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 위부터 KBS <개그콘서트-애드리브라더스>, SBS <웃찾사-내사랑 콩깍지>, <웃찾사-영숙아>, <개그콘서트> 방청객들.
‘리얼리티’ 표방한 개그쇼 인기몰이
방청객 참여시켜 즉석웃음 제공
개그맨 실생활도 웃음 소재로
“돌발상황 대처역량 있어야 발전” 요즘 개그프로그램은 ‘각본 없는 드라마’다. 예능에서 ‘리얼 버라이어티’가 인기를 끄는 대세를 몰아 개그에서도 가상과 현실의 경계를 허물고 진짜 같은 상황으로 웃음을 유발하는 ‘리얼 개그’가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색다른 소재가 넘치는 케이블티브이 등 웃음을 주는 통로가 많아지면서 시청자들이 더이상 정통 개그프로그램을 찾지 않는 데 따른 현상이다. 침체된 개그의 돌파구가 될 수 있을지도 관심거리지만, 제약이 심한 지상파 개그에 표현의 자유를 가져다 줄 초석을 다질 것이라는 기대도 나온다.
■ 가상과 현실의 경계를 허물고=방청객을 참여시켜 예측불허의 상황으로 웃음을 주는 참여형 코너가 대표적이다. 에스비에스 <웃음을 찾는 사람들>(이하 <웃찾사>)의 ‘영숙아’는 처음부터 방청객을 무대로 끌어올려 코너 전체를 함께 만든다. 세 남자가 영숙이로 나온 방청객을 두고 사랑 싸움을 펼치는 형식인데 방청객이 어떤 반응을 보이느냐가 코너의 재미이자 시청자의 기대 요소이다. 한국방송 <개그콘서트>(이하 <개콘>)의 ‘애드리브라더스’는 방청객들로부터 쪽지를 받아 그 속에 적힌 말을 대사로 옮긴다. 이야기는 정해놓지만 중요한 대사는 모두 방청객의 몫이다. <개콘>은 지난 10월 방청객이 무대에서 즉흥적으로 연기하는 ‘개그마니아’를 내보내기도 했다. 한국방송 <폭소클럽2> ‘한글의 재발견’도 방청객을 무대로 불러 이상한 발음으로 한글을 따라읽게 만든다. 웃음은 여기에서 가장 크게 터진다.
코너 내용이 곧 내 이야기인 개그도 최근 등장했다. 출연하는 개그맨의 실제 생활을 꼭지에 접목시켜 진짜인지 가짜인지 헷갈리는 가운데서 재미를 찾는다. 일종의 ‘페이크’ 형식이다. <웃찾사>가 새롭게 선보인 ‘내사랑 콩깍지’는 실제 개그맨 커플 김재우 백보람의 연애이야기를 녹였다. 백보람과 김범용이 커플로 나오고 김재우가 악마와 천사로 등장해 둘의 연애를 방해하는 식인데 관객의 웃음은 주로 이런데서 나온다. “나 걔(김재우), 뜨려고 만났잖아”(백보람), “백보람 나 진짜 화났다.”(김재우) <개콘> ‘소심지존 기열킹’의 김기열도 지난 20일 방송에서 개그맨으로 사는 자신의 심정을 내뱉어 어느 때보다 반응이 뜨거웠다.
■ 시청자 기호 따른 맞춤형 개그= ‘보이스포맨’, ‘떴다 김샘’ 등 방청객과 소통하려는 시도는 1~2년 전부터 계속되어 왔지만 ‘진짜 같은 재미’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기존과는 다르다. 이런 변화는 <무한도전> <라인업> 등 리얼 버라이어티의 인기로 출연자의 실제 모습에서 재미를 찾는 시청자의 기호에 맞춘 것이다. <웃찾사> 남승용 피디는 “이제는 짜여진 콩트를 싫어하기 때문에 개그에도 리얼한 요소를 가미시켜야 한다”고 했다. ‘…콩깍지’ 김재우도 “리얼 버라이어티가 대세인 분위기에 맞춰 진짜인지 가짜인지 헷갈리게 하는 재미를 의도했다”고 말했다. 개그를 바라보는 수준에 머물지 않고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를 원하는 방청객들의 달라진 태도도 리얼 개그를 가능케 한 원동력이다. ‘애드리브라더스’ 김현기는 “국내 개그쇼가 대학로 무대를 발판으로 발전했기 때문에 그 분위기가 방송으로 이어진 듯하다”고 했다.
반응도 뜨겁다. 다듬어지지 않은 일반인들이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어디로 튈지 모르는 설정과 개그맨들의 실제 이야기를 풀어놓은 코너는 긴장감과 흥미를 유발시킨다. ‘영숙아’의 염기정은 “개그맨들이 웃긴 표정 열번 짓는 것보다 일반인이 한번 웃기면 관객들이 더 좋아한다”고 했다. 표현의 제약이 많은 지상파 개그에서 진짜 같은 재미를 준다는 설정 아래 지금보다 표현이 조금 더 자유로워지지 않겠느냐는 조심스런 기대도 나온다.
■ 개그 발전 원동력 될까= 그러나 방청객이 당황하면 맥이 끊기는 등 코너의 질보다는 즉흥적인 웃음에 치중한다는 우려도 있다. 침체된 개그의 근본적인 문제를 치유하기보다는 개그가 아닌 다른 것으로 웃음을 주려는 꼼수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석 문화평론가는 “다른 장치로 흥미를 끄는 것은 개그가 주는 웃음의 맥락, 아이디어, 재치와는 거리가 멀다. 한두 번은 산뜻하게 느껴지겠지만 반복하면 결국 뻔해져 같은 문제를 표출할 것이다”고 했다. 내부적으로 리얼 버라이어티처럼 리얼 개그가 주는 재미를 제대로 끌어가려면 개그맨의 역량부터 키워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현기는 “쉬워보이지만 이런 코미디에서 재미를 창출하는 것이 더 어렵다. 모든 변수를 예측하고 능숙하게 코너를 이끌어 리얼 개그를 발전시키려면 개그맨의 실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사진 에스비에스 한국방송 제공
개그맨 실생활도 웃음 소재로
“돌발상황 대처역량 있어야 발전” 요즘 개그프로그램은 ‘각본 없는 드라마’다. 예능에서 ‘리얼 버라이어티’가 인기를 끄는 대세를 몰아 개그에서도 가상과 현실의 경계를 허물고 진짜 같은 상황으로 웃음을 유발하는 ‘리얼 개그’가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색다른 소재가 넘치는 케이블티브이 등 웃음을 주는 통로가 많아지면서 시청자들이 더이상 정통 개그프로그램을 찾지 않는 데 따른 현상이다. 침체된 개그의 돌파구가 될 수 있을지도 관심거리지만, 제약이 심한 지상파 개그에 표현의 자유를 가져다 줄 초석을 다질 것이라는 기대도 나온다.
<개그콘서트-기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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