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걸스카우트’의 출연진들.
코믹 액션 ‘걸스카우트’
배우들 개인기·차진 대사·감각적 편집 돋보여
배우들 개인기·차진 대사·감각적 편집 돋보여
모국어로 영화 보는 재미를 느끼게 해주는 우리 영화가 오랜만에 나왔다. 영화사 엠케이픽처스(대표 심재명)의 자매 회사인 보경사(대표 심보경)의 창립 작품 <걸스카우트>. 배우들의 화려한 개인기와 차진 앙상블, 빠르고 감각적인 편집 솜씨가 돋보이는 이 영화는 코미디와 범죄액션 장르를 능숙하게 넘나들며 산뜻하고 유쾌한 결말을 낸다.
우리시대 민중의 자화상
동네 미용실 아줌마가 착한 얼굴로 계모임을 조직한 뒤 어느 날 갑자기 돈다발을 들고 사라지는 일은 주변에서 흔히 봤던 광경이다. 영화는 떼인 곗돈을 찾으러 나선 아줌마들이 사기꾼과 사채업자를 상대로 벌이는 잠복과 결투, 추격전을 체이스 무비 혹은 로드 무비 형식으로 보여준다. 주인공들은 쪼들리는 살림에 나들이할 여유조차 없는 서민들이다. 학원 봉고차를 운전하며 도시락집을 여는 게 인생 최대의 목표인 30대 아줌마 미경(김선아), 동네 마트에서 일하며 반품을 슬쩍하는 게 특기인 60대 할머니 이만(나문희), 남편과 사별하고 홀로 아들 둘을 키우는 40대 억척 주부 봉순(이경실), 카드 빚에 시달리며 오늘도 로또를 긁어대는 20대 캐디 은지(고준희). 문만 나서면 마주칠 듯한 사실적인 캐릭터와 물좋은 생선처럼 팔딱팔딱 뛰는 대사는 영화의 공감대를 넓히는 데 중요한 구실을 한다. 돈을 들고 튄 사기꾼 성혜란(임지은)을 잡기 위해 미사리 카페 앞마당에서 진을 치고 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공익요원에게 이들은 야영의 목적을 이렇게 둘러댄다. “우리 걸스카우트야.”
여성들의 유쾌한 승리
영화는 핫팬츠와 몸뻬바지의 공존 가능성을 탐색한다. 20대부터 60대까지 세대를 초월한 네 여성은 동일한 목적으로 모였지만 갈등과 분란으로 자멸하는 듯하다 끝내 하나로 뭉친다. 자신의 문제를 직접 해결하러 나서는 이들의 모습은 미국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여학생들을 떠올리게 한다. 사기꾼, 해결사, 폭력을 일삼는 실업자 아들 등 영화에 등장하는 남자들은 하나같이 ‘걸스카우트’의 앞길을 막는 걸림돌이다. 그렇다고 영화가 생경하게 남녀평등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남편과 별거 중인 김선아는 고준희에게 이렇게 말한다. “야, 너는 이놈 저놈 다 만나보고 결혼해. 내 꼴 나지 말고.” 이들의 직업이 예외 없이 불안정한 노동인 것도 현실과 무척 닮았다. 화장실 청소 안 했다고 새파랗게 젊은 남자에게 욕을 얻어먹는 나문희에게 김선아가 절규하듯 외친다. “이모, 하루종일 여기서 일해서 얼마나 벌어? 그 년이 그 돈을 훔쳐간 거야.”
풋풋하고 당찬 처음들
<걸스카우트>는 김상만 감독의 데뷔작이다. 시각디자인을 전공하고 영화 <접속>의 포스터 디자인으로 영화계에 입문한 김 감독은 <공동경비구역 JSA>로 대종상 영화제 미술상을 받았으며, <사생결단>에서 음악으로 영역을 넓혀 미술감독과 음악감독을 겸임한 특이한 이력의 만능재주꾼이다. 각본을 쓴 김석주는 한 포털사이트에 연재해 폭발적인 인기를 모은 만화 <와탕카>의 이야기꾼이다. 역시 시나리오는 처음이다. 탤런트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이경실과 고준희의 스크린 데뷔작이기도 하다. 다들 처음이라서 서투르기보다는 풋풋하고 당차다. 5일 개봉.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사진 보경사 제공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사진 보경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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