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임순례, 이명세, 박찬욱, 강제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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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영화로 세상을 바꾼다” 충무로키드 16명의 시각과 꿈 영화는 1990년대 이후 한국사회에서 가장 탁월한 문화적 성취를 이룬 장르로 꼽힌다. 관객 1000만 시대 돌입과 시장 점유율 50% 돌파, 칸과 베니스, 베를린 영화제의 잇단 수상 등은 양과 질 모두에서 한국 영화가 거둔 커다란 성과를 말해주는 지표들이다. 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몇몇 예외를 빼곤 허술한 반공 액션물과 감질나는 에로물 따위로 관객들의 지탄을 샀던 한국영화다. 20년도 채 안되는 기간 눈부신 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까닭은 무엇일까? 다양한 풀이가 가능하겠지만, 그 중심에 감독이 자리잡고 있는 것만은 부인할 수 없다. <한국영화의 중심:감독>은 이 감독들의 육성을 통해 한국영화가 대중의 사랑을 획득하며 산업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을 찾아보는 다큐멘터리다. 케이블 영화채널 캐치온에서 18일 밤 9시 방영된다. 등장 인물들의 면면이 화려하다. 한국영화를 이끄는 16명의 현역 감독들이 대거 출연한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이명세와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의 박광수, <올드보이>의 박찬욱, <태극기 휘날리며>의 강제규, <살인의 추억>의 봉준호, <장화홍련>의 김지훈,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임순례, <말죽거리 잔혹사>의 유하, <무사>의 김성수, <발레교습소>의 변영주, <역도산>의 송해성, <아라한 장풍대작전>의 류승완, <썸>의 장윤현, <주홍글씨>의 변혁, <지구를 지켜라>의 장준환, <고양이를 부탁해>의 정재은 등이다. 다큐는 내레이션 없이 이들 감독의 인터뷰 내용만으로 진행된다. 늘 카메라 뒤에서 모니터를 보며 ‘레디’와 ‘컷’을 외치던 감독들이 이번엔 카메라 앞에서 한국영화를 바라보는 속내를 털어놓는다. 그들의 목소리엔 영화에 대한 열정과 작가로서의 자부심, 영화로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자의식 등이 복합적으로 담겨있다. 감독으로서의 발언이기 때문일까? 이들은 한국영화의 특징으로 가장 먼저 ‘감독의 힘’을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감독에게 충분한 권한을 주고 감독의 권위를 인정하는 분위기가 한국영화의 힘의 원천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이나 홍콩이나 미국은 프로듀서 시스템이 정확하게 잡혀져 있어서 감독이 하는 역할 자체가 레디 고를 부르는 데 한정돼 있다면 한국은 감독의 창의성을 존중해주고 많은 것을 감독의 품 안에서 출발한다.”(송해성 감독) 이렇게 만들어진 한국영화의 내적 특성 하나는 장르의 제약을 벗어난 모호함 또는 복합성이다. 류승완 감독은 “요즘엔 장르의 규칙을 조금은 비튼다든지 누구나 예상하는 것에서 벗어나는 어떤 것을 하는 것에 흥미를 느낀다”며 “장르라는 것 자체가 결국은 허상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고 토로한다. 나아가 임순례 감독은 상업영화와 예술영화의 장르적 구분마저 흐트러버린다. “만드는 방식은 상업영화지만 영화 속에 담긴 내용은 작가주의다. 한국영화는 상업영화와 예술영화 그 둘 사이에 위치한다.” 그러나 이 다큐에서 가장 진솔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대목은 이들이 ‘나는 영화로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꿈을 드러낼 때이다. 장준환 감독은 자신의 영화를 두고 “다른 사람들의 삶에서 나와 비슷한 외로움과 상처들을 확인하고 토닥여주고 그런 부분도 꽤 있지 않은가?”라고 되묻는다. 변영주 감독은 “소통이 막혀있는 사람들에게 조그만 위로를 줄 수 있지 않나, 영화라는 게”라고 말한다. 이학성 캐치온 편성팀장은 “새로운 스타일의 다큐 형식으로 한국영화를 새롭게 분석하는 시도”라며 “한국영화와 감독들에 대한 의미있는 기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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