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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뇌종양 투병중 구술로 동시집 펴낸 정세기 시인

등록 2006-01-31 21:44

“할머니 가게…새벽 별 첫손님 저녁 달 끝손님”
뇌종양으로 투병하고 있는 교사 시인 정세기(45·사진)씨가 동시집 〈해님이 누고 간 똥〉(창비)을 펴냈다.

“아파트 뒷마당에 갔더니/어떤 개가 방금 누고 갔는지/누런 똥에 김이 난다.//개나리 가지에도/덕지덕지 붙어 있는/해님이 누고 간 똥.//긴 겨울 웅크리고 있던/땅이 더운 입김을 내쉰다.”(〈모락모락〉 전문)

정세기 시인은 1989년 무크 〈민중시〉 5집에 시를 발표하면서 등단한 뒤 〈어린 민중〉 〈그곳을 노래하지 못하리〉 〈겨울 산은 푸른 상처를 지니고 산다〉 등 세 권의 시집을 펴냈다.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면서 우리 사회와 아이들의 삶을 시에 담아 노래해 온 정 시인은 심근경색으로 수술을 받으면서 학교를 쉬게 되었다. 게다가 2004년에는 뇌종양이 발견되어 지금까지 항암치료 중이다. 그 뒤로 동시에 주력해 온 시인은 〈창비어린이〉와 〈어린이와 문학〉 등의 잡지, 그리고 인터넷 다음 카페 ‘시의 지평’(cafe.daum.net/poet04) 등에 동시를 활발히 발표하고 있다.

한때는 얼굴이 붓고 눈이 안 보이는 등 상태가 나빠졌으나 지금은 자유롭게 걷지는 못해도 앉아 있을 수는 있는 정도로 현상은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글씨를 쓰기가 어려워 머릿속에서 구상한 시를 불러주면 역시 초등학교 교사인 부인과 딸이 받아 써서 잡지와 인터넷 등에 발표하고 있다.

“사람들 오고 가는 길가/골목 시장 담벼락 아래/고사리 도라지 깻잎을/펼쳐 놓은 할머니.//새벽 별이 첫 손님이고/저녁 달이 끝 손님이다.”(〈할머니 가게〉 전문)

“매연 자욱한/도시의 한복판 아파트/베란다 난간 위로/나팔꽃 줄기가 기어올라/자꾸만 밖으로 몸을 내민다./거긴 길이 아니야/위험해, 들어와/소리쳐도 소용없더니/어느 아침/기어코 나팔을 꺼내/하늘 향해 뚜뚜따따 나팔 분다.”(〈아파트 4〉 전문)

정 시인의 동시는 친근한 생활 주변에서 소재를 취하되 일상의 바닥에 깔린 역사적, 사회적 의미를 놓치지 않는 특성을 지닌다. 어린이문학 평론가 김이구씨는 “가난한 이웃에 대한 애정과 현실의 문제점에 대한 비판적 접근 등으로 동시의 진폭을 크게 확장했다”고 새 시집을 평가했다. 정 시인이 활동하고 있는 인터넷 카페 ‘시의 지평’에는 그의 동시집 출간을 축하하며 쾌유와 건필을 비는 동료 시인들의 축하 메시지가 줄을 잇고 있다.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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