첼리스트 샬럿 무어먼이 등장하는 행위예술 .
‘베네치아’ 대상 등 최고 예술가로
백남준은 1932년 서울에서 방직회사를 경영하던 거부 백낙승의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부유한 환경에서 피아노 교육을 받았으며 경기중 시절부터 12음계 개념을 창안한 현대음악가 쇤베르크에게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 그 뒤 일본으로 건너가 52년 도쿄대에 입학한 뒤 미학, 미술사, 음악학을 공부했고, 쇤베르크 연구로 졸업논문을 썼다.
56~62년 현대음악의 중심지 독일에서 유학한 백남준은 동양의 선 사상에 심취했던 미국의 전위음악가 존 케이지를 음악 강좌에서 만나면서 중요한 예술적 전기를 맞는다. 그는 소리내는 행위 자체를 음악화하는 행위음악 개념을 창안하고, 59년 뒤셀도르프에서 케이지에게 헌정하는 첫 행위음악 공연을 펼쳤다. 케이지, 요제프 보이스 등과 기존 예술형식에 도전하는 플럭서스 운동을 주도하며 전위 예술의 기린아로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뒤이어 텔레비전 등의 미디어 영상에서 예술적 영감을 얻어 63년 독일 부퍼탈에서 텔레비전을 매체 삼은 첫 개인전 ‘음악의 전시-전자 텔레비전’을 선보이며 비디오 아트의 서막을 알린다. 64년 뉴욕으로 거처를 옮긴 뒤에는 더욱 전위적인 미디어 영상작업을 펼쳐간다. 전위 음악가 샬럿 무어먼과 함께 연출한 ‘오페라 섹스트로니크’(1967)는 알몸의 무어먼이 첼로를 안고 뒹굴며 섹스를 음악으로 표현해 사회적 파문을 일으켰다.
퍼포먼스와 텔레비전 실험, 비디오 제작으로 활동영역을 넓힌 그는 뉴욕을 방문한 교황 바오로 6세의 시가행렬을 비디오에 담아 발표하면서 “텔레비전 화면이 캔버스를 대체할 것”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또한 74년 록펠러 재단에 제출한 ‘전자 슈퍼하이웨이’ 계획서에선 위성과 광섬유 등으로 전지구적 연결이 이뤄지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예견했다.
84년 1월1일에는 예술적 동료인 존 케이지, 요제프 보이스와 춤꾼 머스 커닝햄, 피터 가브리엘, 이브 몽탕 등의 팝스타까지 총망라해 파리와 뉴욕을 잇는 실시간 위성 중계 퍼포먼스 ‘굿모닝 미스터 오웰’을 기획해 세계의 시선을 모았다. 이어 93년 베네치아(베니스) 비엔날레에서 대상을 수상하고 세계 주요 매체들이 뽑은 20세기 대표 예술가 명단에 포함되면서 그는 명실상부한 거장으로 우뚝 선다. 국내 미술동네에는 93년 휘트니 비엔날레 작품전의 서울 개최를 막후 주선하면서 한국 현대미술의 새 흐름 형성에 물꼬를 터주기도 했다. 96년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에도 2000년 구겐하임 회고전에서 레이저 폭포 ‘야곱의 사다리’를 선보였으며, 2004년 9·11 테러 희생자 추모 작품 ‘메타 9.11’을 발표하는 등 고인의 창작열은 식을 줄 몰랐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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