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국경, 그곳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네
칠판(K1 밤 12시30분)=가정이 영화학교이며 가족이 모두 영화감독인 것으로 유명한 이란 모흐센 마흐말바프 가문의 첫째딸인 사미라 마흐말바프가 스무살 나이에 두번째로 연출한 장편영화(2000년 작). 고향의 슬픈 현실을 스크린 안에 담으면서도 정치성보다는 가슴 짠한 휴머니즘을 더 깊이 드러내는 영화다.
카메라는 공습을 피해 피난을 가거나 방랑하는 이란-이라크 국경지대의 사람들을 담는다. 유랑민의 보따리 대신 칠판을 등에 지고 가는 두 선생님은 글과 구구단을 가르칠 학생을 찾는다. 이들이 전쟁의 와중에 학생을 찾는 이유는 굶지 않기 위해서다. 아이들마저 고통스런 생존의 전쟁에 내던져진 이곳에서 칠판은 글이 쓰여지는 대신 아픈 노인의 들것으로, 다친 아이의 부목으로, 급기야 결혼 지참금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감독은 인간의 기본권인 교육의 권리조차 사치처럼 여겨지는 현실을 보여주면서도 섣부른 절망이나 어설픈 희망의 제스처를 취하거나 가치판단을 내리지 않는다. 전체 시청가.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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