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종교 같은 ‘길’ 함께 찾은 깨달음
“길은 길로 이어지고, 길에서 만나는 삶의 체취, 그리고 깨달음.” <수요기획> ‘공행(共行) - 18일간의 아주 특별한 여행’(연출 이홍기)은 구도자의 마음을 읊조리는 자막으로 시작한다. 목탁 두드리는 맑은 소리와 달라이 라마가 탄 기차, 교황의 모습이 차례로 겹쳐지며 서로 다른 종교의 성직자들이 함께 떠나는 순례의 길이 시작된다. 이번 주 <수요기획>에서는 가톨릭, 불교, 원불교 여성 성직자들의 모임인 삼소회 회원 18명이 떠난 해외 성지순례의 험난하고도 아름다운 여정을 자세히 담았다. 지난 2월 5일 한국을 출발한 이들은 인도에서는 달라이 라마를, 영국에서는 이슬람 지도자를, 이탈리아에서는 교황 베네딕토 16세를 만났다. 물론 그저 성현을 뵙기 위해 그 먼 길을 찾아간 게 아니다. 때로는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더 큰 깨달음을 던진다. 인도 사회에서 최하층 계급인 불가촉 천민 마을을 찾았으며, 영국의 국교인 성공회의 성지 캔터베리 대성당에서 함께 평화의 성가를 노래했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장벽 앞에서는 사바세계가 진 크나큰 책무 앞에 머리를 들지 못했다.
순례를 떠나는 이들은 자못 순교자와 같은 비장한 마음이 되기 쉽지만, 이 여행에서는 몸이 아니라 마음의 깨어짐을 먼저 각오했을 터. 서로 다른 종교의 성직자들이 다른 종교를 이해하고 존중하며 경의를 표하기 위해 “함께 떠나자”는 약속을 지켰기 때문이다. 자신의 독선이나 아집은 커녕, 자신이 믿는 종교를 제대로 고집할 겨를도 없었다.
이들의 모습을 다큐멘터리로 담은 이홍기 감독은 그 자신도 머리를 깎고 따라나선 이 순례길이 “그야말로 아름다웠다”고 찬사를 보낸다. 자칫 서로 부딪칠 수 있는 미묘한 길목에서 성직자들은 때로는 구도자로서 때로는 여성들만의 감수성으로 자신의 길은 지키고, 남의 갈길을 터주면서 18일 간의 여행을 함께 했다. 서로 다른 종교를 가진 이들이 하필 이른 새벽 똑같은 시간에 일어나서 서로 다른 형식으로 예불과 예배를 올릴 때, 그 자리는 어디이든 지구에서 가장 거룩한 곳이었다는 것이다. 또한 “여성 수도자들이기에 이런 화합의 자리가 가능하리라 생각된다”는 이 감독은 기도, 교리문제, 수도법 등으로 더러 갈등이 생길 때마다 “여성들만의 감수성과 공감으로 끝까지 화합을 지켜내는 모습에서 가장 성숙한 종교인의 모습을 보았다”고 덧붙인다.
이홍기 감독은 전작인 현각스님의 수행과정을 담은 <만행>처럼 시종일관 고요하고 담백한 시선을 유지하지만, 이번 다큐멘터리에는 4대 성지의 화려한 배경이 함께 어우러져 있다. 15일 밤 12시 한국방송 1텔레비전에서 방송한다.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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