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D로 본 월드컵 생생하지만 아쉽네
남아공 현지 전용 카메라 8대뿐
튀어나올 것 같은 역동감은 없어
튀어나올 것 같은 역동감은 없어
소인국 축구를 보는 걸리버가 된 느낌이랄까. 작은 캐릭터들이 이리저리 살아 움직이는데 손대면 ‘톡’ 하고 넘어질 것 같고, 부르면 “응?” 하고 쳐다볼 것만 같았다. 차두리를 집어들어 골대 옆으로 옮기고, 스페인팀의 다비드 비야를 벤치에 앉혀놓는 게 손만 뻗으면 가능할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지금 남아공 월드컵 경기장에 있다’는 착각까지는 안 들었지만 확실히 입체감에 공간감은 놀라웠다.
지난 22일 오후 서울 목동 위성방송 채널사업자인 스카이라이프의 3디 시청룸에서는 지금까지 텔레비전에서 본 것과 사뭇 다른 월드컵 무대가 펼쳐졌다. 기자가 본 것은 21일까지의 경기를 모두 모은 1시간 하이라이트 방송과 21일 열린 H조 2차전 스페인과 온두라스 경기.
3디 시청용 안경을 쓰니 곧바로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멀리 있는 곳은 깊이가 느껴지고 가까이 있는 사물은 입체감이 살아난다. 선수들이 세로로 서 있거나 카메라가 아래에서 위를 향해 잔디와 선수, 관객을 한 화면에 모두 잡을 때 원근감이 강조되어 3디로 보는 효과가 가장 도드라졌다. 선수들이 골을 넣고 혼자 큰 경기장을 뛰어가는 장면에선 공간감이 상당했다. 특히 관중석에서 입체감이 많이 느껴졌는데, 티브이 왼쪽 아래에 있는 작은 사람부터 오른쪽 위까지 제각각 살아 움직이는 것이 마치 3디 게임 속 가상인물들처럼 재미있었다.
하지만 광고나 영화처럼 선수가 티브이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은 역동감을 잘 느낄 수는 없었다. 현재 월드컵 경기를 촬영하고 있는 3디 카메라는 8대뿐이다. 일반 에이치디 카메라가 약 32대인 점에 견주면 턱없이 부족하다. 사물이 카메라 가까이에 있어야 화면 밖으로 튀어나오는 효과를 줄 수 있는데 골대 밑 등 다양한 곳에 배치가 안 되어 있어 ‘리플레이’ 되는 화면도 거의 없다. 또 모든 인물이 3디로 살아서 움직이니 되레 시선이 분산됐다. 어디다 눈을 둬야 할지 집중이 안 됐다. 1시간 정도 지나니 눈이 아팠다. 3디 시청은 30~60분 뒤 5~15분 쉬어야 하고, 티브이 세로 길이의 3배 이상 떨어져 보는 것이 좋다는데 우리나라는 현재 3디 시청 매뉴얼조차 소개되지 않았다. 안경을 쓰고 2시간 남짓 지나자 귀가 아팠고 콧등도 아팠다. 안경을 쓴 사람들은 그 위에 또 3디 안경을 써야 해 번거롭다. 3디 효과를 내는 액티브 방식의 안경은 1개당 10만원이 넘는다고 한다.
현재 월드컵 전체 64경기 가운데 25경기를 3디로 서비스한다. 3디 티브이는 6월 둘째 주까지 총 2만6000대가 판매됐다. 씨지브이, 롯데시네마 등 영화관에서도 3디 응원전이 한창이다. 하지만 3디 월드컵 시험방송은 지상파로는 수도권에서만 시청할 수 있는데 그나마도 관악산 송출서 반경 20㎞ 안 3디 티브이를 가지고 있는 사람만 볼 수 있다. 스카이라이프는 전국에서 시청 가능하지만 에이치디 상품 가입자 중 3디 티브이가 있어야 하는 등 제약이 많다. 그런데도 3디 티브이 판매업체들에서 이런 사실을 충분히 알리지 않아 수도권 이외에 사는 사람들이 무작정 400만~500만원대의 고가 3디 티브이만 샀다가 낭패를 보기도 했다.
방송통신위원회 등에서 3디 방송에 관한 규정 등을 제대로 정하지 않은 채 서둘러 방송을 허용하는 바람에 우왕좌왕하는 모습도 보이고 있다. 스카이라이프 커뮤니케이션팀 이지웅 과장은 “아테네올림픽 때 본격적으로 시작한 에이치디 방송이 지금은 일반화된 것처럼 이번 월드컵을 계기로 3디 방송이 대중화되려면 장비의 간소화가 가장 큰 숙제”라고 말했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사진 스카이라이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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