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은행 본점 차장이었던 장준배씨(왼쪽) / 이문수씨(오른쪽)
문화방송 한학수 피디, ‘충청은행 강제퇴출자들의 10년’ 특집 제작
1997년 아이엠에프(IMF) 외환위기 이후 우리 사회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당시 금융권의 구조조정으로 화이트칼러인 은행원들도 거리로 내몰렸다. 문화방송이 24일 방영하는 <아이엠에프 위기 10년 특집-그 배는 어디로 갔나>(밤 11시40분)는 충청 은행원들의 달라진 삶을 엿보며 한국 사회의 변화를 살핀다.
제작진은 충청은행 퇴출자 945명 가운데 465명을 우편으로 설문조사했다. 이들은 강제 퇴직 뒤 억울함, 절망, 보복 충동을 느꼈다는 응답이 90% 이상으로 나타났다. 또 부부간 갈등을 겪었다는 사람도 무려 310명에 달했다. 이들의 주거형태도 달라졌다. 10년 전에는 열에 일곱 명이 집을 소유하고 있었으나 현재는 다섯 명으로 줄었다. 이들의 퇴출 전 월평균 소득도 321만원이었던 것에 견줘 현재는 평균 186만원로 급감했다. 퇴출자 가운데 금융관련 업종에서 정규직으로 일하는 사람은 22명에 그쳤다. 다섯 명에 하나는 무직이고 네 명 가운데 한 명꼴로 자영업이었다. 이는 한 번 퇴출당한 사람에게 한국 노동사회의 진입장벽이 얼마나 높은지를 잘 보여준다.
프로그램은 이런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퇴직자들의 삶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충청은행 본점 차장이었던 장준배씨는 현재 충북 청원군의 기계부품을 생산하는 작은 업체에서 외국인 노동자 일곱 명과 함께 일하고 있다. 그는 퇴출 직후 아내와 함께 시작했던 김밥집이 문을 닫으면서 신용불량자가 되기도 했다. 이문수씨는 퇴출 뒤 두 번의 사업실패로 공장을 전전하며 막노동을 하고 있다. “화이트 칼라 시절은 이미 잊었다”는 그는 “하루하루 먹고 살기도 빠듯하다”고 했다. 퇴직하자마자 아내가 둘째를 가졌다는 한 퇴출자는 생활고 때문에 낙태를 선택했다. 이 때문에 아내와 이혼한 그는 방송에서 “그때는 살인하는 사람들의 심정을 알 것 같았다”고 말했다.
이 프로그램은 <피디 수첩>에서 ‘황우석 사태’를 집요하게 파헤쳤던 한학수 피디가 <더블유>로 외국 시사프로그램을 제작하다 국내 취재로 복귀하는 첫 작품이다. 한 피디는 중산층이었던 은행원들의 변화된 삶을 담담하게 보여주며 10년간 무책임했던 국가를 비판하고 있다. 제작진에 따르면 충청은행 재건동우회는 당시 퇴출 결정이 국민의 기본권을 유린하는 행위였다고 주장한다. 프로그램은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를 제시하고, 1998년 9월14일 뒤늦게 아이엠프 이후 금융산업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을 신설했지만 강제성이 없다는 이유로 지금껏 지켜지지 않았던 사실도 꼬집는다.
한학수 피디는 “핵심은 대안을 제시하기보다 현실을 보여주며 국가가 이 시점에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곱씹어 보게 만드는 것”이라며 “이 프로그램을 통해 생활안정지원법의 취지를 살리고, 충청은행원의 명예가 회복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사진 문화방송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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