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사람 눈에 비친 1935년 한국
스텐 베리만 미공개 글·사진
‘다큐 프라임’ 24~26일 방송
‘다큐 프라임’ 24~26일 방송
<교육방송> 형건 피디는 1997년 네덜란드에 갔다가 암스테르담의 한 고서점에서 운명의 책을 만나게 된다. 알고 지내던 아프리카 기자가 아주 재미있는 한국 소개서를 발견했다고 말해줬고, 다음날 그와 함께 책을 찾아 서점에 갔다. 낡고 오래된 한 서점, 세상 모든 역사가 숨어 있을 것 같은 고서 서가에서 유난히 낡아 보이는 그 책을 발견했다. 스웨덴 동물학자 스텐 베리만(1895~1975)이 1938년 쓴 <한국의 야생 동물지>였다. 책 속에는 1930년대 한국의 모습을 담은 글과 사진이 빼곡했다.
베리만은 조류 생태 연구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 1935년 한국을 방문해 2년 동안 머물며 연구를 했다. 그가 당시 겪은 이야기와 직접 찍은 사진 100여장을 엮어 펴낸 책이 <한국의 야생 동물지>였다. 시골 마을과 들판에서 만난 농부, 어부, 기생, 해녀, 매사냥꾼까지 그가 만나 기록한 자료에는 당시 한국 시대상과 자연, 풍속에 관한 이야기가 가득했다. 형 피디는 책을 본 순간 자신도 몰랐던 그 시절의 모습에 매료됐다.
다큐멘터리로 만들어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수소문해보니 이미 베리만은 세상을 떠난 뒤였다. 대신 가족들이 베리만이 소장하고 있던 미공개 사진 400여장을 제공했다. 사진만으로는 한계가 있어 다큐멘터리로 만들 방법을 찾으며 고민하다가 2008년 우연히 본 러시아 다큐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사진을 애니메이션처럼 처리하는 기법으로 만든 그 다큐를 보고 그는 바로 무릎을 쳤다.
그렇게 해서 만든 다큐멘터리 ‘1935년 코레아, 스텐 베리만의 기억’이 24일부터 사흘 동안 교육방송<다큐 프라임>(밤 9시50분)으로 연속 방송된다.
다큐는 스텐 베리만이 함경북도 주을 지역을 거점으로 새와 동물을 수집하고, 백두산에 올라 감동하고, 창경궁에서 벚꽃놀이를 하는 수십만 인파들과 부대낀 이야기 등을 사진과 애니메이션으로 되살렸다. 베리만이 파푸아뉴기니를 탐험하며 쓴 책 <비록 나의 아버지가 식인종일지라도>와, 함경북도 주을을 방문했을 때 그를 도와준 러시아 사냥꾼 얀콥스키의 책, 그리고 러시아 출신 영화배우 율 브리너가 어린 시절 사냥을 즐겼던 아버지와 함께 주을 지방에 놀러왔다가 베리만과 만났던 이야기를 담고 있는 브리너에 대한 책 등 다양한 자료를 참조했다고 한다. 스텐 베리만은 1973년 교통사고로 크게 다쳐 투병을 하다가 2년 뒤 세상을 떠났다. 그의 마지막을 지킨 인물은 공교롭게도 한국인 간호사였다고 한다. 간호사는 그가 죽기 전까지도 한국을 그리워했다고 전했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사진 교육방송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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