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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거대한 풍납토성 쌓은 백제인의 비결은 ‘나무기둥 박기’

등록 2020-12-01 08:57수정 2020-12-01 10:02

국립강화문화재연구소 성벽 발굴조사 성과 공개
풍납토성 서쪽 성벽의 2, 3토루 사이에서 확인된 부석시설과 목재, 나뭇잎 층의 모습.
풍납토성 서쪽 성벽의 2, 3토루 사이에서 확인된 부석시설과 목재, 나뭇잎 층의 모습.
1~5세기 한성(서울)에 도읍을 둔 초기 백제시대의 왕성 터로 유력한 서울 송파구 풍납토성(국가사적)은 잔존 높이만 8~11m에, 폭은 40~50m, 둘레길이도 4km가 넘는 초대형 유적이다. 백제인들은 이렇게 큰 성벽을 어떻게 쌓았을까.

3~5세기께 쌓을 당시 최고 높이 13m가 넘었을 것으로 추정하는 이 거대한 토성의 서쪽 성벽 바닥 평면을 최근 국립강화문화재연구소가 집중 조사했더니 새 사실이 드러났다. 백제인들은 토성을 쌓기 전, 일단 나무 기둥을 촘촘히 박으면서 흙을 채워 넣을 수많은 축조 공간을 설정해 공사할 성벽 구간을 분할했다. 그러고 나서 각각의 축조 공간 안에 막대한 흙을 차례차례 부어 넣고 다져 흙덩이 몸체인 수십여개의 토루를 잇대어 형성하는 방식으로 성벽을 쌓아 나갔다. 이런 공법을 적용한 자취가 이번 조사에서 처음 드러난 것이다. 바닥이나 둘레에 돌을 한두겹 정도만 깔아놓은 부석 시설을 토층 별로 고르게 배치하면서 성벽을 증축하고 구조를 보강한 흔적 또한 확인됐다.

1토루 안 나무기둥의 자취(흰 줄 표시된 부분).
1토루 안 나무기둥의 자취(흰 줄 표시된 부분).
국립강화문화재연구소는 이런 내용을 담은 풍납토성 서쪽 성벽의 평면조사 결과를 1일 발표했다.

2017년부터 토성 서쪽 성벽 조사를 벌여온 연구소 쪽은 올해 처음 벌인 성벽 평면조사에서 나무기둥과 흔적들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이 나무기둥을 토루 하단부터 켜켜이 박고 나서 흙을 쌓아 올린 것으로 추정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1토루 유적의 경우, 안에서 성토를 위한 나무기둥을 6단에 걸쳐 88~162cm 간격으로 박은 것으로 나타났고, 2토루와 3토루 안에서도 토성을 쌓아 올리기 위한 나무기둥이 설치된 흔적이 발견됐다. 특히 2·3토루 경계에는 성벽 경사 방향과 다른 역경사 방향의 나무기둥과 기둥을 받치는 석재가 놓인 것도 확인됐다. 이런 역경사 나무기둥은 풍납토성에서 처음 확인된 유물이다. 연구소 쪽은 “나무기둥의 경우 성벽을 쌓아 올리기 위한 공법상의 수단이나 성벽 시설물 일종으로 보인다”면서 “성벽 축조 방법과 공정을 파악할 중요한 단서”라고 설명했다.

훗날 성벽을 덧쌓은 증축 흔적이 나온 것도 주목된다. 성벽 초축면인 1·2토루와 증축면인 3토루 사이에서 발견된 부석 시설이 그것이다. 초축면인 1·2토루 축조 뒤 성 안쪽 벽을 보강하기 위해 부석시설을 올리고 성벽을 일정기간 쓴 흔적들과, 그뒤 증축을 위해 3토루를 부석시설 위로 쌓아 올린 흔적이 토층에서 확인됐다.

풍납토성 서쪽 성벽 복원지구 발굴조사 현장을 가까이서 본 모습.
풍납토성 서쪽 성벽 복원지구 발굴조사 현장을 가까이서 본 모습.
풍납토성 서쪽 성벽 복원지구 발굴조사 현장을 공중에서 내려다본 모습. 왼쪽 한강변을 배경으로 강변도로가 보이고 그 안쪽으로 사진 중앙부 하단의 길쭉한 공터가 서쪽 성벽의 자취가 확인된 조사지역이다. 과거 삼표 시멘트 공장이 있던 곳으로 현재는 철거되고 역사공원 정비사업이 진행될 예정이다.
풍납토성 서쪽 성벽 복원지구 발굴조사 현장을 공중에서 내려다본 모습. 왼쪽 한강변을 배경으로 강변도로가 보이고 그 안쪽으로 사진 중앙부 하단의 길쭉한 공터가 서쪽 성벽의 자취가 확인된 조사지역이다. 과거 삼표 시멘트 공장이 있던 곳으로 현재는 철거되고 역사공원 정비사업이 진행될 예정이다.
풍납토성은 3~4세기께 쌓았다는 것이 통설이다. 2011년 국립문화재연구소의 발굴조사 이래 5세기까지 수차례의 증축이 있었다는 가설이 제기됐지만, 증축 공법의 실체에 대해서는 논란만 거듭돼왔다. 이번 조사를 통해 성의 축조 방식과 증축의 뚜렷한 양상을 파악할 수 있게 됐다는 게 연구소 쪽 평가다.

토성의 서쪽 성벽 구간은 원래 삼표 시멘트의 신축 사옥 예정 터로, 2002~2003년 국립문화재연구소의 조사 당시 기초 흔적 정도만 확인됐던 곳이다. 서쪽 성벽은 1925년 을축년 대홍수 당시 모두 쓸려가 사라진 것으로 여겼으나, 2017~18년 국립강화문화재연구소의 발굴조사로 내벽 외벽을 포함한 서쪽 성벽의 터가 30m 이상 존속해왔고, 서문의 기초 부분도 남아있음을 확인한 바 있다. 연구소의 조사내용은 이날 오후 2시 문화재청 유튜브 채널(youtube.com/chluvu)에서 공개된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 국립강화문화재연구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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