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숙 ‘위대한 유산’서 노처녀로, 김미숙 ‘나도야 간다’서 대학생으로
중년의 두 여배우가 연기 변신을 선언하고 나섰다. 한 명은 불혹의 나이에도 고혹적인 이미지의 이미숙이고, 또 다른 한 명은 남자들의 이상형으로 손꼽혀온 단아한 김미숙이다. 이미숙은 〈위대한 유산〉(사진 왼쪽, 한국방송 2 수·목 9시55분)에서 노처녀 유치원 원감으로, 김미숙은 〈나도야 간다〉( 오른쪽, 에스비에스 금 저녁 8시55분)에서 늦깎이 대학생으로 출연한다. 1978년과 79년. 비슷한 시기에 데뷔했지만 서로 다른 길을 걸어온 두 여배우가 20년의 세월을 넘어 비슷한 이미지로 만나게 됐다.
이미숙은 27년간 주연배우의 자리를 지켜온 보기 드문 배우다. 김해숙, 고두심이 대표 어머니상으로 자리를 지켜온 것과는 달리 그는 사랑받고 사랑하는 주인공이다. 꽃다운 나이엔 순결한 사랑을 펼쳤고(〈겨울 나그네〉), 결혼을 해서는 동생의 남자를 훔치기도 했으며(〈정사〉), 엄마가 되어서는 연하의 남자와 사랑에 빠졌고(<고독〉), 이혼을 했어도 유부남을 사랑해도 그가 하면 아름다웠다(〈사랑 공감〉). 그런 그가 새 드라마를 택하면서는 자발적으로 한켠으로 물러났다. “내가 연기를 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란 생각을 요즘 들어서야 해요. 이제부터라도 장르를 넘나들며 다양한 역을 해보고 싶어요.” 그래서일까. 그는 이 작품에서 작정하고 망가질 요량이다. 배용준, 이정재 등 당대 최고의 스타들과 호흡을 맞추었던 그가 이번 작품에선 정현성, 손병호 등의 조연과 삼각관계에도 빠진다. 방송에서는 단 한번도 쓴 적이 없다는 안경을 쓰고, 운동복도 입고 밥을 비벼대는 모습으로 브라운관에 돌아왔다.
그런 시도는 김미숙이 조금 더 빨리 했다. 그는 사랑받는 대상이었다. 그 사랑은 이미숙을 향한 눈빛과는 다르다. 단아하고 부드러운 이미지로 아내 같은 자리를 차지해왔다. 자칫 틀에 갇히기 쉬운 이미지를 깨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김미숙 하면 소리도 안 지르고 현실과도 떨어진 다른 곳에 사는 듯하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어요. 그 환상을 깨는 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처음엔 분간이 안 갔어요.” 이미 〈여왕의 조건〉에서 억척스런 아줌마의 면모를 발휘한 뒤라 두 번째 변신은 그와는 또 달라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다. 김미숙은 ‘행자’ 역에서 “경쾌하면서도 연륜있는 삶의 무게를 표현하는 캐릭터로 차별화하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40대에 이르러 “보기 좋기만 한 연기가 아닌 생활의 진실이 묻어나는 연기를 하겠다”는 방향을 잡은 그들이 어떻게 숙제를 풀어갈지는 그들의 신인 시절 만큼이나 새로울 듯하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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