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흘
장단음 구별이 우리말 기본 “방송인·교사 등이 모범돼야”
단어장 만들어 무료배포 등 40여년 ‘국어 바루기’ 애써
단어장 만들어 무료배포 등 40여년 ‘국어 바루기’ 애써
[이사람] 국내 첫 ‘장단음 중심 발음사전’ 낸 성우 최흘씨
“두발로 하는 게 축구입니다.” 2002년 서울 여의도 녹음실. 원로 성우 최흘(75·사진)씨는 이렇게 말한 후배를 나무랐다. 왜? “아니 머리카락으로 축구를 합니까? 두발이 아니라 두~발로 하는 게 축구입니다.”
우리말은 길게 발음하느냐 짧게 발음하느냐에 따라 뜻이 달라진다. 하늘에서 내리는 눈은 길게 ‘눈~’이고 사람의 눈은 짧게 ‘눈’이다. 학교에서 다 배우는데 신경 안 쓰고 발음한다. “우리말의 기본은 장단음입니다. 영어는 발음 하나까지 따져서 공부하면서 우리말은 왜 멋대로 발음합니까. 표준어를 사용하는 것은 예의입니다.”
최씨는 더 늦기 전에 바로잡아야 한다고 생각해 최근 <우리말 바르게 말하기 사전>을 펴냈다. 장단음이 중심인 발음사전은 이 사전이 처음이다.
단어마다 긴 홀소리(장모음)를 표기했고 왼쪽에는 단모음 낱말, 오른쪽에는 장모음 낱말을 배열해 장단음 차이를 구분했다. 사자성어 6500여개도 장단음을 표기해 수록했다. 그는 “장단음 구별과 억양은 초등학교 때부터 훈련해야 하는데 우리말 학자나 관련 부서에서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 직접 나서게 됐다”며 “한글도 수출하는 시대인데, 엉터리 발음이 한류를 타고 세계로 퍼져나가는 것이 답답하다”고 말했다.
그는 손수 한 글자 한 글자 비교분석해 가며 원고를 작성했다. 1967년부터 직접 우리말 단어장을 만들어 갖고 다니며 공부한 내공이다. 방송에서 언어 오염이 심각하다고 느껴 방송발전기금을 받아 700쪽짜리 가본을 만들어 탤런트·성우·아나운서·코미디언 등에게 무료로 돌렸다. 그래도 나아지는 건 없었다. “방송에 나오는 사람들과 교사들은 우리말을 가르치는 선생님과 마찬가지예요. 그들이 제대로 써야 듣는 사람도 따라하게 되는데 뉴스 앵커나 아나운서조차 ‘대~한민국’을 ‘대한민국’이라고 하고, ‘터~키’를 ‘턱키’라고 합니다. 지적이라도 하면, 뜻만 통하면 되지 뭘 그러냐고 미친놈 취급하니. 허허.”
출판사에서 펴내면 제대로 보급이 안 될 것을 우려해 무료배포하려고 3년 동안 원고를 들고 후원해 줄 곳을 찾아다녔지만 소용이 없었다. “출판사에서 내면 돈 주고 사야 하니 안 보면 그만이잖아요. 그런데 개인이 쓴 원고는 정부 지원금을 받을 수가 없더라고요.”
최씨는 61년 서울 중앙방송국(<한국방송>의 전신) 4기 성우로 입사해 50년째 현역으로 활동중이다. 한국성우협회 회장과 초대 이사장을 지냈다. 인기 만화 <스머프>의 파파 스머프를 7년 동안 했고, <반지의 제왕> 1편의 간달프 목소리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는 “친구들과 이야기하다가도 발음이 틀리면 ‘다시 말해보라’고 시키는 직업병이 생겼다”며 “그러나 이렇게 노력하는 선배들이 없으면 20년 뒤에는 우리말이 사라질지도 모른다”고 씁쓸해했다.
글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사진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글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사진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