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종옥
노희경 원작 영화 ‘세상에서 가장…’ 출연 배종옥
피 쏟는 장면 8시간 촬영도…“가족애 느꼈으면”
피 쏟는 장면 8시간 촬영도…“가족애 느꼈으면”
고등학교 2학년 딸을 둔 48살 중년이란 사실이 새삼스럽다. 육식을 피한다는 그가 나이와 보조를 맞추지 않는 ‘이기적인’ 피부를 가져서이기도 하지만, 데뷔 초 강렬했던, 젊고 똑 부러진 여성의 이미지가 스쳐가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21일 개봉하는 영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감독 민규동)에서 그런 배종옥은 없다. 실제 나이를 웃도는 주부 ‘인희’ 역을 맡은 그는 암에 걸려 아들과 딸, 남편,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를 두고 떠나는 엄마이자, 아내, 며느리의 모습을 밀도있게 그려냈다. 다소 늘어지는 영화의 틈을 배종옥, 김갑수(남편), 김지영(시어머니) 등의 탄탄한 연기가 채워나간다. 그와 불교 수행모임 ‘정토회’도 같이 다니는 노희경 작가가 써서 1996년 방송된 드라마가 원작. 당시엔 나문희가 인희 역을 열연했다.
“때론 가족이 짐 같고, 혼자 있으면 얼마나 편할까 생각할 때도 있잖아요. 그런 가족이 얼마나 소중한지 느끼게 하는 영화입니다. 한국 영화가 요즘 잔인한 게 많은데 이런 따뜻한 영화가 흥행한다면 장르 다양성에도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에 욕심을 냈어요.”
개봉 이틀 전 서울 시내에서 만난 그는 촬영하면서 실제 암으로 돌아가신 어머니를 떠올렸다고 한다. “어머니가 42살에 ‘늦둥이’인 절 낳으셨죠. 평생 가족을 뒷바라지하다 여든살에 담낭암으로 돌아가셨어요. 어머니께 암에 걸리셨다는 말을 안 했지만, 돌아가실 때는 본인도 아셨던 것 같아요. 아파하는 엄마를 지켜보면서 느꼈던 슬픔, 오랫동안 같이 살았던 엄마를 보낼 때의 감정, 가족 한명 한명에게 유언을 남기셨던 엄마의 모습들이 생각났지요.”
“눈물을 (관객에게) 강요하고 싶지 않아” 매 장면 절제하려 했다는 그는 화장실에서 피를 쏟아내다 남편과 껴안는 장면에선 “여보, 나 아파. 나 죽어?”라고 물으며 오열하고 만다. “굉장히 추웠는데, 냉골인 화장실에서 그 장면만 저녁 8시부터 새벽 4시까지 촬영했죠.” 죽음을 그제야 받아들이는 그 표정은 8시간 피를 토하는 촬영 끝에 나왔다.
그는 시어머니를 이불로 씌워 죽이려다 “어머니, 애들이랑 아범 고생시키지 말고 빨리 와, 기다릴게”라며 용서를 비는 ‘인희’의 심경도 가슴에 남는다고 했다. “처음 드라마에서 그 장면을 봤을 때 경악했어요. 남은 가족이 고통스럽지 않게 자기가 다 짊어지고 가겠다는 마음을 느낄 수 있었죠.”
1986년 드라마 <노다지>로 데뷔해 25년간 계속 출연할 수 있었던 건 ‘두려움에 대한 도전’ 덕이라고 했다. “내가 잘하는 것만 하지 않고 내가 하지 않았던 역할에도 도전하면서 연기 스펙트럼이 넓어지다 보니 나의 시장성도 넓어진 것 같다”는 것이다.
고려대 언론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따고 모교인 중앙대 연극영화과 대학원 겸임교수로 연기를 가르치는 그는 “로맨틱 멜로, 코미디물도 하고 싶고, 노래를 배워 뮤지컬도 해보고 싶다”고 했다. “나이가 드니까 할 게 더 많아지는 것 같다”는 배종옥은 ‘하고 싶다’ ‘해보고 싶다’는 말을 그렇게 몇번이나 되뇌다 시원스레 웃었다.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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