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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2.17 18:12 수정 : 2005.02.17 18:12

한국방송 인기드라마 <해신>의 촬영 장면. 티브이 드라마가 만들어진지 40여년이지만, 스태프들을 위한 제작 환경은 달라진 것이 별로 없다. 수십억원대의 제작비는 대부분 연기자 출연료로만 들어간다. 한국방송 제공



KBS 카메라맨 이주림씨 사망계기
“촬영 중 스태프 쓰러지는 일 흔해”

지난 4일 한국방송 드라마영상팀 이주림(48)씨가 과로 끝에 숨졌다. 열악한 드라마 제작 환경이 가장 큰 원인이며 언제든 재발될 사고라는 지적이다. 또 이씨의 과로사를 계기로 드라마 관련 노동자들의 업무 환경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터져 나온다.

한국방송 공채 10기 카메라맨인 이씨는 드라마 〈바람꽃〉과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의 스튜디오 촬영을 담당하고 있었다. 그는 지난달 31일 〈바람꽃〉 촬영 중 두통을 호소했지만 진통제로 버텨냈고, 2일 〈퀴즈 대한민국〉 녹화가 새벽까지 이어져 두통이 재발하자 다음날 휴가를 내고 광주 집으로 내려갔다. 4일 새벽 집에서 정신을 잃은 그는 병원 응급실로 옮겼으나 이미 심장마비로 숨을 거둔 뒤였다. 한국방송 노동조합이 진상조사단을 꾸려 조사해보니, 이씨는 숨지기 직전 한달 동안 144시간33분 초과 근무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씨 외에 30여명의 한국방송 드라마영상팀원들도 일상적으로 한달 평균 60~80시간 초과 근무를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1주일에 2시간짜리 영화 한 편을 찍어낼 정도의 살인적인 업무량”이라고 심청용 조사단장은 밝혔다. 이거정 한국방송 드라마영상팀장은 “지난달 13일 이씨를 면담할 때만 해도 건강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는데 이런 일이 벌어져 마음이 아프다”며 “이씨는 스튜디오 촬영팀에 소속돼, 야외촬영팀에 견줘 상대적으로 아주 힘든 환경에 놓여 있진 않았고, 다만 1월에 특집 프로그램이 많아 과로한 것이 원인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드라마 관련 스태프들이 이처럼 열악한 노동 환경에 노출돼 온 것이 하루이틀 일은 아니다. 지난해 〈파리의 연인〉으로 신드롬까지 일으킨 박신양도 당시 “42시간 동안 쉬지 않고 촬영을 하는 등 연기자와 스태프를 혹사시키는 비인간적인 제작 환경은 개선돼야 한다”며 “제작 환경이 바뀌지 않는 한 다음 드라마 출연은 심각히 고민해봐야겠다”고 말한 바 있다. 문화방송의 한 피디는 “스태프들이 드라마 촬영 중 쓰러져 응급실에 실려가는 일은 너무 흔한 일이라 신경쓰는 사람들도 별로 없다”고 털어놨다. 특히, 한 드라마당 많게는 80여명에 이르는 연출·조연출·카메라맨·엔지니어 등을 제외한 나머지 스태프들은 대개 비정규직이어서 이씨와 같은 사고가 나도 산재 처리를 기대하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외주사의 경우 스태프들의 급여는 방송사보다 많지만, 드라마 제작 환경은 더욱 나쁜 것으로 알려졌다. 원인은 무리한 드라마 촬영 일정, 인력 부족, 제작비의 한쪽 쏠림 현상 등이 손꼽힌다. ‘그날 찍어 그날 올리는’ 방송 관행, 입김 세진 연기자들의 스케줄에 맞춘 무리한 촬영 일정, 천문학적인 출연료에 따른 상대적인 제작비·인건비 감소 등의 탓이라는 것이다.

연기자 인지도에 기댄 드라마 제작 관행을 타파해야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 접근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 방송 관계자는 “드라마 제작비는 수십억원을 넘어서고 있지만, 대부분 톱스타들의 출연료나 허울뿐인 국외 촬영에만 들어갈 뿐 인력 확충이나 제작 여건 향상 등에는 쓰이지 못하고 있다”며 “이는 지나친 시청률 경쟁에서 톱스타를 내세우는 쉬운 방법으로 승부하려 하는 제작진의 안이함 탓”이라고 꼬집었다. 항상 드라마 문제의 해결책으로 제시돼 온 ‘사전전작제’도 궁극적인 대안으로 제시됐다. 이거정 팀장은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선 드라마도 사전전작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문화방송 한 피디는 “한류다 뭐다 해서 드라마가 돈이 되다보니, 시청률 경쟁에만 열을 올릴 뿐, 좋은 드라마를 위해 전문 스태프 확충과 교육 등 밑바탕을 다지려는 생각들은 하지 못하고 있다”며 “외주사들도 사전전작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이는 드라마 완성도를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방송사와의 관계에서 자신들의 경제적 이익만을 염두에 둔 것”이라고 꼬집었다.

김진철 기자 nowher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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