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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방송·연예

뼛속까지 달콤한 ‘꽃도령 로맨스’

등록 2012-02-16 20:51수정 2015-04-29 14:05

황진미의 TV 톡톡
<해를 품은 달>(해품달·문화방송)은 <성균관 스캔들>(한국방송)의 원작자 정은궐의 동명 소설을 각색한 퓨전사극으로, 현재 시청률이 37%에 이르는 최고흥행작이다. <해품달>은 흔히 사극의 핵심이라 여겨지는 정치와 활극이 나오지 않는다. 가령 <선덕여왕>과 <뿌리 깊은 나무>는 ‘정치란 무엇인가’를 묻는 거대담론의 각축장이었고, <추노>와 <무사 백동수>는 호쾌한 활극과 근육질의 남성육체로 시청자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해품달>은 그 자리를 로맨스와 판타지가 대신한다. <해품달>은 <성균관 스캔들>이 지핀 꽃도령 신드롬의 결정판이자, <공주의 남자>가 틈새를 확인한 로맨스 사극의 만개이다.

<해품달>에도 궁중암투는 등장한다. 그러나 이는 로맨스의 비극을 위한 장치일 뿐, 구체성이 없다. 대개의 궁중사극이 왕이나 주요인물을 정사와 야사에서 가져오는 데 반해, <해품달>은 아예 ‘성조’라는 가상의 왕을 시대배경으로 삼으며, 인물과 사건 모두 역사와는 무관한 완전 창작물이다. <해품달>은 어느 시대나 있어왔던 궁중암투의 전형을 뽑아 표본처럼 배치한 탓에, 암투가 다소 피상적이다. <해품달>에서 궁중암투의 부족함을 채우는 것은 판타지이다. 궁중암투가 로맨스를 방해하기 위한 장치라면, 판타지는 로맨스를 맺어주기 위한 장치이다. 주술로 사람을 죽였다 살리고, 꿈을 통해 의사소통을 하며, 나비의 환영이나 알 수 없는 이끌림으로 인한 만남 등이 모두 ‘운명의 이름으로’ 받아들여진다. 현대물이라면 내러티브의 치명적인 결함으로 여겨졌을 ‘우연성의 남발’이 주술이라는 밑밥에 의해 ‘운명’으로 떠받들어지는 것이다.

<해품달>은 원작소설과 세 가지 점에서 다르다. 첫째, 여주인공(한가인)이 기억상실증에 걸린 것으로 설정한 점, 둘째, 추리극의 형태를 띠었던 원작과 달리 사건을 시간순으로 배열한 점, 셋째, 두 주인공이 서로 얼굴을 몰랐던 원작과 달리, 둘이 과거에 만나 사랑을 쌓았다는 설정이다. 이 세 가지는 모두 로맨티시즘의 강화에 기여한다. 기억상실증이 <겨울연가> 등 현대 멜로물의 단골소재임은 유명한 사실이다. 순차적 배열과 서로 만났다는 설정은 드라마 초반을 미소년 미소녀의 데이트 장면으로 가득 채울 수 있게 하였다. 드라마는 (별로 나이 차이도 나지 않는) 청소년 꽃도령 3명에 성인 꽃도령 3명을 물갈이하며 ‘꽃미남 대방출’을 감행하고, 그것도 모자라 ‘샤방샤방’한 컴퓨터그래픽까지 끼얹어 눈호강을 시켜준다. 이따금 초절정 꽃미남이 “한 나라의 왕이 이 정도 생기기가 쉬운 줄 아느냐”는 ‘자뻑성’ 대사를 날리거나, 상대 꽃미남과 내시에게 동성애를 연상케 하는 대사로 희롱하는 걸 보노라면 <꽃보다 남자>나 ‘야오이물’(여성들이 즐기는 남성 동성애물)을 보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이다. 여기에 축구 장면이나 이종격투기 장면은 여심을 위한 팬 서비스이다.

<해품달>은 사극의 코스프레(분장놀이)를 즐기는 할리퀸 로맨스(소녀취향 연애소설)이다. ‘운명적 사랑’이나 ‘신분의 차이’ 등의 상투적 이야기틀을 현대물에서 반복했을 때 지겹고 낯간지러워지는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 사극의 ‘당의’(糖衣)를 입힌 로맨스물이다. 아니, 설탕 옷을 입힌 정도가 아니라 ‘투 더 코어’(뼛속까지) 사탕이다. 눈으로 먹는 사탕 말이다.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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