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방향으로 아내의 유혹, 내조의 여왕, 찬란한 유산, 파트너. 사진 문화방송·한국방송·에스비에스 제공
‘아내…’ 김순옥 ‘내조…’ 박지은 등
쌓아둔 내공 발휘하며 신드롬 일으켜
‘작가 다시보기’ 움직임 계기 평가도
쌓아둔 내공 발휘하며 신드롬 일으켜
‘작가 다시보기’ 움직임 계기 평가도
올해 드라마는 ‘중고 신인 작가’들의 빛나는 무대다. 시청률 40%를 넘나들며 기염을 토한 에스비에스 <아내의 유혹>의 김순옥 작가, 문화방송 <내조의 여왕>의 박지은 작가, 에스비에스 <찬란한 유산>의 소현경 작가는 시청률 왕관을 물려쓰며 상반기 드라마 판도를 바꿨다. 모두 방송가에 발을 디딘 지 10년 남짓. ‘신드롬 세 작가’는 단막극·아침드라마 등에서 제 몫을 해냈지만, 유명세를 타는 기성 작가는 아니었다.
박 작가는 1997년 데뷔한 뒤 <멋진 친구들> 등 시트콤을 주로 집필했다. 드라마는 2007년 에스비에스 <칼잡이 오수정>에 공동참여했지만 이름을 알리진 못했다. 김 작가도 2000년 문화방송 극본 공모로 데뷔한 뒤 주로 단막극을 작업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7년 문화방송 아침드라마 <그래도 좋아>가 인기를 끌었지만, 명성으로 연결되진 않았다. 2001년 <매일 그대와>, 2006년 <얼마나 좋길래> 등 일일·아침드라마에서 주로 활약한 소 작가는 꽤 많은 작품을 집필했지만, 유명세를 타기엔 ‘한방’이 없었다. 이외에도 탄탄한 구성력으로 입소문을 탄 한국방송 <파트너>의 조정주·유미경 작가도 뒤늦게 진가를 발휘할 기회를 얻은 이들이다.
■ 스타 작가 안부럽다 중고 신인 작가들의 약진은 ‘편성 받으려면 작가부터 바꿔라’는 소리가 나돌던 몇년 전과 견주면 실로 눈부신 도약이요 발전이다. 위험 부담 줄이려고 안간힘 쓰며 스타 배우, 스타 작가를 선호하는 와중에 도드라진 현상이라 눈길을 끈다. 실제로 산업화한 드라마 시장에서 이름 없는 작가가 설 자리는 없었다. 작품이 좋아서 제작이 결정됐다가도 이름 있는 작가로 바뀌는 경우도 있었다.
기회조차 없던 이들에게 문을 열어준 건 믿고 맡긴 스타 작가들이 연거푸 ‘물’을 먹으면서부터. 방송가에선 이젠 작가 이름만으로 먹히는 시대는 지났다고 말한다. 최근 승률만 따져도 그렇다. <모래시계> <태왕사신기>의 송지나 작가를 내세웠던 한국방송 <남자이야기>는 작품성은 좋았지만 7%대 시청률로 쓸쓸히 퇴장했다. 정성희 작가의 에스비에스 <자명고>도, 지난 연말 방송한 노희경 작가의 한국방송 <그들이 사는 세상>도 결과는 비슷했다. 최근엔 <주몽>의 정형수 작가가 집필한 에스비에스 <드림>이 5%대 시청률로 고전하는 중이다. 한 지상파 방송의 드라마 피디는 “시대가 변하고 트렌드도 달라졌다. 기존에 잘됐다는 이유로 또 잘될 것이라고 생각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스타 배우를 넘어선 무조건적인 스타 작가 모시기도 이젠 무용지물이 됐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 시대가 원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방송사들은 ‘먹히는’ 대본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중고 신인 작가들의 약진을 “장르 혼합이 이뤄진 요즘 드라마 트렌드를 잡아낼 줄 아는 세대”에서 찾는 시선도 있다. 최근 화제가 된 중고 신인 작가들은 뻔한 설정을 새롭게 버무리는 재주를 부렸다. ‘막장’ 비난도 받았지만 <아내의 유혹>은 복수라는 장치를 회마다 빠른 템포로 풀어내며 눈을 잡았다. <내조의 여왕>도 부부의 불화란 고전적 설정에 만화 같은 인물들로 생동감을 더했다. 드라마와 예능의 경계가 무너진 최근 시장에서 기성 작가의 ‘스토리 텔링’에 신인 작가의 ‘캐릭터 플레이’를 한데 엮는 능력이 진가를 발휘한 것이다. 한국방송 <전설의 고향>의 이민홍 피디는 “어느 한쪽으로만 치우쳐도 성공하기 힘든 요즘, 두 세대를 모두 경험한 중고 신인 작가들은 지금 시청자가 원하는 장점을 모두 겸비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박지은 작가도 <내조의 여왕>의 인기 이유를 “10년 전엔 낯설게 느꼈을 만화 같은 장치들도 지금 시청자들은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인다. 드라마로서 품위를 잃는다고 생각하지 않아서 내 작품을 좋게 받아들여준 것 같다”고 말했다.
■ 이름보다 실력? 방송계에서는 중고 신인 작가들의 성공이 이어질 경우 드라마 판도가 달라질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리메이크 드라마 일색인 요즘, 작가가 번역가로 전락하는 상황에서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그들의 창의력이 다양한 드라마를 양산해 낼 것이란 기대감이다. 스타 작가들은 성공한 전작을 반복하며 안전한 길을 가려 하지만, 신인 작가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한다는 것이다. 아직도 음지에서 노력하는 무명 작가들에겐 ‘나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의 씨앗을 뿌린 것도 사실이다. 상반기 중고 신인 작가의 활약은 하반기 신인 작가의 활약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한국방송 <전설의 고향>의 작가 군단, 문화방송 <맨땅에 헤딩>의 김솔지 작가 등 기대작에 신인들이 대거 포진해 있다. 이런 모험들이 좋은 결과를 낳는다면 제2의 박지은, 김순옥, 소현경 작가가 탄생할지도 모른다. 이름값 거품이 사라지고, 방송사 문턱도 낮아지고 있다는 점에서, 중고 신인 작가들은 한숨을 돌리고 있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사진 문화방송·한국방송·에스비에스 제공
■ 이름보다 실력? 방송계에서는 중고 신인 작가들의 성공이 이어질 경우 드라마 판도가 달라질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리메이크 드라마 일색인 요즘, 작가가 번역가로 전락하는 상황에서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그들의 창의력이 다양한 드라마를 양산해 낼 것이란 기대감이다. 스타 작가들은 성공한 전작을 반복하며 안전한 길을 가려 하지만, 신인 작가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한다는 것이다. 아직도 음지에서 노력하는 무명 작가들에겐 ‘나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의 씨앗을 뿌린 것도 사실이다. 상반기 중고 신인 작가의 활약은 하반기 신인 작가의 활약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한국방송 <전설의 고향>의 작가 군단, 문화방송 <맨땅에 헤딩>의 김솔지 작가 등 기대작에 신인들이 대거 포진해 있다. 이런 모험들이 좋은 결과를 낳는다면 제2의 박지은, 김순옥, 소현경 작가가 탄생할지도 모른다. 이름값 거품이 사라지고, 방송사 문턱도 낮아지고 있다는 점에서, 중고 신인 작가들은 한숨을 돌리고 있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사진 문화방송·한국방송·에스비에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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