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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방송·연예

[문화읽어주는여자] ‘커피프린스1호점’의 매력

등록 2007-08-19 22:12수정 2007-08-20 14:37

박현주 번역가, 에세이스트
박현주 번역가, 에세이스트
동화와 현실의 쓴맛 단맛 ‘경계’ 에서
영화 <금지옥엽>의 마지막 장면에서 남장 여자로 나왔던 자영(원융이 분)은 마침내 여자의 모습으로 샘(장궈룽 분)에게 달려가서 “저 여자예요”라고 고백한다. 그런 자영에게 샘은 “남자든 여자든 상관없어. 널 사랑해”라고 대답한다. 13년 후, 드라마 <커피 프린스 1호점>(이하 커프)의 10화에서 한결(공유 분)은 계속 남자로 대해온 은찬(윤은혜 분)에게 “네가 남자건, 외계인이건 이젠 상관 안 해”라고 한다. 이제 사랑은 남자와 여자의 이분법 사이에서 고민하던 시점을 넘어 전우주적으로 확장된 것일까.

화면 밖 우리들은 사랑에도 상관할 일이 많음을 안다. 종의 한계를 넘을 각오까지 한 한결과 은찬 사이에도 어려움은 있다. 허나 <커프>는 마치 불가능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듯 동성애라는 철벽수비수를 베컴처럼 휙 젖히고 간 것은 물론, 멜로드라마의 단골손님인 계층과 지리의 장벽도 이신바예바처럼 훌쩍 뛰어넘으려 한다. 그 자리에는 몸이 배배꼬일 듯 간질간질한 연애의 감정들만 남았다.

이처럼 동성애라는 오해 안에서 등장인물이 느끼는 갈등을 허투루 다루지 않았고 진부한 사회적 통념을 극복해가는 연애를 손에 잡힐 듯 섬세하고 생생하게 그려냈다는 게 <커프>가 받을 자격이 있는 찬사이다. 하지만 이것이 기존관념을 전복하려는 시도라고 할 수는 없다. 남장여자를 둘러싼 연애소동은 셰익스피어가 400년 전에 <십이야>와 <뜻대로 하세요> 등에서 등장시킨 소재고, 중국에는 동진시대부터 내려온 양산백과 축영대 설화도 있다. 일본 대중문화에서는 <리본의 기사>와 <베르사이유의 장미>를 지나 현재의 <아름다운 그대에게>나 <오란고교 호스트부>까지 세세한 부분은 다르지만 계속 변형되며 재생산되는 주제이기도 하다. 이런 소재는 금기를 깨고 싶은 욕망과 그에 대한 보수적 거부감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독자나 시청자들을 안심시켜주는 전형적 장치로 사용된다. 보는 이는 이미 진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유사 동성애로 인한 고민에 짜릿해할 뿐, 마음속에 강하게 뿌리박힌 기존관념을 바꿔야 한다는 도전에는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고 오히려 더 강화하기도 한다.

그러니 <커프>는 구획 나누기에 연연하지 않는 신인류가 탄생했다는 신호가 아니라 인류 보편의 선입견을 지금 환경에 맞춰 영리하게 이용한 예라 할 만하다. 깔끔한 배경에서 생활하는 <커프>의 등장인물들이 나이보다 더 어리게 행동하는 것도 강하게 흐르는 성적 긴장감을 완화시켜주는 기능을 한다. 한결이 장난감 블록 디자이너라는 설정이나 한성과 유주가 아이들처럼 인형놀이나 전자오락을 하는 장면, 일부러 더럽게 행동하거나 신체에 유아적인 고착을 보이는 인물들로 인해 <커프>는 무게를 버리고 그림책처럼 산뜻해졌다. 아직 2차 성징이 오지 않은 세계에서는 성정체성이나 관계의 사회적 의미를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아도 되니 안전하다.

이제 결말로 향하는 <커프>가 복잡한 현실의 세계에 얼마나 진입할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커프>는 첫사랑의 설레는 감정을 보여주기 위해 조율된 드라마이고 그것만으로도 나쁘지 않다. 사회적 금기를 향해 너클볼을 던지다가 결국 포볼로 걸려 내보낸 뒤 다음 타자를 잡은 셈이다. 남자라도 상관없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여자니까 좋다고 하는 말에 안심이 되는 걸 보면 “인류건 외계인이건”을 진심으로 말하기까지는 아직 거리가 있다. 인생의 쓴맛단맛을 다 겪은 어른만이 즐길 수 있다는 커피맛을 조금씩 알아가는 경계, 우리가 다니는 커피 프린스 1호점은 여기에 서 있다.

박현주 번역가, 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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