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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방송·연예

한 남자를, 공유할 수 있을까

등록 2007-05-09 18:48

배종옥 / 김희애
배종옥 / 김희애
‘김수현의 여자들’ 변화 보여주는 ‘내 남자의 여자’

에스비에스 〈내 남자의 여자〉(극본 김수현, 연출 정을영)는 어울리지 않는 것들의 조합이다. ‘불륜과 치정’을 소재로 하면서 ‘심리멜로극’을 표방한다. 착한 여자였던 김희애가 친구의 남편을 뺏는 팜므파탈 역을, 똑똑한 배우 배종옥이 순진한 조강지처 역을 맡았다. 가장 어색한 것은 조강지처 옹호론과 가족제도를 벗어나고 싶은 욕망이 공존하는 광경이다. 시청자들의 관습적인 기대를 배신하는 것이 전략인 듯한 이 드라마에서 자극적인 소재의 줄기를 따라가다 보면 뜻밖에 수려한 심리극을 만들려는 의도를 만나게 되는데, 김수현 드라마의 변화를 보여주는 지점이기도 하다.

갈등 속 유대감·자매애 두드러져
일부일처제 물음표…가족주의 회귀할 수도

배종옥 / 김희애
배종옥 / 김희애
일부일처제를 되묻는 드라마?=가족극과 멜로극을 번갈아 써왔던 김수현 작가의 작업일지에서 〈내 남자의 여자〉는 〈청춘의 덫〉 〈모래성〉 〈불꽃〉과 함께 독한 치정극의 일계를 이룬다. 특히 남편의 불륜으로 화목했던 가정이 일거에 무너진다는 〈모래성〉과 흡사한 설정이지만, 불륜 사실이 알려진 이후의 심리적 공방전에 주력하면서 〈모래성〉과도, 다른 김수현 드라마와도 차이를 빚는다.

중반인 12회를 넘기도록 불륜 이후의 남루한 공방전을 끌어오면서 〈내 남자의 여자〉는 여자들의 드라마였다. 두 여자가 서로의 콤플렉스를 받고 던지는 과정에서 정작 중간에 놓인 준표(김상중)의 존재는 한없이 작아진다. 심지어는 화영(김희애)은 준표에게서 자꾸만 지수(배종옥)를 보고, 지수는 어쩐 일인지 화영이 이해되려고 한다. 〈파리의 연인〉을 쓴 강은정 작가는 “불륜을 소재로 했지만 실은 일부일처제에 대한 의문이 더 큰 드라마”라고 평했다. “준표를 나눠가지며 셋이 살 수는 없을까”라는 화영의 말이나 “나도 다른 남자와 자보고 싶다”는 지수의 고백은 “사랑을 공유할 수는 없겠냐”는 작가의 질문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극의 중심을 이루는 또다른 사랑은 유대감과 자매애라고 부를 만한 것이다. 은수(하유미)는 동생을 대신해 화영과 육탄전을 벌이고, “한시도 버림받은 여편네처럼 쭈그리고 앉아 있지 말라고” 동생을 다그친다. 〈사랑과 야망〉에서 미자(한고은)를 격려했던 혜주(이승연)가 좀더 친근한 멘토로 발전한 인상이다. 〈불꽃〉과 〈청춘의 덫〉에서는 아무런 구실도 하지 못했던 친정 식구들이 주인공을 이해하고 지지하며 홀로서기를 돕는다는 점도 큰 변화다. “이젠 내가 엄마 같다”는 은수의 대사처럼, 자매애는 모성애로 커간다.

 ‘내 남자의 여자’
‘내 남자의 여자’
부르주아들의 불륜 드라마?=갈등 많고 모순 많은 개인, 그것도 여자들의 마음에 집중했던 지금까지의 극 흐름은, 그러나 중반에 다가서면서 다시 ‘김수현식 대가족’으로 회귀할 조짐도 보이고 있다. 여태껏 등골을 빼먹었으면서도 다시 발목을 잡는 화영의 가족과 치매노인인데도 절대권력을 휘두르는 준표의 아버지 홍 회장 등이 이미 본 것 같은 ‘기시감’을 불러일으킨다. 또 여성들의 피해의식만 자극한다거나 정형화된 멜로라는 시비에서도 완전히 자유롭지 않다. 신경정신과 전문의 이나미씨는 “한편으로는 일하는 여성의 박탈감이나 주부의 욕망이 거세된 드라마라는 점에서 비현실적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부르주아 계층의 탐욕과 불륜에 집중했다는 점에서 퇴행적”이라고 했다.

시청자들의 기대를 뛰어넘는 반전을 곧잘 추구해온 작가가 이번에는 자신이 구축해온 가족주의 이데올로기를 무너뜨리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 1988년의 〈모래성〉은 박근형이 애인인 김청과 아내 김혜자 모두에게 버림받는 결말이었다. 2007년 〈내 남자의 여자〉가 여성심리극의 이름에 값할지, 불륜의 주변에서 맴돌고 말지는 앞으로 남은 12부가 보여줄 것이다.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사진 에스비에스 제공


그 여자들의 세 남자

〈내 남자의 여자〉는 지수, 화영, 은수 3명의 여자가 중심축을 이루고, 남자들이 누군가의 아버지·남편·아들이다. 지난 5일 경기 성남 시흥동 촬영장에서 여자 캐릭터를 뒷받침해온 ‘내 여자의 남자’들을 만나 개성있는 연기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이혼 말리기 보단 딸 행복 중시

송재호
송재호
부성형(지수 아버지·송재호)=어떠한 상황에서든 딸을 이해하고 지지해주는 아버지는 딸들의 로망이다. 송재호는 “전작 〈부모님 전상서〉의 안 교감은 이혼하려는 딸을 무조건 말리는 보수적이고 고지식한 아버지였다면, 지금 배종옥의 친정아버지는 현실적이고 생각이 트인 인물”이라고 했다. “헤어져서 니가 편하다면 헤어져라”는 대사로 시청자들의 지지를 받았지만, 자신의 실제 모습은 안 교감 쪽에 더 가깝다고 했다. 김수현 작가와 〈안녕〉(1975), 〈부모님 전상서〉(2005)에 이어 세번째 작품을 함께 하는 송씨는 “김 작가의 대본은 한 자도 뺄 게 없고 완벽하다”며 “연기경력 40년이 넘지만 대본연습을 할 때는 긴장한다”고 털어놓았다.

뻔뻔하고 우유부단한 ‘갈등맨’

김상중
김상중
햄릿형(지수 남편·김상중)=점잖은 대학 강사, 단추를 끝까지 잠그는 단정한 남자가 하필 부인 친구와 불륜에 빠졌다. 아내와 애인 사이를 오가며 끝없이 고뇌하는 역을 맡은 김상중은 지난 3월27일에 열렸던 제작발표회에서 “한심하고 우유부단해 보일 수 있다. 집에서는 좋은 아빠인 척하고 나가면 좋은 애인인 척하는 사람이니까. 이성보다는 감정이 앞서는 인물”이라고 자신의 배역을 설명했다.

12회가 흐르는 동안 줄곧 지수와 화영 사이에서 갈등만 계속하는 우유부단한 햄릿형을 연기하고 있다. 위자료 때문에 부인과 아옹다옹 다투는 치사한 면모까지 보여줘 비난의 화살을 끊임없이 받는다.

선과 악 동시에 지닌 현실적 인간

김병세
김병세
바람돌이형(은수 남편·김병세)=처세와 현실에 강한 허달삼 역을 맡은 김병세는 코믹 연기로 극에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김수현 작가가 그에게만은 애드리브를 허용할 만큼 배역에 자신을 꼭 맞췄다. “결혼은 안 해봤지만, 주변 40대 부부의 소소한 이야기를 듣고 시트콤 〈대박 가족〉의 경험을 살려 연기하는 데 참고했다”는 그는 “윤리의식은 희박하지만 조강지처를 버리지 않는 허달삼이야말로 선과 악을 동시에 지닌 현실적 인간형”이라고 풀이했다. 그럼 이제 조강지처의 속을 썩이는 일이 없을까? “15, 16회쯤 의심을 살 만한 행동을 한다. 하지만 대놓고 바람을 피우지는 않을 거다.(웃음)”

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 사진 정용일 기자·에스비에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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