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희
[토요판] 이승한의 술탄 오브 더 티브이
MBC 공정성의 상징 손석희가
종편 JTBC행을 택했다
“정론 위한 전권 약속받았다”지만
승률 낮은 ‘위험한 도박’ 같아
신뢰도 1위 언론인 손석희
JTBC 액세서리 되지 않길…
MBC 공정성의 상징 손석희가
종편 JTBC행을 택했다
“정론 위한 전권 약속받았다”지만
승률 낮은 ‘위험한 도박’ 같아
신뢰도 1위 언론인 손석희
JTBC 액세서리 되지 않길…
“결국은 이렇게 가네요.” 손석희가 <중앙일보>의 종합편성채널(종편) <제이티비시>(JTBC) 보도·시사 부문 사장으로 취임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던 날, 내가 만난 이들은 하나같이 ‘결국’이란 수식어를 달았다. 그를 ‘모셔가고’ 싶어했던 언론사들은 예전부터 많았으므로, 개편철마다 그의 이름은 방송가를 떠돌았다. 선거철마다 그의 이름이 각 당 ‘예비후보’ 명단에 오르내렸던 것처럼 말이다. 2009년 <문화방송>(MBC) <100분 토론>의 진행자 자리에서 물러난 뒤엔 더더욱 그랬다. 제이티비시는 아예 개국하기 전부터 러브콜을 보냈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하게 돌았다. 그래, 그랬지. 결국은 이렇게 가는구나.
내 주변 사람의 반응은 크게 두가지로 나뉘었다. “실망스럽지만, 손석희니까 뭔가 이유가 있었겠지.” “손석희라서 더 실망스러워.” 그럴 법했다. 우린 모두 1992년 문화방송 노동조합 파업에 참여했다가 주동자로 몰려 구속된 푸른 수의 차림의 그를 기억하고 있다. 포승줄에 묶인 상황에서도 말갛게 웃던 서른여섯의 손석희는 문화방송의 공정성을 상징하는 존재였다. <100분 토론>과 <손석희의 시선집중>을 통해 자신의 브랜드 가치를 넘어 문화방송의 신뢰성까지 한 단계 끌어올린 걸출한 존재. 사람들은 ‘손석희이기 때문에’ 더 실망스러워하거나, 혹은 ‘손석희이기 때문에’ 덜 실망하려 노력하고 있었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손석희를 ‘언론인’이 아닌 ‘방송인’으로 보는 이들은 그의 제이티비시행을 대체로 이해하는 눈치다. 가수나 코미디언, 탤런트 등의 방송인들이 종편에 출연하는 걸 도덕적 잣대로 평가하지 않듯, 손석희의 역할을 온전히 ‘방송인’으로 본다면 이해 못할 일도 아니지 않으냐는 말이다. 말하자면 이런 논리다.
“사실 취재는 작가나 피디가 다 해오는 거고, 이 사람은 그걸 재료로 방송을 매끄럽게 이끌어가는 방송인이었던 거죠. 만약 이 사람의 역할을 언론인으로 본다면, 김재철이 사장이었던 지난 3년 동안 문화방송이 망가져가는 꼴을 보면서도 침묵한 것에 대한 책임을 더 무겁게 물어야 할 겁니다. 피디·출연자 등 같이 일하던 제작진이 잘려나가는 동안에도, 그에 대한 어떠한 항의도 없이 묵묵히 출연하고 출연료 받아갔거든요.”
2010년 3월 김재철 사장이 들어온 뒤 문화방송은 손석희를 집요하게 흔들었다. <100분 토론>의 진행자 자리에서 손석희를 쫓아내면서 ‘출연료’ 핑계를 댔고, 그 과정에서 그가 <시선집중>에서 얼마를 받는지도 만천하에 공개했다. 문화방송 라디오 전체를 통틀어 <싱글벙글쇼>의 진행자 강석 다음으로 많은 돈을 받고 있다는 사실은 헤드라인이 되어 입길에 올랐다. 긴 파업과 그에 따른 후유증으로 모두가 어수선한 틈을 타, 문화방송은 슬그머니 오랜 시간 그의 손발이 되어 함께 일했던 피디와 출연자를 차례차례 갈아치웠다. 손석희는 공개적으로 어떠한 항의도 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일주일에 여섯번, 자신의 자리를 조용히 지키는 것으로 김재철의 3년을 보냈다.
언론인의 역할은 기계적 공정성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특정 사안에 대한 자신만의 관점을 갖고 이를 객관적 팩트와 논리적 구조로 ‘프레이밍’(framing·틀짓기)해 보여주는 것이다. 그렇기에 문화방송의 공영성 후퇴에 대해 이렇다 할 입장을 제시하지 않았던 ‘언론인’ 손석희의 행보는 분명 비판받을 측면이 있다. 그것도 명실공히 한국에서 ‘신뢰도 1위의 언론인’으로 평가받아온 그라면, 비판은 더더욱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사실 우린 지난 몇 년간 손석희로부터 사회 각층의 다양한 견해를 전달받았을 뿐, 그가 특정 현안에 대해 어떤 관점이나 생각을 지니고 있는지에 대해 알지 못한다. 그는 공정한 토론 중재자이자 정보 전달자로서의 위치가 흔들릴 것을 우려한 나머지 인터뷰 한번 하기도 까다로운 사람으로 이름이 났으니까.
다른 한편으론 ‘방송인’ 손석희가 제자리를 지키지 않았다면, 문화방송의 공영성은 완전히 재기불능 상태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을 진행하다 퇴출된 방송인 김미화, 소신을 담은 클로징 멘트를 포기하지 않은 탓에 <뉴스데스크>에서 내려와야 했던 신경민 아나운서, <피디수첩>을 이끌던 최승호 피디. 이들이 문화방송을 떠난 것은 많은 이들의 분노를 일으키며 큰 화제가 되었지만, 화제는 문화방송에 머무는 게 아니라 사람들을 따라 이동했다. 문화방송은 돌이킬 수 없이 망가진 것처럼 보였고, 김재철은 어떠한 비판이나 견제에도 흔들리지 않았으며, 당장에 문화방송을 대체할 수 있는 창구들이 하나둘 고개를 내밀고 있었으므로. 문화방송을 살리고 싶었던 수많은 언론인들이 상처입는 동안, 한켠에선 하나둘 지쳐 문화방송을 포기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말을 꺼내는 사람들이 등장했다.
부당해고와 ‘신천교육대’ 발령으로 상징되는 보복성 인사가 난무하던 문화방송에서, 그나마 공정성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는 <시선집중>이었고 손석희였다. 손석희와 <시선집중> 팀은 손석희 본인의 목소리를 들려주진 않았지만, 어느 한쪽의 이야기만 편향적으로 전달하거나 사실을 왜곡하지 않고 공정한 전달자로서의 역할을 지켜왔다. <시선집중>마저 무너졌다면, 문화방송의 그 어디에서도 한때나마 이 방송사가 공영성을 추구하던 방송사였다는 흔적을 찾기 어려웠을 것이다. 손석희가 떠난 뒤 빠르게 몰락한 <100분 토론>이 함량 미달의 패널을 섭외해 함량 미달의 토론을 보여주고 있는 현실을 보라.
공정한 방송 진행자로서의 이미지에 해가 될 것을 우려해 인터뷰까지 피해왔던 사람이, 대학 강단까지 떠나가며 제이티비시로 가는 도박을 감행한 것은 분명 의아한 결정이었다. 그러나 그가 앵커나 프로그램 진행자의 자리로 가는 게 아니라, 제이티비시의 각종 뉴스를 책임지는 보도·시사 부문 사장으로 간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는 이제 자신이 생각하는 공정한 ‘언론’이란 무엇인지, 뉴스를 통해 보여줘야 한다. ‘언론인’ 손석희에 대한 평가는 어쩌면 이제부터 시작일지 모른다. 제이티비시라는 종편의 플랫폼을 통해 그가 어떤 뉴스를 들려주느냐에 따라 그가 지금까지 유지해왔던 ‘신뢰도 1위 언론인’의 이미지는 순식간에 사라질 수 있다. 도박으로 치면 꽤 위험한 도박이다.
손석희는 <시사인>과의 인터뷰를 통해 제이티비시로부터 “내가 생각하는 정론이라는 것이 균형, 공정함, 이런 것들이라면 그걸 한번 실천”할 수 있는 “전권을” 약속받았다고 말했다. 사장이라는 자리가 지니는 가장 큰 매력이 여기에 있다. 사장은 고액 연봉이나 명예도 함께 따라오는 자리지만, 그 이전에 자신이 생각한 비전을 관철시킬 수 있는 권한이 있는 자리다. 손석희는 방송생활 30년 중 앞의 23년을 문화방송 소속 아나운서로, 뒤의 7년을 프리랜서 방송인이자 강단 교수로 살았다. 특히나 뒤의 3년은 김재철의 문화방송을 경험하며 보냈다. 자신이 생각하는 바람직한 방송을 구현할 수 있는 전권을 주겠노라는 제안을 받았다면, 어쩌면 그로서는 지금까지 쌓아온 모든 이미지를 걸고 도박을 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라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물론 이 도박은 선뜻 동의하기도 쉽지 않고, 승률이 높아 보이지도 않는다. 제이티비시의 보도가 전과 달라지지 않는다면 손석희는 “제이티비시의 액세서리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불명예스럽게 경력을 마무리해야 할 것이고, 그의 말처럼 ‘정론’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보도 논조가 거듭난다 해도 여전히 “재벌의 언론 소유와 거대 언론의 종편 진출을 정당화하는 알리바이를 제공했다”는 비판을 피하긴 어려워 보인다. 30년간 쌓아온 자신의 명성과 이미지를 올인한 이 한판 도박의 결말은 어떻게 될까.
그리고, 남은 이야기.
“그럼 이제 울며 겨자 먹기로 제이티비시의 뉴스를 봐야 하는 건가요?”
“이 도박의 결과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래야겠죠.”
“이미 드라마나 예능은 다른 종편 채널들에 견줘 젊은 시청자 층이 많이 몰렸으니까, 뉴스에서도 젊은 시청자 층을 잡을 수 있다면 다른 종편과 자기를 차별화할 수도 있겠네요.”
“그걸 겁니다. 제이티비시의 진짜 속내는.”
이승한 티브이 칼럼니스트
이승한 티브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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