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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방송·연예

요즘드라마…여성들, 권력투쟁 전면에 서다

등록 2009-08-31 11:49

‘스타일’ 직장 내 힘겨루기 ‘팽팽’
‘선덕여왕’ 왕권 두고 쟁투 ‘짜릿’
‘천추태후’ 전장 지휘 여걸 ‘호탕’
“10년 넘게 부려먹고 쫓아내려면 명분이 있어야 하잖아. 200호 특집 대박 내서 김지원이 쫓아내줘. 예쁘게 만들어 정식으로 편집장 되는 거야. 망하면…. 나 판 뒤집는 거 좋아하는 거 알지?” 에스비에스 <스타일>(토·일 밤 9시55분)에서 패션잡지 발행인이 편집차장 박기자에게 건네는 말은 믿음의 말투도, 불신의 말투도 아니다. 네가 한 만큼 대가를 주겠으나 못하면 각오하라는 식이다. 발행인은 실속을 챙기려고 박기자를 이용하고, 대가를 쥐려는 박기자 또한 기꺼이 그 게임에 응한다. 여자들의 물고 물리는 힘겨루기가 팽팽한 긴장감을 조성하는 <스타일>은 직장 내 여성들의 권력 다툼에 카메라를 들이대며 또다른 재미를 뽑아낸다.

여성들 권력 중심에 서다 그간 권력과 명예를 좇는 드라마는 남성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다. <하얀 거탑>에서 <대조영>까지 기존의 현대극, 사극에서는 일관된 인식이었지만, 최근엔 초점이 옮아갔다. <스타일>뿐만 아니라 문화방송 <선덕여왕>(월·화 밤 9시55분)과 한국방송 2텔레비전 <천추태후>(토 밤 10시15분, 일 밤 10시25분) 등에선 권력 앞에 선 여성들이 드라마를 달군다. <선덕여왕>은 최고의 자리에 오르려는 미실(고현정)과 이를 저지하려 여왕이 되려는 덕만(이요원)의 권력 다툼이 시청률 40%의 일등공신. <천추태후>는 직접 전장을 누비며 남성들을 지휘하는 통치자적 면모를 발휘한다.

권력을 탐하는 여성들이 악녀로 그려진 과거와는 다르다. <장희빈> <이브의 모든 것> 등에서 성공하고픈 여성들은 존재했지만 방법이 치졸했다. ‘몸’으로 남자를 홀리고 배후에서 계략 꾸미기에 바빴다. 요즘 드라마 속 여장부들은 암투 대신 권력 최정점에서 통치권을 행사한다. 미실은 타고난 미모로 3대째 왕을 섬겼고, 뛰어난 지략과 술수로 화랑도를 주물렀지만 장희빈처럼 저주를 퍼붓지는 않는다. 덕만의 등장에 오히려 쾌재를 부르며 권력 다툼을 재미있어한다. 능력 외의 다른 것에 의존해 탄탄대로를 걸으려 하던 ‘옛 여인들’에 견주면 성장한 변화다.

여성 리더십의 갈증 권력 중심이 여성으로 옮아간 데는 여성의 사회적 지위 상승에 따른 리더십의 욕구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대장금> <주몽> <히트> 등 실력 있고 주체적인 여성을 그린 드라마는 이미 나왔다.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활발해지면서 드라마도 앞다투어 이들을 조명했다. 지금 드라마 속 여성들은 한발짝 더 내디딘다. <선덕여왕>의 박홍균 피디는 “선덕여왕의 리더십으로 우리 시대 필요한 지도자상을 생각해 보려고 드라마를 기획했다”고 말한 바 있다. 찬찬히 훑어보면 선덕여왕은 후덕하고 현명한 내유외강형, 탁월한 능력으로 인재를 찾아서 대항하고 싸우기를 반복한다. 김유신·김춘추 등을 지지 세력으로 확보한 덕에 여왕에 오를 수 있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천추태후는 여걸이다. 밖으로는 거란의 위협, 안으로는 대량원군을 옹립하려는 세력에 맞서 갑옷 입고 말을 타며 전장을 누빈다. <스타일>의 박기자는 완벽한 업무능력을 지닌 인재. 아랫사람들은 힘들지언정 그들이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판을 깔아준다. 어시스턴트를 1년6개월이나 하고도 제 몫 못하는 이서정(이지아)을 구박하지만 기회를 주는 것 또한 박기자다.

남자를 주무르다 여성들의 권력 쟁투는 방송사로서는 블루오션이다. 나올 만큼 나온 남성 권력 다툼에 견줘 건드릴 것 많은 섹시한 소재다. 홀로 선 여걸, 둘의 싸움, 직장 내 권력 톺아보기 등만 봐도 그렇다. <스타일>은 초반부 편집장이 되려는 박기자와 그 자리를 지키려는 편집장, 둘 사이를 미묘하게 저울질하는 발행인의 알력 다툼이 충만했다. 때론 동지였다가 때론 적이 되기도 한 그들의 관계는 지금 또다른 세력과의 경쟁으로 옮아가는 중이다. 시청자 함혜민씨는 “여성들 입장에선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는 욕구를 불지피는 재미가 있다”고 했다.

권력 앞에 선 여성들은 남자와 아이 앞에 흔들렸다. 최근 드라마들은 그 아킬레스건을 덥석 잘라내며 극성을 높였다. 사진기자 김민준(이용우)은 박기자에게 끊임없이 사랑을 갈구했지만, 남자의 존재는 성공의 집념 앞엔 새발의 피만도 못했다. 미실은 모성이라는 관념을 깨버린다. 권력을 쥐려고 낳았던 자식을 버리고 남편을 죽인다. 극 중 천추태후도 대의를 위해 형제, 연인까지 버리는 여인이다.

여자들이 권력의 중심에 설수록 남자들은 멀어져 간다. 이 시대 여성상은 진화하지만 남자들의 시선은 과거에 머물러 있다. 이들 드라마에선 강한 여성을 거부하는 남성의 모습이 보인다. <스타일>에서 박기자와 미묘한 감정을 주고받았던 서우진(류시원)이 정작 마음을 쓰는 건 틈만 나면 찾아와 힘들다고 징징대는 서정이다. 덕만에겐 늘 곁을 지켜주는 힘이 되는 남성이 존재하지만, 미실에게는 쥐뿔도 도움 안 되는 ‘떨거지’들뿐이다. 그런 점에서 드라마 속 권력을 쟁취하려는 여자들은 외로운 존재로 그려지기도 한다. 성공을 향해 나아가는 여자들은 왜 외로워야 하는가.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사진 각 방송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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