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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온 적 없는 시각예술가들…부산의 섬세함까지 포착하다

등록 2020-10-30 05:00수정 2020-10-30 08:25

팬데믹 뚫고 펼쳐진 부산비엔날레 전시현장
부산 용두산공원의 부산타워를 배경으로 옛 한국은행 부산본부 담장에 설치된 람한 작가의 라이트패널 작품. 중앙동과 남포동 등 부산 원도심 야외 설치작업의 일부다.
부산 용두산공원의 부산타워를 배경으로 옛 한국은행 부산본부 담장에 설치된 람한 작가의 라이트패널 작품. 중앙동과 남포동 등 부산 원도심 야외 설치작업의 일부다.

‘책상 위에서의 여행’.

덴마크 오르후스에 사는 시각예술가 라세 크로그 묄레르는 최근 한국의 부산을 소재로 완성한 연작에 이런 제목을 붙였다. 지난 9월 초 국제 미술잔치로 막을 올린 부산비엔날레 본전시에 출품한 이 작품들은 부산 시내 주요 공간을 이미지와 실물로 집약한 생생한 아카이브 작업으로 채워졌다. 그런데 정작 그는 한국에 한번도 와본 적이 없다. 오르후스의 작업실 책상 앞에서 그는 오직 스카이프 등의 화상 대화 플랫폼으로 부산 현지의 큐레이터들과 소통하면서 일일이 촬영, 수집을 요청해 실제 작품을 만들었다. 용두산공원과 감천문화마을, 국제시장 등 여섯곳의 풍경과 건물들의 세부 모습을 담은 사진은 자물쇠 구멍에 숟가락을 꽂은 달동네 마을의 한구석까지 포착했다. 시민들의 손으로 그린 약도, 현지 거리에서 수집한 담배꽁초, 노끈, 장갑 등의 폐기물까지 한갖춤 신작이 꾸려졌다.

이번 비엔날레에는 부산 영도의 옛 선박 자재 창고가 처음 전시장으로 쓰이면서 부산항에 어린 장소성과 역사성을 기획에 끌어들였다. 사진은 창고 전시장 안에서 바라본 조선소의 타워크레인 모습으로 거대한 설치조형물이나 오브제 같은 인상을 준다.
이번 비엔날레에는 부산 영도의 옛 선박 자재 창고가 처음 전시장으로 쓰이면서 부산항에 어린 장소성과 역사성을 기획에 끌어들였다. 사진은 창고 전시장 안에서 바라본 조선소의 타워크레인 모습으로 거대한 설치조형물이나 오브제 같은 인상을 준다.

‘열 장의 이야기와 다섯 편의 시’라는 독특한 제목으로 부산이란 도시를 탐험하자는 맥락으로 준비한 올해 부산비엔날레는 코로나 사태로 온라인 개막해 9월 말부터 현장전시를 시작했다. 곡절이 많았지만 역대 비엔날레 행사들 가운데 가장 돋보이는 완성도를 성취했다는 상찬이 나온다. 격리를 무릅쓰고 국내에서 작업한 덴마크 출신 전시감독 야코브 파브리시우스의 전시가 팬데믹 시대 비엔날레의 새로운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미술사에도 관심이 많은 파브리시우스는 1920년대 전위 작가 라슬로 모호이너지와 현대 사진 작업을 연결하고, 근대 작가 임호의 1950년대 그림과 한묵의 기하 추상 그림들을 들여와 부산의 공간성을 새롭게 들여다보게 한 시도도 내놓았다.

본전시가 열리고 있는 을숙도 부산현대미술관 로비 들머리에 설치된 벨기에 작가 요스 드 그뤼터·해럴드 타이스 2인조의 설치작품 <몬도 카네>. 창살 안에서 단발적으로 기묘한 행동을 거듭하는 인형 군상들의 모습을 통해 현대 인간 사회의 부조리함을 이야기한 작품이다.
본전시가 열리고 있는 을숙도 부산현대미술관 로비 들머리에 설치된 벨기에 작가 요스 드 그뤼터·해럴드 타이스 2인조의 설치작품 <몬도 카네>. 창살 안에서 단발적으로 기묘한 행동을 거듭하는 인형 군상들의 모습을 통해 현대 인간 사회의 부조리함을 이야기한 작품이다.

이번 전시는 부산 공간을 재조명하는 틀거지부터 독특했다. 김혜순, 편혜영, 마크 본 슐레겔 등 국내외 문학가 11명이 머물며 부산에 대해 쓴 소설과 시 등을 30여개국의 시각예술가 70여명이 설치, 그림, 사진, 영상 등으로 재해석해 을숙도 부산현대미술관과 부산의 옛 근대 도심인 중앙동의 7개 작은 전시공간, 영도의 조선소 앞 창고에 펼쳐놓았다. 결정적인 도움을 준 것은 줌, 워치업 등의 첨단 비대면 화상 기술이었다. 전시기획팀과 작가들은 이 중계 미디어 장치에 의존해 새로운 시도들을 계속 만들어냈다. 영도 창고 전시장에 설치된 싱가포르 작가 로버트 자오 런후이의 영상설치작품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는 묄레르와 더불어 이번 전시의 독창성을 대표한다. 도시 속 방치된 생명체와 생태계 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작가는 영도 항구의 습기 찬 대기 속에 자생하는 식물을 찾아달라고 기획팀에 요청했고, 온라인 협의를 계속한 끝에 창고 뒤 폐가에 있는 오동나무와 주위 모습을 지난 4~7월 촬영한 영상·사진들을 모아 독특한 항구의 생태를 담은 동영상 관찰의 기록을 만들어냈다.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 폐가 속 오동나무 주위에서 길고양이가 노닐고, 남성들이 소변을 보고, 쓰레기를 마구 버리는 영상들은 사진과 함께 편집되어 항구 부산의 내면이 간직한 기묘한 이면을 보여주었다. 미국 엘에이에서 활동 중인 음악가이자 시각예술가인 킴 고든은 부산의 한 연인을 섭외해 부산 주요 공간에 나오는 작품을 전시팀이 찍게 하고 그 영상을 받아 자신이 현지에서 작업한 영상과 함께 편집한 작업을 공동작업 형태로 선보였다

부산 영도 창고 전시장에 설치된 로버트 자오 런후이의 영상설치작품 &lt;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gt;. 창고 바로 뒤 폐가에 있는 오동나무와 주위 모습을 지난 4~7월 촬영한 영상·사진들을 모은 작품이다. 도시 속 방치된 생명체와 생태의 문제를 포착한 이 작업은 전시팀과 작가 사이의 온라인 소통을 통해서만 구상과 작업을 진행했다.
부산 영도 창고 전시장에 설치된 로버트 자오 런후이의 영상설치작품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 창고 바로 뒤 폐가에 있는 오동나무와 주위 모습을 지난 4~7월 촬영한 영상·사진들을 모은 작품이다. 도시 속 방치된 생명체와 생태의 문제를 포착한 이 작업은 전시팀과 작가 사이의 온라인 소통을 통해서만 구상과 작업을 진행했다.

비엔날레를 보는 또 다른 재미는 부산 중앙동에서 용두산공원, 남포동, 영도에 이르는 원도심의 거리와 건물들을 전시 자체의 작품이자 오브제로 활용했다는 점이다. 피란 시절 난민들의 애환이 서린 중앙동 40계단 주변의 작은 전시공간에 부산의 소장 화가인 허찬미씨와 1980년대 이후 참여미술을 대표하는 노원희 작가 등의 작품들이 들어갔다. 이 전시공간들이 영도 창고 공간으로 잇달아 펼쳐지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대청로와 남포동, 국제시장, 영도다리 등의 근대거리를 산책하는 동선이 형성됐다. 부산 영도의 옛 선박 자재 창고가 처음 전시장으로 쓰이면서 부산항에 어린 장소성과 역사성을 기획에 끌어들인 것은 특기할 만한 시도였다. 창고 전시장 안에서 바라본 조선소의 타워크레인은 거대한 설치조형물이나 오브제처럼 다가왔고, 준설선의 드릴을 조형물로 만든 작가 데이브 헐피시 베일리의 조형물들은 이런 전시장 환경에 색다르게 어울렸다. 용두산공원의 부산타워를 배경으로 옛 한국은행 부산본부의 담장에 설치된 람한 작가의 라이트패널 작품과 노원희 작가의 1980년대 작품 벽화는 원도심에 어린 역사적 추억과 현대미술의 색다른 만남이기도 했다. 김주원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은 “현대 작업과 미술사, 도시사를 가로지르며 작품을 배치하고 집중하게 하는 기획력과 서사를 엮어내는 힘이 느껴졌다”고 말했다. 11월8일까지. 부산/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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