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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1.13 18:21 수정 : 2005.01.13 18:21

남루함 위로 고운 석양이…

“환도 후 서울 청계천변으로 판잣집들이 들어섰다. …판잣집에 석양이 비치면 이 무질서하고 궁핍한 동네도 금빛으로 빛나 아름답기까지 했다. 그 속에 꿈틀거리는 인간 군상들의 약동하는 삶의 의지와 희망은 더욱 아름다워 보였다.”

영원한 ‘고바우 영감’, 김성환(73) 화백은 당시를 이렇게 회상한다. 해방 직후부터 1970년대 중반이다. 아무렇게나 눈길 주는 곳마다 펼쳐진 가난은 너절했지만 서민의 웃음이 연꽃처럼 피었던 시절. 그 시절이 김 화백의 손끝에서 되살아난 <고바우 김성환의 판자촌 이야기>(열림원 펴냄·9800원)가 최근 나왔다.

이 책은 만화라기보다 청계천 일대를 중심 소재로 한 ‘풍속기록화보집’에 가깝다. 펜으로 밑그림을 그리고 색연필과 오일 파스텔 따위로 채색해 따듯한 질감을 풍긴다. 순간이 고정된 풍경 안에서 사람들은 시대의 언어로 시대를 이야기한다.

해방 후, 쌀을 편지봉투에 담아 파는 여인의 표정(‘노점상 여인’)과 6·25 전쟁 통에 군용 피엑스 시계를 파는 대학 교수의 표정(‘피난지 대구’)은 대조적이지만 남루함이 모두 제 이름인양 명료하다.

해방 뒤 ‘천변풍경’ 애잔한 기억
‘고바우’ 김성환 화백 붓끝서 살아

‘대구 동촌시장 근처’에는 군복을 염·탈색 해 정장이나 작업복으로 만드는 사람이 있다. 남산3호 터널 서북쪽 언덕, 켜켜이 등을 맞댔던 판자촌에는 사람 수만큼이나 많은 폐타이어가 지붕을 덮고 있다. 타이어가 바람을 견디고 판자는 타이어를 버티는 동안, 아이들은 줄넘기가 즐겁기만 하다(‘해방촌 1’). 시멘트가 덮기 전의 청계천변에서 낮잠 자는 지게꾼의 표정도 그 아이처럼 맑다(‘청계천의 낮’).

이미 낯설어진 시대의 서울을 한달음에 유람하는 일이지만, 어머니와 아버지의 모습이 겹쳐질 때면 괜스레 애잔해진다. 하지만 김 화백은 “판자촌에서 생활한 경험이 있다. (…) 문득 잠에서 깼을 때 천장에 무언가 반짝이는 것이 보여 개똥벌레가 들어왔나 했는데 그건 밤하늘에 무수히 떠 있는 별들 중 하나였다”며 위로한다.


책은 지난해 6월 5년 동안 준비해 열었던 전시회 ‘판자촌 시대’에서 선보였던 그림 38점에 새로 10점 이상을 더하고, 글을 입힌 것이다. 살아온 시대를 꼼꼼히 기록한 만화가의 풍경화는 사진보다 실제적이고 어느 유화보다 따뜻해 보인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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