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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방송·연예

휴대폰·인터넷·TV 없으니…사람이 그립더라

등록 2013-01-04 19:30수정 2013-07-15 16:30

<인간의 조건>(2012, 한국방송)
<인간의 조건>(2012, 한국방송)
[토요판] 이승한의 몰아보기
<인간의 조건>(2012, 한국방송)
<케이비에스 엔 스포츠>(KBS N SPORTS). 5(토) 오전 9시30분 1~2회. 6(일) 오전 9시30분 3~4회

“삐이이…” 묵묵히 시킨 일을 하던 노트북 컴퓨터는 갑자기 화면을 온통 검은색으로 물들이더니 뭔가 불길한 글씨들을 토해내며 한참을 울었다. 당황한 양평동 이씨가 자판을 열심히 두들겨 봤지만, 소용없었다. 그렇게 몇 분인가 지났나, 돌연 ‘우웅’ 하는 소리와 함께 전원이 나가 버렸다.

이씨의 머리도 일순 ‘전원’이 나갔다. 매주 치렀던 마감의 흔적들, 친구들과 떠난 여행에서 찍어온 사진 같은 것들이 다 지워졌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등줄기가 서늘했다. 황급히 켜 본 노트북은 퉁명스러운 경고문을 뱉어냈다. “그러게 평소에 백업 좀 해두지. 여기 있던 거 이미 다 날아갔음.”

수년간의 기록이 사라졌다는 충격이 이씨를 강타했지만 마냥 넋 놓고 있을 수는 없었다. 당장 막아야 하는 마감이 코앞에 있었다. 이씨는 급하게 노트북 화면을 찍어 담당 기자에게 사진을 전송했다. “사정이 이러니 좀 양해 부탁합니다.” 문자메시지를 보내며 시계를 보니 벌써 새벽이었다.

휴대폰으로 초고를 쓰는 건 할 짓이 아니었다. 오래 붙들고 있기엔 자판이 너무 작았다. 그렇다고 노트에 적을 수도 없었다. 원고지 몇 장 분량이나 쓴 건지 글자 수를 일일이 세어 볼 순 없는 것 아닌가. 서랍을 뒤져보니 다행히 언제 산 건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누레진 원고지 뭉치가 눈에 들어왔다. 해서 이씨는 십수년 만에 원고지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예기치 않은 사실에 놀랐다. 이씨의 문장은 너무 길었다.

그 사실을 전혀 몰랐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한 문장이 원고지 두 장을 차지하는 꼴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나니 기분이 묘했다. 아, 왜 이리 군더더기가 많았을까. 초고 쓰고, 탈고하고, 완성된 원고를 휴대폰으로 옮겨 적으며 이씨는 짧고 간결한 문장에 대해 오래 생각했다.

이승한 티브이평론가
이승한 티브이평론가
간신히 마감을 막은 뒤 새벽의 소동을 돌이켜 보니, 얼마 전 <한국방송>(KBS)에서 방영했던 파일럿 프로그램 <인간의 조건>이 떠올랐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여섯명의 코미디언들은 휴대폰, 인터넷, 티브이 없이 일주일을 버텨야 했다. 그러자 그들은 부쩍 사람을 그리워하기 시작했다. 누군가를 기다린다는 것이 얼마나 설레는 일인지, 집에 돌아와 오늘 하루 뭐 했는지 이야기를 나눌 이가 있다는 게 얼마나 기쁜 일인지 새삼 깨달은 것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의외로 그 본모습이 가려져 있던 일은 또 얼마나 많은가. 이씨는 입안으로 조용히 중얼거려 보았다. “낯설게 보기, 다르게 보기, 낡은 익숙함을 걷어내기.” 이씨는 그렇게 노트북 속 자료들을 잃은 대신 2013년의 새 목표를 얻었다. 새해였다.

이승한 티브이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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