 구상이었다. 여기에 당시 남북 관계를 둘러싼 정치적 명분이 따라붙었다. 2018년 4, 5, 9월 세 차례나 남북정상 회담이 열리면서 남북 당국간 화해 분위기가 급물살을 탔고, 이를 의식한 박물관 쪽은 1992년 북한 개성 태조 왕건릉에서 출토된 제자 왕건의 청동상과 스승 희랑대사상을 함께 전시해 21세기 남북화합의 상징물로 삼으려는 복안을 세우게 된다. 빈 좌대를 대사의 좌상 옆에 설치하고 왕건상을 기다리는 전시 구상은 이런 맥락에서 나온 아이디어였다.

합천 해인사 소장 희랑대사 건칠 좌상의 정면. 지금의 상은 18세기 이후 색과 무늬를 덧입힌 것이다.
합천 해인사 소장 희랑대사 건칠 좌상의 정면. 지금의 상은 18세기 이후 색과 무늬를 덧입힌 것이다.
희랑대사 상이 기다림의 전시 무대를 펼치게 된 건 사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예상치 않았던 행보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전시 직전인 2018년 9월19일 문재인 대통령이 방북해 평양 정상회담을 하는 과정에서 ‘대고려’전에 필요한 왕건상 등의 북한 고려 유물 출품을 요청했는데, 김 위원장이 “협력하겠다”는 화답을 바로 내놓으면서 애초 예상하지 않았던 왕건상 동반전시를 추진하게 된 것이다.

박물관은 동반전시의 의미를 살리려고 애를 썼다. 해인사에서 희랑대사상을 서울로 옮길 때 굳이 복제상을 경기도 연천의 왕건 사당에 보내어 만남을 고하는 예식을 치렀고, 전시장엔 지화장 정명 스님이 연꽃으로 장식한 빈 좌대가 전시가 끝날 때까지 놓여 남북의 스승 제자 상의 만남에 대한 갈망을 표현했다. 그해 연말 김정은의 서울 답방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그가 ‘선물’로 왕건상을 들고 국립중앙박물관을 찾아와 문 대통령과 회담하고 두 상을 관람할 것이란 설이 돌았다. 실제 박물관에서는 이를 대비한 동선 준비 작업이 검토되기도 했다.

하지만 북미 관계가 경색되면서 김정은의 답방은 실현되지 않았다. 왕건 상도 오지 않은 채 2019년 3월3일 전시는 아쉬움 속에 끝났다. 당시 전시를 기획했던 정명희 학예관은 “우리 미술사에서 매우 뛰어난 고려시대 걸작이었으나 잘 알려지지 않았던 희랑대사 상을 지금 시대 분단과 화합, 통일의 상징성을 담아 새롭게 알릴 수 있었다”면서 “만남은 성사되지 않았지만, 전시 연출 자체가 의미 있는 과정으로 기억에 남는다”고 떠올렸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10세기께 초상조각이면서 21세기 남북 분단과 화해에 얽힌 사연까지 덧붙이게 된 희랑대사상에 대해 문화재청이 2일 국보 지정을 예고했다. 1989년 보물로 지정된 지 31년 만이다. 유물의 역사적 양식적 가치에 비춰 뒤늦었지만, 비로소 제대로 된 평가를 받았다는 점에서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다.

나무나 건칠 재료를 써서 사실적으로 재현한 고승의 조각상은 원래 고대 중국의 미라화한 육신 상에 뿌리를 두고 있다. 중국과 일본에서는 고승의 모습을 조각한 조사 상을 중근세기까지 다수 제작해 지금도 많은 상이 남아 있다. 일본에서 국보 등의 국가문화재로 지정된 나라 도다이지의 고승 료벤, 조겐의 상과 도쇼다이사에 전하는 중국승려 감진의 상 등이 대표적이다. 국내에는 이런 고승상이 거의 전하지 않는다. 조선시대 이전에 실제로 생존했던 고승을 재현한 작품은 ‘희랑대사상’ 한점 뿐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의 ‘대고려’ 전 당시 희랑대사상 진열장 옆에 나란히 놓였던 북한 왕건상의 빈자리. 지화장 정명 스님이 연꽃 모양의 좌대 설치작품을 만들어 눈길을 끌었다.
국립중앙박물관의 ‘대고려’ 전 당시 희랑대사상 진열장 옆에 나란히 놓였던 북한 왕건상의 빈자리. 지화장 정명 스님이 연꽃 모양의 좌대 설치작품을 만들어 눈길을 끌었다.
이처럼 희귀한 걸작인 희랑대사 상을 국보로 지정 예고하기데는 10년이란 세월이 지나야 했다. 2010년 경남도가 처음 국보 지정을 신청했지만, 당시 문화재위원회는 자료 부족을 이유로 부결 결정을 내렸다. 무엇보다 절 쪽이 좌상에 대한 문화재 전문가들의 심층조사를 허용하지 않았던 탓이 컸다. 희랑 대사가 사실상 해인사의 비조로 떠받들어지면서 사찰 문중의 절대적인 존경을 받아왔고, 그의 모습을 새긴 좌상 또한 천년 가까이 부처와 함께 예배 대상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미술사학계에서 이론의 여지가 거의 없는 걸작으로 꼽혀왔는데도, 국보 승격이 좌절됐다는 사실은 학자들에게 희랑대사 상의 조사를 반드시 풀어야할 과제로 아로새기게 했다. 결국 2016년 한국미술사학회가 상의 본격적인 연구 조사 필요성을 강조하며 이례적으로 학회 차원에서 국보지정을 신청했다. 절 쪽도 이번에는 상을 전폭적으로 연구진에 공개하면서 지정을 위한 조사에 협조를 아끼지 않았다. 정은우 동아대 교수 등 학회 소속 연구자들과 국립문화재연구소는 4년 동안 집중적인 문헌 조사와 과학적 분석을 거친 끝에 새로운 정보들을 쏟아내며 지정예고란 결실을 얻게됐다.

우선 조선시대 문헌 조사를 통해 희랑대사 좌상은 해인사 핵심 시설인 해행당, 진상전, 조사전, 보장전을 거치며 1000년간 신앙대상으로 봉안되어온 사실을 알게됐다. 지금처럼 문양을 넣고 채색한 건 18세기 말 이후임이 명확해졌다. 상을 채색하기 전에 대사의 좌상이 까맣게 옻칠된 모습을 묘사했던 실학자 이덕무(1741~1793)의 <가야산기> 같은 조선 후기 학자들의 방문 기록들이 조사과정에서 대거 확인됐다. 전래 경위에 신빙성을 확보할 수 있게 된 셈이다.

특히 지정조사 과정에서 국립문화재연구소 보존과학연구실이 상에 광선을 투과시켜 내부를 뜯어본 과학 조사 결과는 놀라움을 안겼다. 얼굴과 가슴, 손, 무릎 등 앞면은 삼베 등에 옻칠해 형상을 만드는 건칠(乾漆) 기법으로, 등쪽 면과 바닥 면은 나무를 대어 만든 사실이 밝혀졌다. 옻칠 등으로 매끈하게 각 면들을 접착시켜 후대까지 제작 당시 원형을 유지시킨 장인의 지혜가 드러난 것이다. 이질적인 재료와 기법으로 앞면과 뒷면을 결합한 것은 ‘봉화 청량사 건칠약사여래좌상’(보물 1919호)처럼 신라~고려 초 불상에서 확인되는 제작기법인데, 희랑대사 좌상은 이런 방식 가장 정교하게 구사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상의 또 다른 특징은 가슴에 작은 구멍(폭 0.5cm, 길이 3.5cm)이 뚫려 있는 것. 그래서 ‘흉혈국인(胸穴國人)’이란 별명도 갖고 있다. 대사가 스님들의 수행 정진을 돕기 위해 가슴에 작은 구멍을 뚫어 모기에게 피를 보시했다는 설화가 전해져 온다. 고승의 가슴이나 정수리에 난 구멍(정혈)은 대개 신통력을 상징하는 것으로 인식되므로 상에 더욱 신비감을 불어넣는 요소라고 할 수 있다. 국내에 문헌 기록과 현존 작이 모두 남은 큰 스님의 조사상은 ‘희랑대사좌상’이 유일하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초상조각일뿐 아니라 실존했던 고승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재현한 조각상 또한 이 작품밖에 없다. 세밀한 묘사와 조형력으로 큰 스님 내면의 인품까지 표현해냈다는 점에서 예술적 가치도 뛰어나다는 게 학계의 일치된 평가다. 문화재청 또한 “고려 초상조각의 실체를 알려주는 귀중한 작품이자, 대사의 높은 정신세계를 조각예술로 승화시켰다는 점에서 역사‧예술‧학술 가치가 탁월하다”는 평가 사유를 밝혀놓았다.

오똑한 콧날에 입을 다물고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보내는 좌상의 얼굴은 한없이 인간적이다. 뼈마디가 드러난 앙상한 손을 포갠 채 의연한 기운을 내뿜는 그의 자태로 시선을 옮기면서 1000년전 난세를 헤쳐나간 수도자의 경륜을 헤아리게 된다.

희랑대사 좌상의 손 부분. 뼈마디가 앙상하게 드러난 손을 의연하게 포갠 모습에서 기품이 우러나온다.
희랑대사 좌상의 손 부분. 뼈마디가 앙상하게 드러난 손을 의연하게 포갠 모습에서 기품이 우러나온다.
한편, 문화재청은 이날 다른 두건의 문화유산은 보물로 지정예고했다. 선조들의 전염병 극복 노력을 보여주는 15세기 한의학 서적 <간이벽온방(언해)>과 17세기 공신 모임 상회연(相會宴)을 그린 <신구공신상회제명지도 병풍>이다. 국보, 보물로 지정 예고된 문화유산 3건은 30일 동안의 예고 기간에 각계 의견을 듣고 문화재위원회의 최종 심의를 거쳐 지정 여부가 확정된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도판 국립중앙박물관·문화재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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