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유있는 연기 보여줄게요”
1년간 연기공부…시트콤으로 컴백
“2∼3년 뒤엔 토크쇼 진행하고 싶어” 박경림(27)이 돌아왔다. 홀연히 미국 유학길에 오른지 2년만이다. 재기 발랄한 달변은 여전한 가운데 눈빛은 더 깊어져 2년이라는 시간이 그리 녹록치 않았음을 보여줬다. “가라, 가지 마라, 주변에선 말들이 많았지만요. 내 인생에서 이쯤 나에게 투자해야겠다 생각해서 유학을 결심했어요. 제 자신에게 한계를 느꼈던 거죠.” 그랬다. 방송 일이 좋아서 시작했지만, 언젠가부터 ‘일’ 자체에 발목이 잡히기 시작했다. “내가 즐겨야 보는 사람들도 즐거울 텐데, 억지로 웃는 일도 많아졌다.” 그때부터 벽에 부닥치는 자신의 모습이 견디기 힘들었고, “일주일 내내 티브이와 라디오 여기 저기 출연하다보니 했던 얘기를 여기 저기서도 또 하고, 마음의 여유도 없어지고, 체력의 한계도 느껴졌다.” 무엇보다 “시청자들은 나보다 앞서 나가는데 나는 뭘 하고 있나” 고민하는 시간이 늘어나, “차라리 나를 먼저 채우고 버림 받는 것이 낫다”며 공백기간의 두려움을 떨치고 유학을 결심했다. 미국에선 9개월짜리 영어학교를 거쳐 뉴욕 필름아카데미에서 1년 과정을 마쳤다. 처음엔 적응도 잘 안되고 영어도 어려워 울기도 많이 했단다. 그러나 “슬픈 감정을 연기하기 위해 3시간 동안 촛불을 켜두고 감정 잡는 연습도 해보고, 영화 <카지노>와 <라스베가스를 떠나며>의 여주인공 역할”도 잘 해내며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다. 무엇보다 큰 성과는 짬짬이 미국과 유럽 여행을 다니며 삶의 여유를 되찾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귀국 직전 몇몇 프로그램의 캐스팅 제의를 받았다. 문화방송 <느낌표>와 에스비에스 시트콤 <귀엽거나 미치거나>였다. “쇼 프로를 바로 하면 시청자들이 ‘뭐야 똑같잖아’ 할까봐” 우선은 시트콤 출연을 결심했다. 시트콤에서 맡은 역할은 미술관 큐레이터. 외모 빼고는 모든 것을 다 갖추고, 외모 외엔 아무 것도 보잘 것 없는 역의 소유진과 연기 대결에 나선다. 박경림은 곧 버라이어티쇼에도 고정 출연할 것이라고 계획을 밝혔다. “변하길 바라면서도 변하면 싫어하는 대중”들에게 자신의 진면목을 보여주기 위함이며, 더 나아가 “2~3년 뒤 꼭 해보고 싶은 토크쇼 진행자”의 준비를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다. “전 사실 엠시를 하고 싶어서 데뷔했어요. 다들 절 코미디언으로 기억하시지만 코미디 프로에 출연한 적은 한번도 없었답니다. 당시엔 여자 엠시들은 키가 커야 했고(웃음), 게임 방식이나 상품 소개하는 수준이었죠. 키도 작고 그래서 당시엔 엠시를 못하고 버라이어티쇼에만 출연했던 건데요. 이젠 세상이 좀 달라졌잖아요. 꼭, 연예인 아닌 일반인을 게스트로 앉혀놓고 하는 토크쇼 진행을 하고 싶어요.” 미국에서 박경림의 눈에 비친 오프라 윈프리는 “전 미국 아줌마들의 친구”였다. “아줌마들의 친구는 곧 아줌마의 자식들의 친구도 될 수 있다.” 박경림이 꿈꾸는 자신의 미래 모습이다. 한국에선 임성훈을 존경했단다. 도서관에서 항상 신문과 책을 읽으며 프로그램을 준비하던 모습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고. 박경림도 여성학과 심리학 책을 많이 읽으며 내실을 다지겠다고 했다. 2~3년 뒤 볼 수도 있을, 연예인 신변잡기 아닌 대중의 공감을 바탕으로 한 토크쇼가 기대된다. 김진철 기자 nowhere@hani.co.kr
“2∼3년 뒤엔 토크쇼 진행하고 싶어” 박경림(27)이 돌아왔다. 홀연히 미국 유학길에 오른지 2년만이다. 재기 발랄한 달변은 여전한 가운데 눈빛은 더 깊어져 2년이라는 시간이 그리 녹록치 않았음을 보여줬다. “가라, 가지 마라, 주변에선 말들이 많았지만요. 내 인생에서 이쯤 나에게 투자해야겠다 생각해서 유학을 결심했어요. 제 자신에게 한계를 느꼈던 거죠.” 그랬다. 방송 일이 좋아서 시작했지만, 언젠가부터 ‘일’ 자체에 발목이 잡히기 시작했다. “내가 즐겨야 보는 사람들도 즐거울 텐데, 억지로 웃는 일도 많아졌다.” 그때부터 벽에 부닥치는 자신의 모습이 견디기 힘들었고, “일주일 내내 티브이와 라디오 여기 저기 출연하다보니 했던 얘기를 여기 저기서도 또 하고, 마음의 여유도 없어지고, 체력의 한계도 느껴졌다.” 무엇보다 “시청자들은 나보다 앞서 나가는데 나는 뭘 하고 있나” 고민하는 시간이 늘어나, “차라리 나를 먼저 채우고 버림 받는 것이 낫다”며 공백기간의 두려움을 떨치고 유학을 결심했다. 미국에선 9개월짜리 영어학교를 거쳐 뉴욕 필름아카데미에서 1년 과정을 마쳤다. 처음엔 적응도 잘 안되고 영어도 어려워 울기도 많이 했단다. 그러나 “슬픈 감정을 연기하기 위해 3시간 동안 촛불을 켜두고 감정 잡는 연습도 해보고, 영화 <카지노>와 <라스베가스를 떠나며>의 여주인공 역할”도 잘 해내며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다. 무엇보다 큰 성과는 짬짬이 미국과 유럽 여행을 다니며 삶의 여유를 되찾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귀국 직전 몇몇 프로그램의 캐스팅 제의를 받았다. 문화방송 <느낌표>와 에스비에스 시트콤 <귀엽거나 미치거나>였다. “쇼 프로를 바로 하면 시청자들이 ‘뭐야 똑같잖아’ 할까봐” 우선은 시트콤 출연을 결심했다. 시트콤에서 맡은 역할은 미술관 큐레이터. 외모 빼고는 모든 것을 다 갖추고, 외모 외엔 아무 것도 보잘 것 없는 역의 소유진과 연기 대결에 나선다. 박경림은 곧 버라이어티쇼에도 고정 출연할 것이라고 계획을 밝혔다. “변하길 바라면서도 변하면 싫어하는 대중”들에게 자신의 진면목을 보여주기 위함이며, 더 나아가 “2~3년 뒤 꼭 해보고 싶은 토크쇼 진행자”의 준비를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다. “전 사실 엠시를 하고 싶어서 데뷔했어요. 다들 절 코미디언으로 기억하시지만 코미디 프로에 출연한 적은 한번도 없었답니다. 당시엔 여자 엠시들은 키가 커야 했고(웃음), 게임 방식이나 상품 소개하는 수준이었죠. 키도 작고 그래서 당시엔 엠시를 못하고 버라이어티쇼에만 출연했던 건데요. 이젠 세상이 좀 달라졌잖아요. 꼭, 연예인 아닌 일반인을 게스트로 앉혀놓고 하는 토크쇼 진행을 하고 싶어요.” 미국에서 박경림의 눈에 비친 오프라 윈프리는 “전 미국 아줌마들의 친구”였다. “아줌마들의 친구는 곧 아줌마의 자식들의 친구도 될 수 있다.” 박경림이 꿈꾸는 자신의 미래 모습이다. 한국에선 임성훈을 존경했단다. 도서관에서 항상 신문과 책을 읽으며 프로그램을 준비하던 모습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고. 박경림도 여성학과 심리학 책을 많이 읽으며 내실을 다지겠다고 했다. 2~3년 뒤 볼 수도 있을, 연예인 신변잡기 아닌 대중의 공감을 바탕으로 한 토크쇼가 기대된다. 김진철 기자 nowher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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