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정사정 없는 유머 액션
인정사정 볼 것 없다(S 밤 11시45분)=최근 오랜만에 충무로로 돌아와 조선시대 사극 <형사>를 찍고 있는 이명세 감독의 1999년 흥행작. 흑백과 느린 화면, 스틸처럼 끊기는 장면, 필터를 사용해 두터운 유화처럼 찍는 기법 등 스타일리스트 이명세 감독의 시도들이 풍부하게 들어간 감각적인 영상과 이 감독의 역설적인 유머감각 등이 조화를 이룬 영화다. 비 쏟아지는 광산 앞에서 범인 장성민(안성기)과 우 형사(박중훈)가 결투를 벌이는 마지막 장면에서 둘의 주먹이 동시에 서로의 얼굴에 닿는 장면은 <매트릭스3: 레볼루션>에서 거의 똑같이 재현돼 이 영화를 베낀 게 아니냐는 의혹을 받을 정도로 화제가 됐던 명장면이다.
백주의 도심 한복판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난다. 범인으로 추정되는 장성민은 용의주도하게 수사망을 피해나가고 형사들은 범인을 잡기 위해 전력투구한다는 교과서같은 범죄영화의 줄거리지만 감독이 몇달 동안 경찰서에서 취재하며 얻은 형사들의 생활을 녹여 만든 우형사와 동료들의 모습은 웃기면서도 페이소스를 담고 있다. 문제의 살인사건이 일어나는 계단으로 장성민이 걸어갈 때 흘러나왔던 비지스의 <할리데이>는 개봉 당시 큰 인기를 얻었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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