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의 작은 섬 들썩인 파란만장 ‘투표여행’
비밀투표(교 낮 1시50분)=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길> 3부작처럼, 특별한 사건 없이 가난한 이들의 한 일상을 조용히 응시하며 관객의 마음을 무장해제시키는 이란 영화의 한 경향을 보여주는 작품. 버박 파여미 감독의 2001년작으로 그해 베니스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았다.
사막처럼 모래바람 날리는 작은 섬 한가운데 난데없이 하늘에서 투표함이 떨어진다. 거기에 투표용지를 든 선거관리위원 여성이 나타난다. 밀수꾼 잡는 게 일의 전부였던 이곳의 군인에게는 선관위원을 안내하라는 임무가 떨어지고 두 사람은 투표가 무엇인지도 잘 모르는 주민들을 설득하며 하루 종일 섬을 도는 여정을 떠난다. 젊은 여성의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은 후보가 남자라는 이유로 부끄러워 후보 사진도 못 보는 여성 유권자들, 투표와 장사를 교환하려는 사람들, 투표 대신 신에게 기도해야 한다는 사람들의 낡은 관습과 상식에 부닥쳐 영화 안에서 코믹한 불협화음을 일으킨다. 여기에 걸어다니는 내내 티격태격하면서 은근히 호감을 가지게 되는 군인과 선관위 여성의 풋풋한 로맨스도 영화의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든다. 12살 이상 시청가.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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