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써니>에서 주인공 ‘나미’(심은경)가 라디오로 <이종환의 밤의 디스크쇼>를 듣는 장면. 토일렛픽쳐스 제공.
영화 ‘써니’ 흥행돌풍
30년전 종로·여고 풍경
‘꿈에’ ‘리얼리티’ 등 음악
추억 불러내는 1등 공신
30년전 종로·여고 풍경
‘꿈에’ ‘리얼리티’ 등 음악
추억 불러내는 1등 공신
‘추억’이란 놈은, 정말이지 난데없이 밀려든다. “꿈에~어제 꿈에 보았던 이름 모를 너를 나는 못 잊어….” 조덕배가 부른 ‘꿈에’의 한 소절만 들려도 그때의 ‘너’가 생각나니 참으로 주책맞고, “태어나면서 이미 누군가 정해졌었다면 이제는 그를 만나고 싶다” 갑자기 서정윤의 시 <홀로 서기> 한 구절이라도 떠오르면 ‘아니, 그땐 그걸 왜 외우고 다녔을까?’ 피식 웃음이 나니 말이다. 이젠 40대가 된 아줌마들의 눈부셨던 여고 시절을 담은 강형철 감독의 영화 <써니>는 1980년대 풍경과 음악으로 당시의 추억을 아련하게, 또 촌스럽지 않게 스크린에 채색하면서 개봉 2주 만에 관객 200만 돌파를 앞두고 있다. 830만 관객을 불러들인 강 감독의 <과속스캔들> 때도 작업을 같이한 이요한 미술감독, 김준석 음악감독을 통해 추억을 재생시킨 영화의 힘을 들어봤다.
■ “맞아, 맞아” 관객이 알든 말든, 이요한 미술감독은 80년대 장면인 여고 교실 뒤편 게시판에 시 <홀로 서기>를 붙여놓았고, 관객이 보든 말든, ‘써니파’와 ‘소녀시대파’가 맞붙는 공터 담벼락에 그 시절 유행한 외국 드라마 <브이>의 ‘브이(V)’자를 그려놓았다. “영화미술이 과하게 드러나면 영화적 드라마를 해치게 된다”며 그 풍경을 자연스럽게 녹여 “그래, 그땐 그랬지”라며 끄덕이게 만들도록 했다는 것이다. 영화엔 변진섭, 전영록 등의 사진으로 덮어진 필통과, 여고 방송실에 걸린 가수 박혜성의 브로마이드 사진 등이 나오거나, 각종 영화 포스터도 등장해 ‘80년대’로 이끄는데, “초상권 침해 문제가 나지 않도록 20명 넘는 분들에게 다 허락을 구했고, ‘그때 야한 거 많이 찍었는데 비키니 사진 말고 예쁜 사진 써달라’라고 부탁하는 분도 있었다”고 한다. 영화 속 나이키 가방, 프로스펙스 신발, 써니텐 음료수병 등은 직접 제작했고, 브로마이드 사진은 해당 연예인 인터넷 ‘팬카페’에 들어가 80년대 사진을 다운받았는데, 역시나 관객이 눈치챌 수도 없는데 브로마이드에 ‘우리들의 영원한 오빠 박혜성’ 식의 문구까지 써넣었다.
시위대와 전경, 소녀들이 뒤엉켜 싸우는 서울 종로 한복판은 경남 합천에 1억여원을 들여 지은 세트다. 피카디리 극장, 옛 롯데리아 건물, ‘45분 완성 허바허바 사진관’, 와이엠시에이(YMCA) , 금성판매센터 등을 재현했다. 이 감독은 “당시 이 건물들이 많이 떨어져 있었는데, 한 장면에 보이도록 압축해서 지었고, 그땐 있었지만 지금은 없어진 건물과 지금도 있는데 모두가 아는 건물을 지어 그때를 떠올리게 했다”고 말했다. 피카디리 극장에 걸린 영화 <록키> 간판은 미술팀이 직접 그렸고, 시위장면과 아이들의 싸움 등 대립구도를 위해 복싱영화인 <록키>를 의도적으로 선택했다고 한다. 이 감독은 “여고 시절의 아름다운 추억을 살리기 위해 강당 장면에서 실제 걸려 있던 어두운 검정색 암막천을 걷어내고 아이보리 색 커튼으로 바꾸는 등 80년대 장면에선 빛이 많이 들어가게 했다”고 말했다.
■“음악만 들어도…” 영화는 라디오 <밤의 디스크 쇼>를 진행하던 디제이(DJ) 이종환이 여고시절 ‘7공주파’의 이름을 팝그룹 보니엠이 부른 ‘써니’라고 지어준 뒤 조덕배의 ‘꿈에’를 틀어주면서 관객들을 80년대로 끌어들인다. 김준석 음악감독은 “‘꿈에’음악이 흐르면서 (성인이 된) ‘나미’ 장면으로 돌아가는데, 옛 시절에 젖는 나미의 모습과 잘 어울리는 노래”라고 했다. 10대 시절 ‘나미’와 ‘수지’가 포장마차에서 소주를 마실 때 흐르는 최호섭의 ‘세월이 가면’에 대해선 “나미가 술을 마시며 ‘크흐’ 하는 소리를 내는데, ‘세월이 가면’의 ‘가슴이 터질 듯한’이란 가사가 딱 맞지 않냐”며 웃었다.
소피 마르소가 주연한 영화 <라붐>에 나오는 리처드 앤더슨의 노래 ‘리얼리티’는 짝사랑하는 ‘나미’의 테마곡으로 쓰이는데, 영화는 관객들에게 익숙한 부분인 ‘드림즈 아 마이 리얼리티…’란 대목에서 볼륨을 키우며 관객의 감상의 볼륨까지 높인다. 김 감독은 “‘리얼리티’ 저작권 문제를 해결하는 데 8개월이나 걸렸다”고 했다. 관객 동원수에 따라 ‘리얼리티’ 저작권료를 추가로 지불하는 조건이 붙었다고 한다.
시위대와 소녀들이 뒤엉키는 장면에서 나오는 3인조 음악그룹 조이의 ‘터치 바이 터치’는 제작진의 장난기가 엿보인다. 김 감독은 “‘터치’란 가사에서 서로 주먹을 휘두르고, ‘스킨(skin) 투 스킨’에선 서로 살을 맞대고, ‘러브’란 가사에선 서로 껴안는 등 가사와 장면을 맞춘 것”이라고 말했다.
김 감독은 “80년대를 상징하면서, 그 음악만 들어도 향수와 공감을 일으키는 곡들을 골랐다”며 “영화에 나오는 나머지 음악의 40% 부분을 작곡하면서 80년대 최고 음악들과 함께 이어져야 한다는 부담도 컸다”고 말했다.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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