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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백남준의 삶과 예술세계

등록 2006-01-30 14:35

세계적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씨는 1984년

전세계에 생중계된 `굿모닝 미스터 오웰' 이전만 해도 국내에서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한 작가였다. 남들이 하지 않는 미친 짓과 기행을 일삼는 전위예술가 정도로

막연히 알려졌을뿐이다.

그러나 당시 뉴욕과 파리, 베를린, 서울을 우주중계로 연결해 국내에 KBS TV로 그의 예술세계가 쏟아지자 백남준씨는 한순간에 천재적 아티스트로 강한 이미지를 심었다.

1932년 7월20일 서울 서린동에서 태창방직을 경영하던 백낙승씨 막내 아들로

태어난 백씨는 경기중고를 나와 일본 도쿄대에서 미학과 음악사, 미술사를 전공했으

며 58년에는 독일에서 음악사를 공부한 뒤 전자음악에 심취하기도 했다.


백씨가 예술가로서 세상사람들에게 처음으로 선을 보인 것은 59년 독일에서였다.

한해 전 프라이부르크대학에서 존 케이지를 만난 그는 `존 케이지에 보는 헌정'라는

제목의 작품을 한 화랑에 전시했으며 이때 이를 지켜본 `플럭서스' 운동의 창시자

조셉 보이스는 후일 그의 예술세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63년에 열린 백씨의 첫 개인전이 유명해진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장치된

비디오' 3대와 `장치된 TV' 13대와 함께 피가 뚝뚝 떨어지는 갓 잡은 황소머리가 전

시됐는데, 개막일에 조셉이 난데없이 도끼를 들어 나타나 전시중인 피아노 한대를

부숴버린 것.

백씨는 이후 뉴욕을 중심으로 활동하다 84년 인공위공 프로젝트 `굿모닝 미스트

오웰'이 성공하면서 34년만에 고국을 찾았다. 그는 고국땅을 밟자 마자 `예술은 사

기'라고 폭탄선언을 했고, 이는 `무엇을 근거로 예술이 사기인가'라는 논란을 불러

오며 문화예술계에 한 차례 파문을 일으켰다.

이어 86아시안 게임 때 인공위성 프로젝트인 `바이바이 키플링'을 만들어냈던

그는 88년 서울올림픽 때도 인공위성쇼인 `세계는 하나'를 엮어내 각별한 조국애와

타고난 천재성을 과시했다.

세계적 명성을 구가한 그는 93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대상의 영예를 차지함과

동시에 독일의 저명한 '카피탈'지가 선정한 현존최고 미술가 100명 중 다섯번째

자리를 차지하기도 했다. 96년 호암예술상을 받고 올해 미국 마이애미 예술가상, 일

본 교토프라이즈를 수상한 것도 그의 위치를 잘 말해준다.

백씨는 한 일간지에 기고한 글에서 "내 인생 중 가장 인상깊은 일은 예술가 친

구와의 만남이며 '굿모닝 미스터 오웰'은 그 산물이다"고 지적하면서 무명일 때

만나 동지적 유대관계를 맺었던 존 케이지와 요셉 보이스를 꼽았다. 그러면서 외국

에서 평가받은 후에야 알아주는 국내풍토에 대해 섭섭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조채희 기자 chaehee@yna.co.kr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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