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역사학자가 본 ‘사극 논란’
역사를 소재로 한 소설이나 TV 드라마 등이 사회적 관심사로 부각되면 항상 작가의 역사적 상상력 문제가 도마 위에 오르곤 한다. 이러한 양상만을 놓고 보자면 작가의 창작 활동에 상당한 제약이 있는 듯 비쳐지기 십상이다. 그러나 실상 작가의 상상력은 대단히 큰 폭으로 허용될 수밖에 없는 것이며 시간이 흐를수록 상상력의 허용 폭이 넓어져 왔다.
역사적 사실을 재구성할 수 있는 사료는 제한되어 있고, 역사학자의 연구 성과도 과거 사실의 구체적 내용을 파악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반면에 역사적 사실의 내면을 충실하게 채우라는 대중의 요구는 계속 커져왔기 때문이다. 사료가 부족하다 못해 빈약한 고대사의 경우는 작가의 상상력 허용치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최근 한국 고대사를 소재로 한 사극이 방영되면서 다시금 작가의 역사적 상상력에 대해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 까닭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역사적 상상력에 제약을 가하는 장벽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비역사적 인식이 아니어야 한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반역사적 인식이 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비역사적 인식이란 해당 시기에 있을 수 없는 일을 상정하는 것을 말하며, 반역사적 인식이란 역사의 긍정적 발전을 가로막는 생각을 말한다.
역사적 상상력이 비역사적이거나 반역사적이지 않아야 한다는 점은 당연히 작가에게보다는 역사학자에게 엄격하게 요구된다. 또한 픽션을 가미하여 창작활동을 하는 작가에게도 그 요구되는 정도는 다르게 나타난다. 특히 TV의 사극을 창작하는 작가에게는 대체로 역사학자에 버금가는 수준으로 요구되기 마련이다. 문학작품의 경우에는 문자로 표현되는 이면에 독자의 상상력이 발휘될 수 있는 여지가 폭넓게 주어지는 반면에 TV 사극은 광범위한 시청자를 대상으로 하는 데다가 시청각을 통해 생생하게 인식시키는 결과로 시청자의 상상력이 발휘될 수 있는 여지를 별로 남기지 않는 때문이다.
이제까지 TV 드라마나 영화의 사극에 내포된 작가의 상상력에 논란이 제기된 사례를 보면 비역사적 인식 때문인 경우가 많았다. 더 중요시되어야 할 반역사적 인식에 대한 문제 제기는 상대적으로 기피되어온 측면이 없지 않으며, 논란이 되더라도 반역사적 인식과 결합되어 있는 비역사적 인식이 주로 부각되었었다. 비역사적 인식이 역사 이해의 수준을 반영하는 것이라면, 반역사적 인식은 역사를 보는 관점과 관련된다. 역사를 보는 관점 즉 사관은 사상의 자유와 이어지는 까닭에 실제는 논란의 핵심이면서도 실제 논란은 비역사적 인식을 둘러싸고 벌어지곤 했던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앞으로 붐을 이룰 가능성이 큰 한국 고대사를 소재로 한 사극에 대한 논란에서 사관의 한 부분인 민족주의적 편향성 문제가 대두된 것은 중요한 진전이라 평가할 만하다.
우리 사회가 민족주의를 버려야 하는가는 또 다른 논란의 대상일 것이나, 국수주의적 민족주의를 극복해야 한다는 것은 사회 구성원 대다수가 공감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일본 극우세력의 그것은 비난하고 우리의 그것은 옹호하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다. 스스로를 바지저고리라 부르며 비하하던 시기를 이미 멀찌감치 벗어난 오늘날에 민족 자존심을 허울로 삼아 국민 만들기도 못되는 신민 만들기로 이어질 우려가 큰 쪽으로 역사적 상상력을 구성하는 것은 민족적 품위를 저버리는 행위이다.
비역사적, 반역사적 영역으로 넘어가지 않더라고 풍부한 역사적 감수성이 요구되는 부분은 숱하게 많다. 해당 시기의 역사상을 충실히 복원하는 이른바 정통 사극을 표방한 경우에는 특히 이 점에 유념할 것을 당부하고 싶다.
오종록(성신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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