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회 넘은 SBS ‘도전1000곡’
<도전천곡>(연출 박재용, 최원상·에스비에스 일 오전 8시30분)의 재미는 세련되지 못하다는 데 있다.
출연자가 번호를 선택하면 노래가 나오고 틀리면 탈락, 맞게 부르면 결승전에 진출한다. 예능프로그램이 인터넷과 손잡는 시대에 이들이 기대는 건 달랑 노래방 기계 하나다. 시대와 맞지 않은 촌스런 발상이지만 5년째 이어오며 지난달 20일 300회를 넘어섰다. 31일 녹화현장에서 만난 박재용 피디는 “보다 보면 나도 모르게 따라 부르게 되고, 오랜만에 출연한 옛날 가수를 보며 추억에 젖게 된다”면서 “촌스럽고 단순한 구성이 오히려 질리지 않는 맛을 주는 것 같다”고 자평했다.
분위기를 돋우려 화려하게 꾸민 무대 위는 녹화 10초전까지도 암기하는 소리가 떠나지 않는다. 세대별로 안배된 7명의 출연진은 시험을 앞둔 수험생처럼 벼락치기에 여념이 없다. 직접 써 온 노랫말을 외우는가 하면, 엠피3에 내려받은 애창곡을 반복해서 듣기도 한다. 이날은 가수 이정석이 나와 있었다. 이정석은 “오랜만에 후배들과 함께 무대에 오르는 것이 기쁘지만 가사를 생각하느라 노래를 못 부를 것 같다”고 걱정했다. 최원상 피디는 “출연자들이 가장 부담스러워 하는 건 가사 외우기“라고 귀띔했다.
매주 천곡의 노래는 어떤 기준으로 뽑을까? 박 피디는 “출연자들에게 희망 50곡을 받고, 최신 가요와 트로트를 골고루 섞는다”고 했다. 신곡이 나오면 바로 반영을 한단다. 항간에는 무대 앞에 가사가 적혀있고,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는 소문이 나돌기도 했다. 박피디는 “잘 부르는 번호에 쉬운 곡을 배치하는 식”으로 편의는 봐준다고 했다. 한 쪽에 마련된 노래방 모니터에서 가사와 음정을 체크하던 피디와 작가들도 신나는 노래가 나오자 발장단을 맞춘다.
이날 출연진을 주도하는 건 이영자의 몫이었다. 한참 어린 그룹 무가당과도 거리낌 없이 어울리고 1회전에서 탈락해 녹화 내내 박수만 치던 미스코리아 3인방에 신경 쓰랴, 율동, 추임새로 흥을 돋우랴 정신이 없다. 그러나 화기애애함 속에서도 은근히 긴장감이 감돈다. 모르는 노래가 나오자 이영자가 황급히 녹화를 중단시키고 피디에게 제안한다. “2회전에서 틀리면 안 되니까, 다시 한번만 찍자” 돌아오는 대답은 단호하다. “안돼요, 절대로 안 됩니다!”
글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사진 <도전천곡>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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