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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집콕’이 일깨운 공간의 가치 어떤 격차사회가 펼쳐질까

등록 2021-03-27 04:59수정 2021-03-29 11:50

<독립만세>. 제이티비시 제공
<독립만세>. 제이티비시 제공
[황진미의 TV 새로고침]

요즘 티브이만 틀면 ‘집방’이 나온다. ‘먹방’ ‘쿡방’에 이어 집방이 대세다. 이렇게 집방이 유행하게 된 요인으로 다들 ‘코로나 팬데믹’을 꼽는다. 그러나 집방은 코로나 이전부터 유행하고 있었고, 코로나가 기름을 부은 꼴이다.

집방이란 신조어가 나온 게 2015년이다. <헌집줄게, 새집다오> <내방의 품격>은 인테리어를 소재로 한 예능으로, 집방을 표방했다. 2017년에는 <내 집이 나타났다>에서 큰 집을 지어주기도 했다. 이 프로그램은 로또 같은 행운의 집방으로, 2000년 <러브하우스>를 떠올리게 한다. “따라라라 따~” 하는 배경음악으로 남은 <러브하우스>는 시청자의 낡은 집을 공짜로 고쳐주는 ‘착한 예능’을 표방했다. 그러나 불행을 전시하는 신파성과 아무리 낡은 집일망정 자가소유자만 누릴 수 있는 혜택이라는 아이러니를 품고 있었다.

지금 ‘집방 대세’를 이끈 일등 공신은 단연 <구해줘! 홈즈>이다. 2019년 3월에 시작한 이 프로그램은 시청자에게 매물을 소개해주는 부동산 중개 프로그램이다. 마침 넷플릭스에서 소개된 미국의 호화 주택을 중계하는 프로그램 <셀링 선셋>과 더불어 집 구경이 예능 콘텐츠가 될 수 있음을 확실하게 증명했다. <구해줘! 홈즈>에는 다양한 소비자의 수요와 주택시장의 현실이 잘 반영되어 있다. 경기권의 집들이 아무리 쾌적하고 아름다워도, 협소한 ‘인 서울’ 집보다 가격과 선택에서 밀리는 것을 확인하며 ‘집값이란 무엇인가’ 사유하게 된다. 즉 집의 사용가치와 교환가치가 현실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여준다. 프로그램은 집 선택의 기준을 제시하고, 인테리어에 대한 눈높이를 높이는 등 시장에 영향을 미친다. 특히 프로그램에 소개된 아파트 단지가 단번에 부동산 사이트에서 관심도 1위로 뛰어오르는 등 ‘미친 영향력’을 보여준다. 얼마 전 100회 특집을 맞은 <구해줘! 홈즈>는 <바꿔줘! 홈즈>의 출시를 예고했다. 그동안 <홈데렐라> <빈집살래> <인테리어 머니> 등 종영된 인테리어 프로그램들이 있었다. 그중 방치된 집을 공공기관이 사들여 신청자와 함께 개조하는 <빈집살래>의 공익적 가치는 기억할 만하다.

<구해줘! 홈즈>. 문화방송 제공
<구해줘! 홈즈>. 문화방송 제공
2019년 4월에 시작한 <건축탐구―집>은 집의 사용가치를 본질적으로 성찰하는 프로그램이다. 공동체 주택이나 한옥 등을 소개하며, 건축가의 철학이나 건축주의 삶이 담긴 집을 차분히 소개한다. 이후 집의 사용가치에 주목하는 프로그램이 더 늘어났다. <서울엔 우리 집이 없다>는 서울의 획일적인 주택시장에서 벗어나 지방에 자신이 원하는 집을 지은 사람들을 보여준다. 이들의 집이 지닌 장단점을 꼼꼼히 짚어주는데, 지방분산이라는 공익성은 물론이고 직접 집을 짓는 사람들의 열정과 건축학적인 아이디어를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나의 판타집>은 집에 대한 로망을 체험하게 해준다. 초대손님이 꿈꾸는 집의 조건을 듣고, 그에 맞는 집을 찾아낸다. ‘앞마당에서 낚시한다’ 등 황당한 조건이 제시되지만, 제작진은 전국을 뒤져 진짜로 그런 집을 찾아낸다. 집에 대한 상상을 넓히고, 이상과 현실의 간극을 체험한다는 점에서 특별한 재미가 있다. 하지만 집의 사용가치와 ‘거주감’을 실감하게 만드는 프로그램은 요란할 것도 없는 <독립만세>이다. 송은이가 ‘멍때리며’ 바라보는 정원은 1인가구한테 집이란 무엇이며 집을 통해 얻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를 생생하게 느끼게 해준다.

반면 집의 교환가치적 측면을 보려는 프로그램도 있다. <집 보러 가는 날> <집사의 선택> 등은 집에 대한 투자적인 접근을 가미했다. 한국 사회에서 부동산이 가장 전통적인 재테크 수단임을 고려하면 나름 현실적이다. 하지만 집의 투자적인 가치에만 노골적으로 집중한 <돈벌래>는 비난 여론이 들끓으며 파일럿으로만 방영되었고 정규편성되지 못했다.

<나의 판타집>. 에스비에스 제공
<나의 판타집>. 에스비에스 제공
코로나에 앞서 집방이 증가한 것은 관찰 예능이 대세가 되고 소셜미디어와 유튜브 등의 매체를 통해 개인 공간이 자주 노출된 것과 관련이 있다. 또한 인구는 감소해도 세대수는 증가하고, 개인 생활을 중시하는 라이프스타일로 인해 집에 대한 수요와 욕망이 증가한 것도 한 요인이다. 그러나 서울 및 수도권에서 직주근접이 가능한 집들은 너무 비쌌다. 그 결과 집은 잠만 자는 공간으로 협소화하고 카페, 피시방, 놀이방, 빨래방, 찜질방 등으로 집의 공간을 외주화했다. 하지만 코로나로 인해 집에서 재택근무와 온라인 수업을 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직주근접보다 쾌적함이 중시되고 업무, 취미, 운동 등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절실히 필요해졌다. 집의 사용가치가 중요해진 것이다.

코로나는 집의 교환가치도 치솟게 했다. 유례없는 통화 유동성이 자본시장으로 몰리면서 코인, 주식, 부동산이 급등하고 있다. 여기에 잘못된 공급억제 정책과 규제가 맞물리면서 부동산 폭등장이 좀처럼 꺼지지 않고 있다. 턱없이 오르는 집값 앞에 노동소득은 미미해지고, 이제 노동소득에만 의존하는 삶은 정규직이라 해도 ‘워킹푸어’나 ‘벼락 거지’를 면하기 힘든 형국이다. 눈치 빠른 젊은 세대들은 직업적 성공보다 재테크의 성공을 중시한다. 절망한 이들은 냉소적인 폭락론과 ‘욜로’에 빠져든다. 코로나 이후 어떤 격차사회가 펼쳐질까. 집방을 보면서도 집의 사용가치에 오롯이 집중할 수 없는 이유이다.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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